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엔 익지만 눈엔 낯선 제비, 흥부는 뭐랄까 윤순영의 시선

윤순영의 자연 관찰 일기

농촌에서도 보기 드문 추억 속의 정겨운 새

[기변환]YSY_0828.jpg » 둥지를 짓기 위한 지푸라기를 야무지게 물고 있는 제비.

제비는 해마다 봄을 물고 온다. 음력 3월 초사흘, 삼월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 하여 제비집을 손질하고 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으며 춤추고 노는 화전놀이의 풍습이 있었다. 귀소성이 강한 제비는 여러 해 동안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옛 둥지를 찾아와 수리해 쓰기도 하고 추녀 밑에 둥지를 새로 짓기도 한다. 삼짇날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하고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각종 벌레 등 먹잇감이 넘쳐난다. 번식 채비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다.

[크기변환]DSC_8842.jpg » 옛 둥지 아래에 넓은 새 둥지를 지어두었다.

[크기변환]DSC_8832.jpg » 사람의 생활 속 풍경 가까이 자리잡은 제비 둥지 모습. 정성스럽게 달아준 배설물 받이도 보인다.

예전엔 그렇게 흔하던 제비가 어느 땐가부터 보기 쉽지 않은 새가 되었다. 이젠 이름은 귀에  익지만 자취는 눈에는 설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생활 가까이에 스며든다. 어느 집이나 지나다 보면 둥지를 짓거나 새끼를 낳아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처럼 우리 삶과 문화에 친숙하다. 사람의 공간에 다가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깜냥도 지혜롭다.

[크기변환]DSC_4534.jpg » 튼튼한 둥지 속에서 제비 5형제가 자라난다.

[크기변환]DSC_4552.jpg » 어미가 다가오자 입을 쩍 벌리고 보챈다.

[크기변환]DSC_4504.jpg » 어미는 차례대로 먹이를 줄 것이다.

집이나 대문 처마 등 둥지를 짓는 곳마다 사람과 제비의 실랑이도 있다. 신문지를 붙여놓거나 둥지를 허물어뜨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제비의 끈질김에 사람이 두 손을 든다.

새끼가 태어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배설물을 막기 위해 배설물 받이를 설치해 주곤 한다. 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비는 미끈하게 빠진 18센티미터의 작은 몸, 단아한 자태가 곱다.

[크기변환]DSC_3209~1.jpg » 사람이 설치해 준 배설물받이에 내려앉은 새끼 제비들.

[크기변환]YSY_0797.jpg » 물에 비친 제 모습이 멋진 모양이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깃털이 푸른 비늘처럼 빛난다.

1970년대 무분별한 농약살포 이후 전통 농사기법이었던 4월의 논갈이가 5월로 늦춰지고 건물에서 처마가 사라지자 흔한 여름철새였던 제비는 최근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고 농촌에서도 보기 드문 추억 속의 새가 되었다.

그런 제비가 근래 들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친환경 농약 사용과 친환경 농법으로 다양한 곤충들이 살아나며 먹잇감이 풍부해졌다.

[크기변환]YSY_0738.jpg » 둥지에 쓸 흙을 골라 여러 번 뭉친다.

[크기변환]YSY_0741.jpg » 이 정도면 됐겠지?

[크기변환]YSY_0707.jpg » 잘 개어진 흙을 물고 자리를 뜰 준비를 하는 제비.

둥지를 틀기 좋은 전통 한옥과 초가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제비는 현대식 건물에도 적응해 집짓기 ‘기술’을 익혔다. 또한 둥지를 짓는 재료도 새로 ‘개발’했다.

둥지를 짓기에 알맞은, 쟁기질한 논의 흙과 지푸라기가 없어도 물이 고인 곳의 황토나 접착력이 좋은 흙, 마른 풀잎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제비는 되도록이면 논흙을 사용하려고 한다.

논흙이 최상의 재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비는 논흙을 개어 입에 물고 볏짚 지푸라기를 혼합해 물고 가서 둥지를 짓는다. 지푸라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짚의 섬유질이 흙과 흙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특히 논흙은 습도 조절 능력이 있고 작은 미립자 속에선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기 역할도 하여 쾌적한 둥지에서 새끼를 기를 수 있게 한다.

[크기변환]YSY_0709.jpg » 떨어트리지 않도록 잘 물고 날아오른다.

[크기변환]YSY_0970.jpg » 이렇게 둥지를 수없이 오가야 우리가 아는 제비둥지의 모습이 갖춰진다.

제비는 흙으로 둥지를 짓기 위해 땅에 내려앉는 것 외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고, 먹이를 먹을 때도 날면서 잡아먹는다. 새끼한테 먹이를 줄 때는 둥지 앞에서 정지 비행으로 건네주고 재빨리 사냥에 나선다. 먹이를 넘겨줄 때 떨어뜨리거나 새끼가 먹다 떨어뜨린 먹이는 절대로 다시 주워서 먹이지 않는다.

제비는 공중에서 높이 날다가 땅 위를 스치듯 자유자재로 비행한다. 제비가 물 위를 날며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발로 물을 힘껏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물 찬 제비'라고 한다.

[크기변환]YSY_1246.jpg » 또다시 재료 탐색에 나섰다.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면서 원을 그리듯이 날아오를 때도 있다. 번식이 끝난 6월부터 10월 상순까지 평지 갈대밭에서 잠을 잔다.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붉은 갈색이며, 아랫면은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검은 정장을 입은 멋진 신사를 연상케 한다.

[크기변환]YSY_0759.jpg » 제비는 지푸라기를 흙과 섞어 만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수컷이 암컷보다 바깥 꼬리깃이 더 길다. 꼬리 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어린 새는 어른 새보다 꼬리가 짧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5일 동안 품고 부화한 지 20∼23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잠자리, 벌, 나방, 파리, 딱정벌레, 매미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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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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