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먹고 20분 쉬고, 깃털 관리…홍학은 야생이었다 윤순영의 시선



자연 관찰 일기

"새만금에 나타났다" 1년 전부터 소문만 무성하다 구체적 제보로 들어와

너무 멀어 낙담할 때 무슨 일인지 가까이 다가와, 환경지구 조성 서둘러야

크기변환_DSC_2836.jpg » 큰홍학.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홍학 서식지는 5000km 떨어진 카자흐스탄이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열대지방 염습지에나 볼 수 있는 큰홍학의 목격담과 제보가 들어왔다.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던 차에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지인으로부터 새로운 제보를 받았다.

새만금에 홍학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즉시 하던 촬영을 중단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8월24일 새만금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23일 동안 무더운 날씨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홍학이 보이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새만금은 김제, 부안에 총길이 33의 방조제를 축조해 총 면적 401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규모의 간척지다.  이 광활한 이곳에서 큰홍학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크기변환_DSC_3177.jpg » 우아한 자태의 큰홍학이 평화롭게 먹이를 먹고 있다.

크기변환_DSC_3331.jpg » 흰뺨검둥오리가 눈치를 살피며 큰홍학을 바라보고 있다. 큰홍학의 목 길이와 다리 길이가 비슷하게 보인다.

크기변환_DSC_3166.jpg » 붉은부리갈매기도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한적한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망원경 안으로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큰홍학이다. 설레는 맘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관찰을 이어갔다. 주변엔 괭이갈매기가 둘러 앉아 휴식을 취하고 흰뺨검둥오리 무리도 눈에 띈다. 그 가운데우둑 서있는  생김새로 보아 유라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큰홍학인 것 같았다.

크기변환_DSC_5759.jpg » 큰홍학은 목을 자유롭고 거침이 없이 자기의 뜻대로 움직인다.

크기변환_DSC_2538.jpg » 새만금 큰홍학의 먹이터 전경.

기변환_DSC_3470.jpg » 발걸음을 바쁘게 옮겨가며 먹이를 찾는 큰홍학. 크고 두툼한 부리가 특징적이다.

인기척이나 방해요인이 발생하면 가장자리에 있다가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간척지 한가운데로 멀리 물러섰다. 아주 민감하다. 군집 생활을 하던 홍학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게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계 본능이 더 강화됐을 것이다.

크기변환_DSC_6834.jpg » 큰홍학 뒤로 포크레인이 보인다. 새만금 간척지는 아직도 공사 중이다.

크기변환_DSC_7007.jpg » 한국적인 산등성이에 큰홍학이 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기변환_DSC_3534.jpg » 먹이터 수면 위를 날고 있는 큰홍학.

간척구간은 족히 2.5~3km이다. 촬영거리가 너무 멀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큰홍학이 기회를 주었다. 날아가기에 다른 곳으로 멀리 날아가는 구나 생각했는데 더 가까이 날아와 앉는다. 촬영 거리만큼 오히려 다가온 것이다.

관찰과 촬영은 선택을 받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자연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동물과의 만남은 첫 만남이 매우 중요하다. 탐조나 동물촬영에서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얘기하는 이유이다. 

크기변환_DSC_2800.jpg » 먹이를 섭취한 후에 깃털을 다듬고 휴식에 들어가기 전 날갯짓을 하는 큰홍학.

크기변환_DSC_2807.jpg » 큰홍학이 마음껏 날개를 펼친다.

크기변환_DSC_2828.jpg » 날갯짓은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 역할을 한다.

큰홍학은 발걸음을 옮기며 1시간 정도 쉴 새 없이 먹이를 먹는데 집중하고 20여분간 휴식을 취하고 깃털관리를 한다. 하루 종일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큰홍학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궁금하다. 혹시 동물원에서 기르던 홍학이 탈출을 한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동물원에서 길렀다면 날개를 잘라 멀리 날지 못했을 것이고 인공 번식이나 사육을 했다면 사람에게 길들여져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의 큰홍학은 자연을 품고 야생 행동을 하는 당당한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큰홍학의 발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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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홍학은 이착륙거리가 8미터 정도이다. 두루미의 이착륙거리인 3~4미터와 새삼 비교가 된다. 물위를 걷는 우아한 자태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안쪽으로 구부러진 두툼하고 큰 부리가 인상적이다. 발에는 물갈퀴가 있다. 부리의 가장자리에는 빗살 모양의 여과기가 있어 물속에서 좌우로 목을 움직여 먹이를 찾을 때 진흙이나 모래를 거를 수 있다. 목을 곧추세울 땐 빗살 모양의 여과기에서 걸러진 개흙물이 부리에서 줄줄 떨어진다.

크기변환_DSC_3350.jpg » 하루 종일 먹이를 찾고 휴식하는 것이 큰홍학의 일과다. 먹이를 걸러 양을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크기변환_DSC_4270.jpg » 큰홍학 아랫부리의 여과기를 통해 불필요한 찌꺼기가 흘러나온다.

