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희귀새 황새, 백령도 폐염전에 최대 규모 찾아와 윤순영의 시선

한두마리 보기도 힘든 황새가 17마리 큰 무리 이뤄 월동

인적 드문 폐염전서 물고기 등 먹어…부근서 농수로 공사, 보호대책 절실

 

st0.jpg » 담수호 갈대밭에 무리지어 찾아온 황새.


지난 4일 귀중한 제보를 담은 메일이 왔다. 이런 내용이었다.

   

두루미에 관한 기사 잘 봤습니다. 철원에 살아봐서 두루미에 대하여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이곳은 백령도인데 황새가 보입니다. 사람들 말로는 계속 있었다고 하는데 내가 이곳에 온 지 일 년이 되는데 처음 봤습니다. 7~8마리가 물가에 있다가 다가가면 피하고 하는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 데 너무 멀어 선명하지 않습니다. 황새가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해서 알려 드리니 참고 바랍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황새가 틀림없었다. 황새 7마리는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무리 중 적은 수가 아니다.

 

겨울철에 천수만과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불규칙하게 5~10 마리가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지난해 환경부의 겨울철새 동시 센서스에서는 간월 호 등 전국 6곳에서 모두 9마리가 관찰됐을 뿐이다.

 

직접 확인하고 싶어 이튿날 바로 백령도로 향했다. 2008년 점박이물범 조사 차 15박16일을 백령도에서 생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 지리는 익숙하다.

 

6년 만에 다시 가는 먼 바닷길이다. 인천항에서 약 220㎞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이 섬에 가려면 쾌속선으로도 네댓 시간이 걸린다. 어둠이 깔린 오후 6시께 백령도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아침을 기다렸다.

 

st1.jpg » 호수가에 멀리 황새 무리가 보인다.

 

다음 날 갯골을 막아 백령도 주민의 자급자족의 농경지확보와 담수를 확보하기위해 만든 백령호수(약991,735 미방미터)로 향했다. 백령호수는 대가을리, 장촌리, 진촌리 중심에 있다. 날씨가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호수엔 안개가 서려있다.

 

백령 호를 우선 둘러보기로 했다. 호수 가장자리에 황새 한 마리가 눈에 띤다. 그냥 지나쳐왔다. 무리를 보기 위해서다.

 

호수 건너편 갈대숲에 어렴풋이 하얀 물체가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황새들이 모여 있다. 마음이 설렌다.

 

st12_화동염전YS3_9857.jpg » 화동 염전. 버려진 염전이 많아 황새의 먹이터 구실을 한다.

 

화동폐염전뒤로 대가을리 마을이 보인다. » 화동폐염전뒤로 대가을리 마을이 보인다.

 

폐염전으로 황새가 날아들고 있다. » 폐염전으로 황새가 날아들고 있다.

 

황새가 있는 곳을 가려면 화동염전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화동염전 갈대숲에서 4마리의 황새가 날아오른다. 일찍 백령 호 잠자리에서 나온 황새로 보인다.

 

백령 호에서 잠을 잔 황새들이 먹이 터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먼 거리이지만 차량을 세워 촬영을 하는데, 한두 마리씩 화동염전으로 자리를 옮긴다,

 

백령호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황새 무리. » 백령호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황새 무리.

 

생전 처음 황새 17마리가 있는 큰 무리를 관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황새는 겨울철에 천수만과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불규칙하게 2~10마리의 무리가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백령도에서 17마리의 황새가 관찰된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

 

백령호수를 떠난 황새가 옆에 자리한 하동염전으로 자리를 옮긴다. 80%가 폐염전이고 일부가 염전 구실을 하고 있다.

 

폐염전 주변에서는 농수로 개설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황새들이 갈대숲에 숨어 불안해 하고 있다. » 폐염전 주변에서는 농수로 개설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황새들이 갈대숲에 숨어 불안해 하고 있다.

 

폐염전에는 민물이 고여 갈대가 무성하고 조류들의 먹이가 풍부해 서식처로 제격이다. 하지만 염전에서는 농수로 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모처럼 큰 무리를 이룬 황새가 그 공사 때문에 방해를 받을지 불안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백령도여서 다행이다. 황새의 새로운 도래지가 망가지지 않도록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 먼 거리에서도 황새는 곁을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사 때문에 경계심과 불안감이 높아서인 것 같다.

 

백령 호 위를 날고있는황새 무리. » 백령 호 위를 날고있는황새 무리.

 

9일 마지막 관찰을 위해 백령호로 나섰다. 대가을리 앞바다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오늘은 날씨가 맑게구나 생각했지만, 잠시 뿐 흐린 날씨 속에 3박4일의 촬영과 관찰을 마쳤다.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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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5_아침햇살에붉게물든황새YS2_1116.jpg »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하늘을 날아가는 황새.

