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권하는 엄마 생생육아

나는 관대하다. 마을에서 나보다 관대한 엄마를 본 일이 없다. 기름에 쩐 핫도그며 질 나쁜 팥 앙금이 가득한 붕어빵, 치아가 썩어 내릴 것 같은 달달한 케이크까지 기꺼이 허락한다. 먹기만 하면 다 괜찮다.

 

 3인의 엄마가 모였다. 밥에 김 한 조각만 올려줘도 냉큼냉큼 잘 받아먹는 두 아기의 엄마는 흐뭇하다. 하지만 도무지 먹으려들지 않는 아기를 둔 엄마의 얼굴은 시름이 깊다. 뽀로로 만화의 재생과 멈춤 버튼을 반복적으로 누르며 엄마는 아기와 협상한다. 아기는 밥 한 입 꿀꺽 삼켜야 뽀로로를 계속 볼 수 있다. 밥 잘 먹는 아기 엄마였던 나는 그 광경을 좀 안쓰럽게 바라봤다. 사람 일이란 게 한 치 앞을 모른다는 속담을 까맣게 묻어둔 채로.

 

 하여튼 먹성 좋은 아기였다. 분유량 하루 1000ml를 넘지 않는 게 좋다는 신생아 시절에도 쉴 새 없이 더 달라 울어대는 통에 난감할 정도였다. 이유식으로 넘어간 후에도 여전해 삼 시 세끼, 간식까지 꼬박꼬박 잘도 먹었다.

이유식에 돌입한 초보 엄마는 쇼핑부터 시작한다.

집에 있는 걸로 적당히 하면 된다.”

할머니가 전하는 진리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아니, 내 새끼 먹을 걸 적당히라뇻!”

 

 <삐뽀삐뽀 119 이유식><아기가 잘 먹는 이유식은 따로 있다>에 소개된 이유식은 다 흉내 낸다. 비트며 비타민, 콜리플라워 잘 알지도 못하는 채소도 시도한다. 이왕이면 용량도 정확한 게 좋겠다. 기가 찰 노릇이다만 접시저울을 사들여 채소 5g 무게를 맞추고 앉았다. 알알이 쏙쏙 아이스큐브도 크기별로 장만했다.

 더블하트 조리기로 채소를 찧고 빻고 거르고 즙내고, 타파웨어 차퍼로 쌀과 고기를 갈아 균등 배분해 큐브에 담아 냉동 보관한다.

 음식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만들어 글라스락 유리 용기에 나눠 담고 매 끼니마다 중탕한다.

격일로 돌아오는 이유식 조리의 고단함은 먹성 좋은 아기가 잊게 한다. 제 머리도 제대로 못 가눈 채 갸우뚱하게 부스터에 앉아 제비처럼 짝짝 입을 벌리는 내 새끼. 야무지게 숟가락을 받아 무느라 흘리지도 않네. 물건 사들이는 것부터 좋아하는 엄마가 장만한 플라스틱 턱받이며 천, 일회용 턱받이는 쓸모가 없다. 나들이 때 필요하다며 마련한 휴대용 이유식기며 죽통도 몇 번 사용도 않았다.

 음식 만드는 것에서부터 나들이 나설 때 준비물까지 참으로 번거로웠다만 안심에서부터 흰 살 생선, 연어, 대게살, 다양한 채소 등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주니 참으로 호시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른식에 접어들며 돌변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된장국, 달걀국, 호박 볶음, 으깬 두부, 감자, 생선 모두 오케이였다. 헌데 두어 달이 지나 돌연 아기가 음식을 뱉는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모든 음식이 싫어졌다는 듯. 전날까지만 해도 어떤 전조도 없었거늘속수무책이다.

 소아과에 문의하자 어금니가 한꺼번에 나 그럴 수 있단다. 치과에 가자 과연 어금니 여섯 개가 동시에 나고 있으니 두어 달 기다려보면 괜찮으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허나 시간이 가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기는 입에 음식을 넣기만 하면 뱉는다. 식탁의자에서 바닥까지 수직 낙하하는 음식물의 잔해들이 늘어나며 어미의 주름은 깊어만 가니.

 아기는 여간해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려 한다. 오직 아침, 저녁으로 우유만 200ml씩 꿀꺽꿀꺽 들이킬 뿐. 그 잘 먹던 삶은 고구마며, 달걀, 바나나와 잘게 간 사과도 한 순간에 딱 끊었다.

