중앙아시아 호령하는 초원수리, 교동도서 길 잃고 ‘청소부’ 되다 윤순영의 시선

수만 마리 쇠기러기 따라 맹금류 몰려…덩치 큰 독수리 밀어내고 사체 탈취
독수리가 먹고 있던 쇠기러기를 탈취해 앞에 두고 주변을 살펴보는 희귀 조류 초원수리.
독수리가 먹고 있던 쇠기러기를 탈취해 앞에 두고 주변을 살펴보는 희귀 조류 초원수리.

카자흐스탄 국기에 모습을 자랑하는 초원수리는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번식하는 포식자다. 수리 가운데 유일하게 땅 위에 둥지를 틀고 번식기에는 주로 땅다람쥐를 사냥한다.

그러나 인도나 아프리카의 월동지에선 사냥 본능을 버리고 사체를 노리는가 하면 쓰레기장도 기웃거린다. 드물게 나그네새로 우리나라를 찾는 초원수리를 교동도에서 만났다.

교동도는 강화도 북서쪽에 자리한 강화 부속 섬 가운데 가장 큰 ‘섬 속의 섬’이다. 면적은 47.14㎢에 이른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이 북한 황해도 연백군(현 황해남도 연안군)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이기도 하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야산과 적당한 조화를 이루는 강화 교동면은 겨울 철새 쇠기러기가 한강하구를 오가며 월동하기 적합한 곳이다. 쇠기러기는 맹금류들에게 좋은 사냥감인데, 이곳에 수만 마리의 쇠기러기가 있으니 자연사하는 사체는 먹이가 되고 직접 사냥도 할 수 있어 맹금류들이 터를 잡고 월동하는데 제격이다.

수만 마리의 쇠기러기가 매년 겨울 강화군 교동도를 찾아와 월동한다.
수만 마리의 쇠기러기가 매년 겨울 강화군 교동도를 찾아와 월동한다.

흰꼬리수리, 독수리, 털발말똥가리, 매, 참매, 잿빛개구리매, 희귀한 흰죽지수리, 나그네새인 항라머리독수리 등 다양한 맹금류가 월동하거나 교동도를 거쳐 간다.

지난 1월 29일 탐조를 시작한 지 20여일 만에 초원수리를 만났다. 초원수리는 흰꼬리수리와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홀로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다. 먹이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기러기 사체가 있는 곳엔 제일 먼저 까치와 까마귀가 날아들어 본의 아니게 맹금류들에게 먹이가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길라잡이가 된다. 맹금류의 먹이 경쟁 이후 남은 부스러기는 까마귀와 까치 차지다.

독수리 곁에 슬며시 나타난 초원수리.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독수리 곁에 슬며시 나타난 초원수리.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먹이의 위치가 확인되면 늘 하늘에서 사체를 찾아 맴도는 독수리가 가장 먼저 덤벼들고 그다음엔 욕심이 앞선 어린 흰꼬리수리가 번잡하게 행동하며 독수리의 눈치를 살피다 먹잇감을 탈취해 간다. 어린 흰꼬리수리는 물불 가리지 않고 밥그릇 경쟁에 치열하게 뛰어든다. 어른 흰꼬리수리는 먹이 경쟁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노련한 사냥술로 단독사냥을 즐긴다.

한참을 기다리다 과감하게 독수리 곁으로 날아간다.
한참을 기다리다 과감하게 독수리 곁으로 날아간다.

독수리보다 몸집은 작지만 용감하게 덤벼든다.
독수리보다 몸집은 작지만 용감하게 덤벼든다.

어린 초원수리가 어느새 조용히 나타나 점잖은 모습으로 독수리 먹이 경쟁을 살피며 기다린다. 집요하게 끼어들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해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히 급습해 먹이를 차지한다. 먹이를 적당히 먹고 나면 미련 없이 깔끔하게 자리를 떠난다. 눈두덩이가 튀어나와 있어 눈빛이 깊어 보이고 눈동자는 어두운 그윽함을 품었다. 자주 관찰되지 않으며 홀연히 나타났다가 자취를 감추곤 하여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독수리가 초원수리의 황당한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독수리가 초원수리의 황당한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독수리 무리 속으로 파고든 초원수리.
독수리 무리 속으로 파고든 초원수리.

초원수리 성조는 갈색 눈을 띤 검은 홍채를 가졌다. 앞에서 볼 때 둥근 머리와 코가 있는 기부 주변의 노란띠가 명확하고 얼굴로 향하는 부리의 노란 입술선이 쭉 길게 찢어진 듯 선명하게 보인다. 콧구멍이 타원형이어서 항라머리검독수리의 원형과 대조된다.