 

황새는 아주 예민한 새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 황새 둥지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까마귀가 집요하게 알을 훔쳐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맹금류가 어린새끼를 잡아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경계심은 필수적인 조건 일 수 있다.

 

황새는 황해도와 충청북도 부근에서 8·15 광복 전까지 흔히 번식하던 텃새의 하나였다.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따라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개체수가 대폭 줄어든 데다 1960년을 전후해 밀렵 등으로 모두 희생되었고, 마지막 번식지였던 충청북도 음성의 한 쌍마저도 1971년 4월 밀렵으로 수컷이 사살되었고 암컷이 홀로 남아 해마다 무정란을 낳았다.

 

우리나라 마지막 토종 황새는 1971년 '과부 황새'가 되었고 농약에 중독돼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뒤 1994년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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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흰색 가슴털이 길고 날개깃은 검은색이며 날개 가장자리는 회색이다. 검은 부리는 길고 두터우며 크고 매우 강하게 보인다. 힘센 부리는 철판이라도 뚫을 기세다.

 

몸집에 비해 가늘어 보이는 주홍색 다리는 허약한 인상을 준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듯 정적인 몸짓, 한 걸음 한 걸음 살포시 내딛는 조심스런 발걸음은 느림의 미학을 보는 듯하다.

 

회색의 고혹적인 눈, 눈 둘레 붉은 피부의 무늬는 화장을 한 듯 이국적인 모습이다. 정중하고 묵직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주변의 모든 상황을 예리하게 눈동자 속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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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를 두루 살펴볼 때 균형이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런 역동성 덕분에 은밀하고 실수가 없는 매우 정확한 사냥꾼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황새는 몸길이 100~115㎝, 편 날개 길이 190~195㎝로 꽤 큰 편이다. 날개를 펴면 날개 윗면에 검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열된 굵은 무늬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케 하며 흑백의 미를 더한다. 몸무게가 4.4~5㎏로 제법 무거운데도 발돋음 없이 사뿐히 날아오른다.

 

어미 새라도 울대나 울대 근육이 없어 다른 새들처럼 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이면서 부리를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낸다. 즐거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고 원초적인 몸짓 언어로 내면의 세계를 소통하고 표현하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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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는 겉보기에 다른 새들에 견줘 완벽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부족한 듯 어수룩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완벽함이야말로 자연의 경이로움 아닐까.

 

황새는 4년이 돼야 어른이 된다. 사람 나이로 12살 정도라야 번식을 하는 늦게 성숙하는 새이다. 5월~6월 2~6개의 흰 알을 낳아 32~35일 품으며 새끼를 53∼55일간 기른다. 번식지인 시베리아, 아무르 강, 연해주 남부 등에서는 알을 도둑맞는 일도 흔한데, 특히 까마귀가 집요하게 알을 훔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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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의 먹이는 물고기, 개구리, 무척추동물, 곤충, 쥐, 뱀, 다른 조류의 새끼, 식물성 먹이 등 잡식성이지만 이곳 백령도에서 황새가 즐겨 찾는 곳은 폐염전의 민물이 고인 곳이다.

 

그곳엔 어류가 풍부하고 옆엔 백령 호가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변에 평야와 습지가 있어 자유롭게 오가며 물고기와 작은 동물, 식물성 먹이를 먹는다.

 

st9_YS2_1711.jpg » 백령도의 황새 도래지는 갈대밭과 폐염전, 부근의 농지가 어울려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

 

황새는 지구상에 2500마리 이하가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이들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인접한 아무르와 우수리강변에서 번식을 한다. 월동을 마치고 4월에 번식지에 도착하여 나무 위에 새 둥지를 짓거나 옛 것을 수리하여 사용한다.

 

유럽황새는 부리와 다리가 모두 검붉은 색인 데 비해 한국의 황새는 다리만 붉은색이고 부리는 검다. 온몸이 흰색이지만 일부 날개깃은 검은색이다.

 

황새가 한국에서 예로부터 흔한 새였다는 것은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를 그림과 자수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서구의 황새는 신화나 우화에서 행복과 끈기, 그리고 인내를 상징하는 새로 묘사되어 왔다.

 

황새는 국제 자연보호연맹의 적색 목록에 제26번으로 등록되어 있는 국제 보호조로서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의 시호테알린 자연 보호구에 약 650마리의 황새 무리가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1968년 5월 30일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5월 31일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황새를 밀렵하다 적발되는 사람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상습범은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백령도/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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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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