물이 고인 주변 간척지에는 백로류나 도요새, 저어새 등 1000여 마리의 조류가 먹이경쟁을 하며 붐볐다. 그러나 큰홍학이 있는 간척지에는 다른 새가 보이질 않는다. 흰뺨검둥오리와 갈매기들만이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물고기가 없기 때문일까. 이 간척지는 홍학이 좋아하는 플랑크톤, 남조류 등이 풍부할 것으로 보인다.

크기변환_DSC_3919.jpg » 간척지를 휘돌다 수면으로 내려오는 큰홍학.

크기변환_DSC_3953.jpg » 이착륙 거리가 긴 큰홍학. 착지하기 직전 다리에 힘을 빼고 부드러운 발걸음을 유지한다.

크기변환_DSC_3721.jpg » 발에 물갈퀴를 가진 큰홍학.

그동안 홍학이 목격된 사례는 간척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일시적으로 막은 간척지는 대체로 수면이 얕고 조수간만 차이가 없어 물새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해안에 위치한 시화호, 화옹호, 새만금 간척지에서 목격되는 큰홍학의 이동 경로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크기변환_DSC_3516.jpg » 외롭지만 아름다운 비행이다.

크기변환_DSC_2523.jpg » 황혼이 물들자 큰홍학은 잠자리로 물러났다. 내일 다시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해가 떨어지자 큰홍학이 잠자리를 향해 날아간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 다시 간척지로 날아든다.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큰홍학의 출현은 시화호와 화홍 간척지가 조류들의 취서식지로써의 환경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새만금 환경지구는 아직 답보 상태로 남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행정당국은 환경지구의 빠른 조성이 필요하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인터뷰: 윤순영 사진가

“새만금 홍학, 확 뛰더니 150미터 내 앞으로 와”


[애니멀피플] 동물뉴스룸 토크

전화받고 달려가 이틀만에 촬영 성공

“먹고, 쉬는 시간 나뉜 야생 조류 특성 가져”

“좋은 사진 비결? 예의 지키면 동물과 소통 가능”


00502115_20170831.JPG » 윤순영 사진가.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인 그는 환경웹진 ‘물바람숲’(ecotopia.hani.co.kr)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가들의 동물 학대 등을 여론화시켰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동물뉴스룸 토크는 언론 역사상 최초로 설치된 ‘동물뉴스룸’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동물을 취재하는 기자와 그 기자의 취재 대상이 된 사람들, 동물들을 만나본다. 첫 번째 초대 손님은 새만금에 사는 야생 홍학이라는 ‘대형 특종’을 날린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이다.


-사진기자도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특종을 했다.

“<애니멀피플>(애피) 기사 나고 난리가 났다. <연합뉴스> <와이티엔> <에스비에스>… 전 언론에서 연락이 오더라.”

-며칠 잠복했나?

“운이 좋았다. 경남 창녕에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곧장 새만금으로 갔다. 첫날 못봤고 이튿날 새벽 발견해 이틀 동안 찍었다.”

-아주 가까이서 찍었던데?

“150미터. 이 정도면 나한테는 엄청 가까운 거리다. 수백 미터 멀리서 앉아 있었는데, 이놈이 확 뛰더니 내 앞으로 왔어. 그리곤 2시간은 같이 있었던 거 같다. 홍학아, 고맙다.”

-예전부터 홍학이 한반도에 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던데. (원래 동아시아는 홍학 서식지가 아니다)

“작년 가을 화옹호(경기 화성)에서 봤다는 목격담 등이 있었다. 준비하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는 소문도 있던데.

“두 마리 봤다는 사람도 있다. 작년의 소문은 어린 홍학이 돌아다닌다는 거였다. 그놈이 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개체일 수도 있고.”

-야생 홍학인가, 아니면 동물원 탈출 개체인가?

“동물원에서는 홍학의 날개 깃을 자른다. 그래서 비행 거리에 한계가 있다. 반면 이 홍학은 잘 날아다니고 사람을 경계하는 게 뚜렷했다. 둘째, 먹이 먹는 시간과 휴식 시간이 정확히 나뉘었다. 야생 조류의 특성이다. 셋째, 잠자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발견 첫날 저녁, 먼바다 쪽으로 떠나더라고.”

-훌륭한 야생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예의를 지키면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 동물들도 인간들 마음을 다 안다. 개가 개장수 오면 무서워서 짖고 꼼짝 못 하잖나? 예의를 지키면서 기다리니, 홍학이 나한테 날아온 거지.”

이 홍학에 대해 밝혀져야 할 게 많다. 단독 개체인지 아니면 무리가 있는 건지 그리고 야생 홍학이라면 어디서 왔는지, 친구 친척도 없는 한반도에 무슨 이유로 왔는지에 대해서도. 동물의 세계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윤순영 이사장은 오늘도 대포만 한 카메라를 들고 야생에 나간다.

남종영 <애니멀피플> 편집장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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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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