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사냥 ‘달인’ 비둘기조롱이의 현란한 비행술 윤순영의 시선

인도양 건너 아프리카서 월동 맹금류
나그네새로 들러 잠자리 포식 희귀 새

 크기변환_DSC_9628.jpg » 재빠른 잠자리를 쫓아 사냥하는 비둘기조롱이의 묘기.

지난 910, 서너 마리의 비둘기조롱이가 어김없이 한강하구 김포와 파주 평야에 출현했다. 올해도 비둘기조롱이의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중 북부 지역은 비둘기조롱이가 번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동 길목이다.

 벼가 무르익는 이 시기는 맑고 평온하다. 비둘기조롱이에게 필요한 단백질 공급원인 잠자리도 살이 알차게 오르는 때이다.

크기변환_DSC_2891.jpg » 비둘기조롱이가 이동 중 들르는 파주시 송촌동 평야.

크기변환_DSC_1161.jpg »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좀잠자리.

비둘기조롱이는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로 매우 보기 힘들다. 장거리 이동으로 유명한 맹금류로서 동북아시아에서 번식한 뒤 남아프리카에서 월동하기 위해 인도와 아라비아 해를 건넌다. 번식지로 돌아오는 경로는 아직 수수께끼다.

비둘기조롱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사냥할 때의 현란한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전 7시부터 사냥 준비를 하고 11시까지 활발히 사냥한 다음 나무숲에 들어가 쉰다. 그리고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다시 사냥을 재개한다.

크기변환_DSC_1973.jpg » 암컷 비둘기조롱이 가슴과 배는 흰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다.

크기변환_DSC_8757.jpg » 어린 비둘기조롱이의 가슴과 배는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하찮게 보이는 작은 잠자리를 사냥할 때에도 비둘기조롱이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고 현란한 비행술을 갖추고 있더라도 잠자리 또한 뛰어난 비행가이기 때문에 종종 사냥에 실패한다. 

환경변화에 따라 잠자리가 100미터 이상으로 높이 날아다닐 수도, 벼 이삭 위로 낮게 날아다닐 수도 있기 때문에 비둘기조롱이는 잠자리의 비행에 따라 사냥 행동을 바꾼다. 비둘기조롱이의 사냥은 순식간에 일어나 잠자리도 언제 당했는지 모를 것이다.

크기변환_DSC_9627.jpg » 하늘에 떠 있는 잠자리를 향해 달려드는 비둘기조롱이.

크기변환_DSC_9597.jpg » 잠자리는 영문도 모른 채 당한다.

사냥 장면을 촬영하기로 했다.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너무 빠른 속도로 날아 카메라로 쉽게 따라갈 수 없고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아 손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날면서 잡은 잠자리의 날개를 제거하고 몸통만 먹는다.

비둘기조롱이는 배가 찰 때까지 연속적으로 사냥한다. 논에 설치된 전봇대의 전깃줄은 비둘기조롱이의 쉼터이자 잡은 잠자리를 먹는 장소이다. 여기서 다음 사냥을 위해 깃털을 고르거나 사냥감을 물색하기도 한다.

■비둘기조롱이 사냥 연속 동작

크기변환_DSC_9651.jpg » 사냥감을 노리는 비둘기조롱이.

크기변환_DSC_8069.jpg » 포착한 사냥감을 향해 달려든다.

크기변환_DSC_8075.jpg »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크기변환_DSC_8158.jpg » 사냥감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비둘기조롱이

크기변환_DSC_7952.jpg » 사냥감을 매섭게 노려보며 날개를 수평으로 유지한 채 정확하게 달려드는 비둘기조롱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크기변환_DSC_7955.jpg » 사냥감을 낚아채는 찰나.

크기변환_DSC_7956.jpg » 속수무책으로 잠자리는 당했다.

크기변환_DSC_7957.jpg » 사냥이 끝났다.

크기변환_DSC_2324.jpg » 움켜쥔 사냥감을 먹는 비행하면서 비둘기조롱이.

보름 남짓 관찰했지만 대여섯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923일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926, 열 마리 남짓의 비둘기조롱이가 관찰된다. 927일엔 20여 마리로 늘어났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냥보다는 전깃줄에 앉아 깃털을 고르는 데에 열중한다. 피곤한 모습도 보인다.

크기변환_DSC_2048.jpg » 깃털을 다듬는 비둘기조롱이.

928,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둘기조롱이의 수가 더는 늘어나지 않았다. 겨울철새인 기러기가 보인다.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월동을 하러 오는 것은 마치 자연에 시계가 있는 것처럼 정확하다.

929, 35마리의 비둘기조롱이가 관찰되었다. 늘 그렇듯 비둘기조롱이는 깃털을 고르는데 전념하고 있다. 이슬에 젖은 날개가 말라 정상적으로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쯤 잠자리도 날개가 말라 날아오르고, 비둘기조롱이의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크기변환_DSC_2863.jpg » 안개 낀 송촌동 평야의 이른 아침.

