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하러 가! 생생육아

기차역만 보면 설레지 않냐.”

 친구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기차역을 보며 설렌 적이 없었다. 어느 쪽이냐면 오히려 쓸쓸한 감상에 젖어드는 편이었다. 스무 살 언저리의 여대생은 본격 이별은 고사하고 이별의 예고편조차 경험한 적이 없거늘, 헤어짐이 두려웠다. 기차역은 낯선 세계로 이끄는 흥미로운 관문이기보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과 무정한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남겨진 사람이 공존하는 이별의 장소로만 여겨졌다.

 내 유전자에는 모든 사물과 공간에서 유독 이별을 포착하고 못 견뎌하는 어처구니없는 애잔함이 새겨져 있었으니, 줄곧 2세만큼은 하등 도움 안 되는 감성의 DNA 따위 물려받지 않기를 간절히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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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은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이별에 맞닥뜨린다. 이별 장면에는 항상 폭풍 눈물과 오열이 따라붙는데 그 때마다 곤란한 건 이 에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친정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파랑이(태명)가 제 아빠를 많이 따른다, 니가 한 서방한테 잘 해라.”

 어째 태몽이 없다 싶더니 어머니에게 보였던 게요?

 아무튼 태몽의 세부 내용이야 확인할 길이 없다만 어머니는 아이가 아빠를 좋아할 거란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자랄수록 아빠의 껌딱지가 돼 갔으니.

 막상 한 집에서 살 땐 천지도 모르던 시기였거늘, 아빠가 타지로 발령받고 떠난 후부터 퍽도 찾아 헤맨다.

 아빠와 떨어져 사는 애들은 서서히 아빠를 서먹하게 여겨 애비에게는 서운함을, 에미에게는 미안함을 유발한다더니, 이 아이는 어찌된 판인지 한집에 사는 엄마보다 아빠에게 더 큰 애착을 느끼고 있다.

 

 아빠가 돌아서고 남겨진 아이는 눈물을 쏟는다. 품에 꼭 안고 있는 엄마 탓에 아빠에게 갈 수 없는 아이가 발버둥을 친다.

아빠는 일하러 가야 해.”

 그래, 이 가감 없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설명이 원흉이오.

 아이는 소리를 지른다.

 “엄마, 일하러 가, 아빠랑 놀아, 아빠랑 같이 있어, 엄마, 일하러 가!”

 우는 아이는 눈앞에 엄마가 얼쩡거리면 더 화가 나는지 집밖으로 나가란다. 졸지에 몰이당한 엄마는 문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좀 괜찮아졌나 싶어 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 들이미는데 다시 그놈의 일하러 가.’ 신공을 펼쳐 보이시니.

 “엄마, 일하러 가. 엄마, 일하러 가.”

 문 밖에서 또 시간을 죽인다. 마침내 잠잠해지고 엄마가 들어서면, 아이는 제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납득을 했는지 아빠는 일하러 갔지요.”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이고, 어린 게 얼마나 아빠가 좋으면 저럴까 싶어 짠하다.

 만!!!

 

 이게 계속 반복되면 엄마의 미안함은 서운함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슬슬 분노로 바뀌고 마는데!

 매번 지난번 보았음이 분명한 이별장면이 반복된다.

 “엄마, 일하러 가.”

 이제 일하러 가.’ 신공은 주위 모든 사람을 불문한다.

 아빠를 전송하고 들어오는 길에 마주한 경비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일하러 가.”

 이 봐, 할아버지는 지금 일하고 있다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외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일하러 가.”

 할아버지는 일하고 돌아오셨다고!

 좀 놀다 귀가하는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일하러 가.”

 그래, 할머니는 좀 놀긴 하셨다만.

 월요일 어린이집 등원하자마자 선생님들에게 선생님, 일하러 가.”

 이 봐, 이 봐, 네 아무리 어리다고는 하나 여기가 선생님들 일터인 줄을 모르겠더냐?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거니 한다만 이제 막 네 살. 익숙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아빠가 떠난 직후를 정점으로 하루하루 아들의 아빠 그리움증은 하향 곡선을 긋는다만! 영상통화가 문제다.

 영상통화만 하면 아빠, 보고 싶어요.”로 시작되는 울먹임에 엄마, 일하러 가.”가 따라붙고 마니.

 굳이 이 엄마가 자기변론을 펼치며 아빠는 밖에서 일하고 엄마는 안에서 일하고 있잖아.” 설득을 한다만.

 아들은 이미 의 숨은 의미가 돈벌이라는 것을 간파하였는가.

 “엄마도 신 신고 밖에 일하러 가!”

 예리한 것!

  일하지 않는 엄마는 어린이집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고 정부 지원도 서서히 끊을 거라는데 아이조차눈물이 앞을 가리오.

 

 남편은 이별의 충격을 매번 겪게 하는 건 옳지 않다. 잘 때 모르게 가겠다.’지만 나는 육아전문가와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의견을 존중 아니다, 힘들더라도 떠나는 걸 목격하고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며 우긴다. 자고 일어났을 때, 이유도 모른 채 아빠의 빈자리를 목격하는 게 더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지금이야 친정에 있어 그나마 이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다만 둘만 살던 시절에는 이 에미조차 고독을 버틸 재간이 없어 장난감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토마스와 친구들 축제 메가블럭, 멜리사 앤 더그의 사운드퍼즐 동물농장, 뽀로로 한글박사, 각종 사운드 북. 그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아빠 빈자리 채우기 용 상비 장난감이 없으면 불안하기만 한데.

 결국 아빠가 떠나자마자 짜잔 펼친 장난감에도 아이의 기분은 쉬 풀어지질 않고. 매번 장난감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듯하여 회의에 빠진 후 단 걸로 회유하기에 이르러 아빠가 떠난 직후 평소 원하던 사탕을 다량 내밀게 되고 말았으니. 장난감이나 사탕이나 뭐가 다르겠소? 이런 대체물로 마음을 달래는 대신 스스로 강하게 이별에 내공을 쌓게 해야 하는 것인가?

 아아, 이 나이가 되도록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니.

 

 2주 전 결국 남편의 의견을 수용, 아이가 잠든 새벽에 남편이 길을 떠나는 걸로 전략을 바꿨다. 아침 눈을 뜬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마조마했는데.

 “아빠는 일하러 갔네?”

 아니, 육아 전문가의 의견이 무색하게 아이는 훨씬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놀고 잘 지냈다.

 아, 2년이 넘도록 가슴 미어지는 이별의 장면을 견뎌왔거늘, 나는 베이비 위스퍼에 이어 또 한번 육아 전문가에게 얕은 분노를 느끼고 만다.

 

 그새 능청이 는 아이는 일하러 가.’ 발언의 위력을 알았는지 장난기가 드글드글 굴러가는 눈을 하고 수시로 엄마, 일하러 가.’‘할아버지, 일하러 가.’‘할머니, 일하러 가.’ 외치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여느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자주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 아들이 이별에 지지 않으면 좋겠다. 보통의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게 하는 엄마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만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좋은 점을 발견해 조금더 단단해지고 무뎌졌으면 한다.

엄마는 네가 멀리 기차역이 보이면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세계로 향한다는 설렘에 심장이 뜨거워지고 발걸음부터 빨라지는 사람이면 참으로 좋겠다. 뒤에 두고 떠날 세계에 마음 뺏겨 주저하는 대신 두려움 없이 새로운 세계에 성큼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굳고 곧고 단단한 사람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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