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새로운 시작

새로운 11월이 시작되는 다음 주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역할이 더해진다. 자연히, 엄마, 주부 등 다른 역할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복직하기 때문이다. 나는 금융기관, 한 시중 은행의 직원이다. 프리랜서로 통번역 일을 하다가 십년전에 우연히 통번역직으로 입행하여 일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소속 부서장의 권유로 직원으로 전환되었다. 은행에 다니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키웠으니 같이 일했던 나이 지긋하신 상사의 "임경현씨는 우리가 다 키운 거야~"라는 말씀이 그야말로 정답이다.

 

아이가 진단을 받은 후 부랴부랴 육아휴직을 하고, 휴직을 연장하고 2년 반을 쉬었다. 한국 현실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복지시스템의 수혜를 받았으니 감사할 일이다. 문제는 복직 준비. 복직일이 다가오면서, 레이랑 떨어져 회사 다닐 생각을 하니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바람이었다. 애가 아니라 내가 더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나약한 엄마가 된 듯 했다. 퇴직을 할까,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백이면 백 모두가 말렸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 조금만 버티면 레이도 엄마 품을 떠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를 아끼는 친구들, 언니, 친정 엄마는 거기에 조금 더 보태어 말했다.

 "네가 2년 반 동안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 함께 했잖니? 레이도 엄마와 관계가 돈독해졌고, 그 힘으로 레이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힘을 키웠을 거야. 일하면서 너 자신으로 돌아가서 밖에서 일하며 숨 좀 쉬고 살아.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어."

레이를 보시는 의사 선생님들도 한 목소리였다.

 "이제 레이가 여섯살이 되었죠? 그야말로 골든 타임에 엄마가 함께 했고, 취학 준비까지 조금 더 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사는 게 항상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그 동안 임상에서 주욱 보니, 엄마가 일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담당의사나 엄마들은 이렇게 부른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도 죄책감 가지지 마시고 일 준비하시고, 레이도 인생에서 꼭 경험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니 잘 넘기도록 지켜봐 주세요."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복잡했다. 마음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복직 준비를 하려니 일이 두서가 없었다. 복직을 준비하면서,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정말 마을 하나, 아니 도시 하나가 필요하구나, 절감했다. 나의 준비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어린이집과 상의하여 시간 연장 신청을 한다 :

퇴근 시간은 6시 반이지만, 요즘은 은행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퇴근이 대개 늦다. 아이 아빠도 7시 반이 넘어야 픽업이 가능하니, 일단 저녁식사도 챙겨주고, 9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시간 연장을 신청한다.레이는 장애통합반이라 시간 연장을 해도 전액 지원이 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차를 놓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차량 주차도 알아보았다.

 

2. 치료 일정 조정:

지금 하고 있는 치료 중 그만둘 것과 유지할 것을 정하고, 유지할 치료는 선생님과 협의하여 일정을 수, 목 오후로 몰아놓았다. 선생님들이 치료 일정이 꽉 차서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결국은 조정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복직과 레이의 적응에 대해 신경써주시고 엄마보다 더 염려해주시고, 다른 아이들의 사례도 알려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3. 돌봄 선생님 구하기:

 수,목 이틀만 치료실에 운전해서 데려다주실 돌봄선생님을 구한다. 치료를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ABA개별수업과 ABA짝수업, 언어치료만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픽업- 치료실- 집에 와서 저녁먹이기까지 하루 4시간으로 주 2~3일 일하실 분을 구하려고 인터넷 직거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알아보았다.

 

4.  회사 인사부서와 협의: 

가장 에너지 소모가 많고 어찌 보면 복직 이후 우리 가족의 생활을 좌우할 결정이었다. 두어 달 전부터수많은 얘기가 오간 끝에 결국은 어제서야 결정이 났다.

 

5. 현우와 마음의 준비하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장 소중한, 그리고 가장 마음 찡한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복직 기념 & 아빠의 10주년 근속휴가 기념 여행을 5박 6일 제주도로 다녀왔다. 제주도는....사랑입니다..^^

 

6. 복직맞이 몸만들기 프로젝트:

수영과 헬스, 조깅과 식이요법을 했다. 아이 식사 준비하며 무산된 적도 많았으나 대충 군살을 정리하고 3킬로 정도 감량했다. 목표는 5킬로그램이었는데.....쩝.

 

 

1. 어린이집

레이의 어린이집 원장님은 평소에 장애 통합 교육에 대해 그 중요성을 역설하시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다. 우리집 상황을 설명했더니 시간 연장반을 구성해 보겠노라 흔쾌히 말씀하시고, 주차 문제까지 해결해주셨다. 레이를 직접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조금 염려하는 표정이셨다. 

 "레이가 두시 반에 엄마랑 하원하다가 늦게까지 어린이집에서 불안해 하지 않을까요..."