발목까지 토시를 한 듯 깃털이 감싸고 있어 위용 있어 보인다. 초원수리는 흰꼬리수리보다 크기는 다소 작지만 군더더기 없이 미끈하게 잘 균형 잡힌 몸매다. 초원수리는 흰죽지수리, 흰꼬리수리의 영역에서 함께 지냈지만 영역에서 밀려나 한동안 관찰되지 않다가 다시 돌아와 새로운 영역을 마련해 월동하고 있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경쟁 구역보다는 혼자만의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한 것 같다. 까마귀가 짖듯 소리를 내지만 대체로 조용하다.

끈질기게 독수리를 방해한다.
끈질기게 독수리를 방해한다.

독수리는 결국 집요한 초원수리에게 먹이를 뺏긴다.
독수리는 결국 집요한 초원수리에게 먹이를 뺏긴다.

매우 희귀한 겨울철새로 우리나라에는 어린 초원수리가 도래해 월동한다. 2005년 12월 경남 진주, 2006년 10월 인천 승봉도, 2008년 11월 전남 신안군 홍도, 2009년 1월 전남 해남군, 2015년 11월 화성 화옹호, 2019년 12월 남양주 팔당, 2021년 2월 부천 오정구 대장동 등에서 관찰되었다. 북한에서는 1959년 12월에 함경남도에서 생포하여 7년간 평양동물원에서 사육한 기록도 있다.

결국 먹이를 차지했다.
결국 먹이를 차지했다.

알타이산맥 서부에서 몽골 대초원까지 번식하고 중동, 아라비아,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 인도, 남아시아에서 월동한다. 지리적으로 2개의 아종으로 나뉜다. 산림지대와 덤불 지역을 피하며 반사막, 초지, 넓은 농경지 등을 선호한다. 이동 시기에는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고지대에서도 관찰된다. 먹이는 썩은 사체부터 땅 위의 작은 조류나 포유류까지 다양하게 사냥한다. 얼핏 항라머리검독수리와 비슷해 보인다. 날 때는 날개가 거의 수평에 가까우며, 간혹 날개 끝이 아래로 처지기도 한다. 날개가 약간 긴 편이다. 하강 비행에서 최대 시속 300㎞까지 도달할 수 있고 수평 비행 때 시속 60㎞로 빠르게 날 수 있다.

곁에서 알짱거리며 귀찮게 구는 까마귀와 까치를 초원수리가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곁에서 알짱거리며 귀찮게 구는 까마귀와 까치를 초원수리가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초원수리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자 까치와 까마귀가 움츠러든다.
초원수리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자 까치와 까마귀가 움츠러든다.

대부분 뒷목에 탈색된 듯한 담황색 반점이 있으며, 턱밑과 멱은 색이 엷다. 몸 윗면은 어두운 갈색으로 날개깃과 날개덮깃 간에 색 차이가 심하지 않다. 위꼬리덮깃은 폭 좁은 연한 흰색으로 꼬리 기부에 U자형을 이룬다. 날 때 날개깃에 가느다란 어두운 띠가 많이 보이며, 깃 끝을 따라 검은 띠를 이룬다. 몸길이는 약 62~81㎝이며 날개 길이는 1.65~2.15m이다. 암컷의 무게는 2.3~4.9㎏으로 수컷 2~3.5㎏보다 조금 더 무거운 편이다. 수명은 약 30~40년이고 1~3개의 알을 낳는다.

흰꼬리수리(왼쪽)가 초원수리가 탈취한 먹이를 노린다.
흰꼬리수리(왼쪽)가 초원수리가 탈취한 먹이를 노린다.

초원수리는 매몰차게 흰꼬리수리를 내쳤다. 탈취도 방어도 열심이다.
초원수리는 매몰차게 흰꼬리수리를 내쳤다. 탈취도 방어도 열심이다.

어린 새는 앉아 있을 때 몸 윗면이 갈색이며 날개깃은 검은색이고 둘째 날개깃 끝, 큰날개 덮깃 끝, 셋째 날개깃 끝과 꼬리 끝은 흰색이다. 날 때 몸 아랫면의 큰날개 덮깃에 폭넓은 흰색 줄무늬가 보이며, 날개깃과 꽁지깃 끝을 따라 흰색이 이어져 있다. 초원수리는 카자흐스탄의 국기에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국조이자 국기에 문양이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의 ‘멸종 위기’ 등급에 올라 있다.

이제야 편히 탈취한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이제야 편히 탈취한 먹이를 먹을 수 있다.

먹이를 다 먹고 하늘을 선회하는 초원수리. 맹금류가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에 걸려 죽은 철새의 사체를 먹으면 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맹금류의 강한 위산은 병원체를 모두 죽인다.
먹이를 다 먹고 하늘을 선회하는 초원수리. 맹금류가 조류인플루엔자 등 질병에 걸려 죽은 철새의 사체를 먹으면 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맹금류의 강한 위산은 병원체를 모두 죽인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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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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