크기변환_DSC_0133.jpg » 아침 이슬이 마르면 비둘기조롱이는 사냥을 시작한다.

930, 안개가 많이 끼었던 탓에 전깃줄에 앉아 있던 비둘기조롱이가 나무숲으로 돌아와 깃털을 다듬었다. 나뭇잎은 날개를 펼쳐 올려놓고 습해진 몸을 말리는데 제격이다. 전깃줄에서 사냥하며 틈틈이 깃털 고르기를 할 수 있지만, 날개를 펼치고 깃털 구석구석을 다듬고 말리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비둘기조롱이는 아침이나 흐린 날에는 깃털에 습도가 남아있으면 완벽한 비행을 하지 못한다. 바람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빠른 속도로 나는 비행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깃털이 잘 정돈되고 건조해야 정상적인 비행을 한다. 비행술이 뛰어난 새일수록 깃털관리가 철저하다. 사냥은 목숨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다.

크기변환_DSC_5446.jpg » 전깃줄에 앉아 깃털을 다듬고 말리는 비둘기조롱이 무리.

크기변환_DSC_4164.jpg » 비둘기조롱이는 나무에 앉아 깃털을 완벽하게 말리는 것을 즐긴다.

101, 65마리의 비둘기조롱이가 보였다.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비둘기조롱이는 깃털을 말리고 깃털 고르기를 할 때마다 치러야 할 일이 있다. 이곳 지역에서 오랜 세월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까치의 텃세를 피해야 한다.

비둘기조롱이는 까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비둘기조롱이 역시 까치가 귀찮은 존재다. 나그네의 설움을 혹독하게 치른다. 까치는 비둘기조롱이가 워낙 많아 여기저기 집적대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이면 기운을 차리고 어김없이 텃세를 부린다. 불편한 동거생활이다.

크기변환_DSC_5713.jpg » 용감무쌍하게 비둘기조롱이 무리로 다가와 텃세를 부리는 까치.

크기변환_DSC_4783.jpg » 까치는 깃털을 말리는 나무숲에도 찾아와 텃세를 부린다.

103일부터 5일까지 비둘기조롱이가 눈에 자주 띄지 않았다. 106일에는 사냥하는 비둘기조롱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올해는 짧은 시간을 머물다 떠나는 느낌이다. 107, 대여섯 마리의 비둘기조롱이가 보였다. 평야가 썰렁하다. 108일에 비둘기조롱이는 영영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보다 열흘 정도 빨리 떠났다.

■ 사냥 실패 연속  동작

크기변환_DSC_6298.jpg » 짝짓기에 정신없는 잠자리를 향해 달려드는 수컷 비둘기조롱이.

크기변환_DSC_6303.jpg » 잠자리는 아예 모르고 있다.

크기변환_DSC_6299.jpg » 한 번에 두 마리의 잠자리를 사냥하는 순간이다.

크기변환_DSC_6300.jpg » 앗! 실수.

크기변환_DSC_6305.jpg » 비둘기조롱이 체면이 구겨졌다. 하지만 잠자리는 삶을 얻었다.

3년 전만 해도 200여 마리가 한강하구 평야를 찾아와 잠자리 별식을 즐겼지만 해마다 숫자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 다른 지방에서도 관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환경변화에 의한 이동경로의 변화가 아닐까?

혹은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특성을 악용한 그물 밀렵으로 개체가 적어진 것이 아닐까?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실제로 인도의 나갈랜드지역에서는 그물을 이용하여 무리지어 이동하는 비둘기조롱이를 대량으로 잡아 구이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에도 비둘기조롱이 개체수 변화를 눈 여겨 봐야 할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444.jpg » 잠자리는 비둘기조롱이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별식이다.

비둘기조롱이 어미와 새끼들은 함께 지정된 전깃줄과 사냥구역에 무리지어 모여들고 무리지어 사냥을 한다. 무리생활을 하면서도 사적인 생활을 중시하며 상대에게 불필요한 간섭이 전혀 없고 독립적인 생활 속에 집단의 결속력이 엿보였다. 무리생활을 하는 새들은 화목하고 가족애와 동료애가 매우 강하다.

크기변환_DSC_8734.jpg » 파주를 떠난 비둘기조롱이는 지금쯤 인도양이나 아라비아해를 건너 아프리카 상공을 날고 있을 것이다.

다툼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각자의 생활을 존중한다. 비둘기조롱이는 언제나 여유롭고 큰 방해요인이 없으면 친숙하게 곁을 주는 새다. 얼핏 보면 비둘기와 닮았다. 그래서 비둘기조롱이란 이름을 가졌다.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전등급은 '최소 관심종'이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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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윤순영 입니다. 어린 시절 한강하구와 홍도 평에서 뛰놀며 자연을 벗 삼아 자랐습니다. 보고 느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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