 " 선생님, 요즘 레이가 자발적으로 얘기도 많이 하고, 친구에게 관심도 많아지고 했으니, 옆에서 잘  도와주시면 또래와 함께 오후에 자유놀이 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훨씬 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사회성 현장 지도 선생님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방법을 제안하고 선생님까지 다 찾아놓았으나, 외부 교사는 어린이집과 계약된 업체가 아니면 안되고, 한 아이만을 위한 개인 고용은 불가하다 하여 무산되었다. 게다가 시간 연장반은 인원 수가 채워지지 않아서 7시 반 이전에 픽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선생님들께서 돌아가면서 8시까지는 근무해주신다고 하니, 나로서는 고마운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이었다. 수,목은 돌봄선생님이 픽업하시고 돌봄 선생님이 집 근처로 이사 오시면 주5일로 늘려달라고 부탁드려봐야겠다. 한 달에 한 번은 휴가를 낼 수 있고 연차 휴가도 제법 되니 아이를 좀 더 일찍 픽업할 날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휴가 받은 날은 어린이집 땡땡이 치고 놀러가지 뭐~

 

2. 돌봄 선생님 구하기

출산 후 회사로 복귀할 때에는 시어머니께서 레이를 돌봐주셨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레이를 돌봐주는 상황이 나도 처음이었던지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때마침 한겨레 양선아 기자님이 칼럼 '워킹맘을 부탁해'에 시터 구하기의 모든 것에 대해 쓰셨다. 덕분에 직거래 사이트도 알게 되고, 지역맘 카페, 그리고 나는 아이가 자폐이니만큼 발달장애 엄마들의 카페에도 도움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카페에서는 한 두 분씩 연락이 왔다. 그 중 집 근처에 사시는 한 분은 같은 발달장애 엄마 카페 회원이고, 자제분이 자폐인데 이제 중학생이라며, 레이를 돌보고 싶다 하셨는데, 심정적으로는 가장 맡기고 싶었다. 아이 키우며 겪었던 일이며, 내게는 미지의 던전과도 같은 아이의 초등학교 학교 생활에 대해 코치를 받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운전이 어렵다고 하셔서 치료실에 다녀야 하는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라 만남은 무산되었고, 지금도 아쉬움이 크다. 직거래 사이트에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주 2일은 아무래도 벌이가 안되니 곤란하다는 분들이었다. 내 입장에서 시터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약하려고 머리를 짜낸 아이디어가 그 분들 입장에서는 이왕 일하는 거 한 집에서 주5일 일하는 것이 낫지 주3일을 대기상태로 보내기도 애매한 일이 된 셈이었다. 

얘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된 분은 결국 두 명 뿐이었다.  첫번째 분은 집 근처에 사시는 분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장애친구'를 돌 본 경험이 있고, 운전도 자유로운 분이었다. 그러나 역시 주 4-5일은 일을 하고 싶어하셨다. 나는 그건 여행 다녀온 후 아이와 한 번 같이 만나 보고 결정하겠다 말씀드리고,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치료를 수 목 이틀로 몰아놓은 상황이긴 하지만, 좋은 분을 만나서 주 4일을 치료 받으면 레이에게는 오히려 낫지 싶었다.  이렇게 저렇게 꿰어 맞추면 부담이 좀 되기도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결론짓고 만나서 다시 얘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었다.

"레이, 오늘은 선생님이 오실 거야. 엄마가 회사 나가면 늦게 오니까 선생님하고 같이 센터에 가는 거야. 알겠지? " 레이는 네~ 대답하고, "오늘 선생님 오시는 거에요?" 확인까지 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선생님은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여러 차례 걸어도 받지 않았다. 대충 느낌은 왔으나, 나는 이런 일일수록 확실히 마무리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전화가 안되네요. 레이에게 다 얘기하고 함께 기다리고 있어요. 가부간에 답변 주시기 바랍니다.'

곧이어 문자 답변이 왔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신중하지 못했어요. 레이는 제가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력이 오래된 시터이니 우리 집의 이런 저런 상황을 나름 살피고 어렵겠다 판단하신 모양이다. 레이의 자폐는 그닥 심하지 않지만, 그건 엄마인 나에게나 그렇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힘들고 낯설겠지..

'네, 알겠습니다. 좋은 인연 만나시길 바랄께요.'

 

그리고, 두번째 후보인 분을 집 근처에서 만났다. 얼굴 보고 또 안하겠다 하면 아이가 실망할까 싶어 일부러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좀 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드렸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아이는 자폐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데 차로 데리고 왔다갔다 하는 일이 괜찮으시겠어요? "

선생님은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건네었다.  미술 치료사 OOO. 어머나? 미술 치료사?

"제가 미대를 나왔고요, 십년쯤 전에 미술 치료사 자격증을 따서 발달센터나 복지관에서도 일하고, 성당에서 자원봉사도 많이 해서 친숙해요. 지금은 오십대가 훌쩍 넘어가니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이렇게 베이비시터로 일하면서 아이랑 지내는 것도 좋더라구요.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집이 멀지만 1-2월에 근처로 이사올 예정이라 당분간만 멀리서 다니는 거지만, 오후 3-4시부터 시작하는 일이라 시간도 적당하다며 걱정말라고 하셨다. 우와. 이런 분을 만날 줄이야.

내친 김에 집에 가서 레이와 만나 인사하고, 그리고 10월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적응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픽업 - 치료 센터 - 집에 와서 저녁 먹이기까지, 월, 수, 목 3일 동안 같이 다녀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레이가 수업하는 중에 잠시 밖에 나가시더니 낙엽을 주워와서 집에서 낙엽으로 동물 만들기, 낙엽 가루를 부숴서 스케치북에 풀그림을 그려 낙엽 가루 붙이기 등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미술치료 기법으로 아이와 놀아주시고 음식 준비도 척척 해주셨다. "색종이, 물감, 스케치북, 풍선 등 재료 준비해놓으면 짬날때 조금씩 놀아줄께요~"

만난지 둘째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레이가 슬쩍 선생님의 손을 잡는다. 레이. 너는 정말 선생님 복이 많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어서 근처로 이사 오셔서 날짜를 늘릴 수 있기를...

 

나머지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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