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미학, 고즈넉한 뜰안 풍경 윤순영의 시선

늦여름 뜰 안 화단에는 정겨운 꽃이 핀다…백일홍, 코스모스, 과꽃, 맨드라미

귀화종이지만 들어온 지 100년이 넘어 우리 정서와 미감에 꼭 맞는다

 

 크기변환_dnsDSC_8735.jpg » 여름에 줄기 끝에 피는 꽃이 오래 가기 때문에 백일홍 이라고 한다. 

 

문뜩 어린 시절 뜰 안의 꽃밭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꽃도 좋아 했지만 꽃밭 가꾸기를 즐겨 하셨다.  그때 마음속에 심어준 꽃 하나가 지금도 피어 있는 것 같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정된 베란다에서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크기변환_dnsYSY_3418.jpg » 뜰 안 꽃밭.   

 집안에 있는 빈터에 화초나 나무를 가꾸기도 하고 푸성귀도 심는 곳, 그리고 장독대도 자리 잡은 곳이 뜰이다. 언제 봐도 정겨운 친구처럼 뜰 안 꽃밭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곳엔 늦여름 꽃들이 한창이다.

  

 크기변환_dnsYSY_3562.jpg » 새들이 수수를 먹지 못하도록 망을 씌어 놓았다.

 

지난 8월31일 뜰 안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들판엔 벼가 푸른색을 잃어 가고 누렇게 익어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탐스런 수수 열매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모자를 하나씩 썼다. 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요즘은 가을을 상징하던 코스모스가 계절 없이 피지만 역시 코스모스는 가을에 펴야 제격이다.

 

크기변환_dnsYSY_3527.jpg » 전체가 퉁퉁한 다육질로 한낮에만 피는 채송화 흰색,적색,홍색,황색,흰색이 있다. 

 크기변환_dnsYSY_3545.jpg » 여름에 피는 붕숭아 꽃이 붕황의 모습을 닮아서 '봉선화' 라고도 한다. 

소박하면서 가냘픈 꽃잎을 가진 채송화,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 백일 동안 붉게 피는 백일홍, 다른 꽃들은 꽃을 접는 저녁에야 늦잠에서 부시시 깨어나는 분꽃…. 수탉 벼슬 모양에 제멋대로 주름진 맨드라미는 투박해도 붉은 천 질감이 있어 만져 보기도 했다. 항상 봐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과꽃을 보면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이 난다.  

 

크기변환_dnsYSY_3519.jpg » 과꽃은 우리나라 북부지방 원산지로 유럽에서 개량되어 세계로 퍼졌다. 

크기변환_dnsYSY_3396.jpg » 둥근 씨 속에 하얀 가루를 분 대신 얼굴에 발라서 '분꽃'  

크기변환_dnsYSY_3504.jpg » 수닭의 머리위에 달린 볏과 비슷하여 맨드라미는 '계관화' 라고도 부른다.  

크기변환_dnsYSY_3548.jpg » 꽃잎이 나사처럼 감겨져 있다가 나팔 모양으로 피는 나팔꽃. 

나팔꽃은 꽃밭 한 켠에 묶어 놓은 줄을 따라 덩굴을 틀어 올라가고 있다. 봉숭아는 여름에 꽃과 잎을 명반과 섞어 짓이긴 뒤 손톱 위에 올려놓고 잎이 넓은 피마자 잎을 조각내어 감아 실로 단단히 묶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탐스러운 붉은 빛으로 물든 손톱을 볼 수 있었다.

 

누나와 여동생이 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첫 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의 붉은색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크기변환_dns_DSC3097.jpg » 쑥부쟁이 위에서 가을빛을 즐기는 네발나비.  

크기변환_dnsYS3_4035.jpg » 고추좀잠자리. 

크기변환_dns_DSC3156.jpg » 실베짱이. 

크기변환_dns_DSC3235.jpg »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

 

뜰 안 꽃밭에는 다양한 곤충이 찾아온다. 나비, 고추좀잠자리, 벌, 베짱이, 귀뚜라미가 그들이다. 여기에 청개구리와 달팽이도 눈에 띈다.

 

달팽이는 어릴 적에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생겨서 한참 들여다 보곤 했다. 안테나처럼 검게 올라선 더듬이는 건드리면 감췄다가 곧 다시 내민다. 마치 집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등껍질을 지고 미끄러지듯 잎을 따라 이동하다가 괴롭히면 등껍질 속으로 몸을 감춘다. 더 괴롭혀 땅으로 아예 굴러 떨어지게 했던 짓궂은 기억이 난다. 

 

 080609-13.jpg » 달팽이. 

 

뜰 안 꽃밭은 꾸임이 없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꽃밭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무심히 지나쳐도 뇌리에 남는 묘한 힘을 가졌다.  뜰 안 꽃밭은 어린 시절 봤던 것이지만 꽃은 개량되어 더욱 화려한 색채를 지녔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꽃밭의 터줏대감 과꽃, 분꽃, 채송화, 맨드라미, 백일홍 정도이다.

 

크기변환_dnsYSY_3438.jpg » 옥비녀를 닮은 꽃이 피었다하여, 옥잠화로 불리어진다. 

크기변환_dnsYSY_3525.jpg » 달리아는 알뿌리 화초로 여름부터 가을 까지 계속해서 꽃이 핀다.

 

개량된 꽃도 좋지만 토종 맛이 나는 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백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토착화 과정을 거친 꽃이어서 우리 정서에 꼭 맞다. 코스모스,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맨드라미 등이 그런 꽃이다.

 

토종 꽃과 함께 토착화된 귀화종 꽃을 보전하는 것도 우리의 몫인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가 뜰 안의 꽃밭을 차지하는 추세여서 다행스럽다. 

 

크기변환_dnsYS3_1392.jpg » 매의 발톱을 닮은 매발톱꽃. 토종 식물이다.

 

크기변환_dnsDSC_2620~4.jpg » 금낭화. 중국 원산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가까이 두기를 좋아했고 주거지 뜰 안에 꽃밭을 가꾸어 자연과 경계를 두지 않았다. 자연의 연속성을 받아들이는 심성을 엿 볼 수 있다. 지금도 시골이나 단독 주택에서 그 명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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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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