 흔한 육아서와 전문가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편식의 원인은 해당사항 없음이다. 아기는 단 과자를 먹은 적도 없고 식간에 지나친 간식을 먹지도 않았다. 어쩌다 먹는 과자도 유기농 쌀 과자 정도. 게다 아무튼 그 전까지 편식 없이 뭐든 잘 먹던 아기가 아닌가!

 고형 음식을 거부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어미의 시름은 바닥을 알기 힘들어진다. 생으로 굶길 수가 없어 생각한 게 미숫가루. 이 날부터 아기는 삼시 세 끼 식사를 미숫가루로 대신한다. 그 외는 원액기에 짠 바나나나 사과즙 정도가 아기가 먹는 음식의 전부였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도 가고 한의원도 가봤다. 처음 의사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엄마의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아랑곳없이 흔한 편식 정도로 여기며 간식만 안 주면 된다, 몇 끼 굶겨라, 비장이 약해 그렇다, 맥 좀 짚으면 알 수 있단다. 허나 시간이 흐르고 의사들은 슬슬 특별한 발달상의 문제가 없으면 내버려두라며 접고 만다.

 “밥 안 먹던 아무개 아들이 이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구료.”

 풍문을 듣고 찾은 곳에서 처방해준 미심쩍은 약도 물에 타 먹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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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울에 유기농에 유난을 떨던 엄마는 뭐라도 먹으라는 심정으로 달달한 과자며 부드러운 빵을 내민다. 허나 아기의 굳은 입술은 열리는 법이 없었다. 입을 벌려 억지로 밀어 넣어도 봤으나 허사였다. 아기는 달콤한 맛에도 굴하지 않고 모조리 뱉어냈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씹어야 할 시기에 씹지 않는다는 것도 큰 걱정이다. 액체만 들이킬 뿐 제 이로 씹는 음식이 전무하니 뭐라도 씹어서 삼켜만 주면 대만족인데 간식도 통하지 않는다.

 

 ‘아기가 밥을 안 먹어 고민이에요, 편식이 심해요.’ 그 어떤 고민도 나의 고민과 유사하지 않았다. 밥은 안 먹고 자꾸 간식만 먹으려 든다거나 특정한 반찬만 먹으려는 정도라면 그저 입맛의 문제다. 의사의 흔한 처방이 먹힐 여지도 있을 터다.

 하지만 아기가 밥을 안 먹어요,라는 내 고민은 과장이나 비유가 아닌 순도 일백퍼센트 말 그대로였다.

 또래 아기들이 밥 먹는 걸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조언을 수렴, 결국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생후 3년은 끼고 살겠다던 결심도 별 수 없다.

 “이런 애들 많아요. 걱정 마세요. 친구들하고 있음 금방 먹죠.”

 자신에 차 있던 원장 선생님은 몇 달 후 어머님, 정말 너무 힘들어요.”라며 체념조의 고백을 하기에 이르시니. 쏟아주신 정성을 생각하면 죄송할 따름이다.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아기는 어린이집에 등원한 지 1년이 다 돼가거늘, 단 한 번도! 과장이 아니라 진정 단 한 번도! 밥을 먹지 않았다. 무리에 섞여 독야청청 숟가락으로 장난만 칠뿐.

 결국 할머니는 용하다는 점집까지 찾아 아기가 밥을 안 먹는다는 문제로 상담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30개월에 들어서며 아기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밥을 먹었다. 물론 그렇게 간단히 순조로운 해피엔딩이 이어질 리야 없다. 1~2주에 한 번 김 아니면 치즈를 얹어 몇 숟가락 먹는다. 다른 반찬을 시도해보지만 불가하다. 허나 고형의 음식을 먹는다는 게 어딘가! 감격에 겹다.

 문제가 없지는 않다. 뭐라도 먹이겠다는 엄마의 눈물겨운 시도가 뒤늦게 빛을 발한 나머지 아기가 단 것만 찾는다. 현재 33개월 아기를 상대로 엄마는 매일매일 협상을 한다.

 "밥을 세 숟가락 먹으면 핫도그를 줄 테다, 약과를 줄 테다, 쿠키를 줄 테다, 사탕을 줄 테다."

 아, 11식에 성공하면 엄마는 쾌재를 부른다. 유기농이 웬 말이냐, 11식이면 충분하다!

 

 오호통재라, 엄마는 울고 싶다. 혹 이런 아기를 양육한 경험이 있으신 선배 엄마님들이 계시다면 부디 어여삐 여겨 조언을 좀 주십시오. 읍소합니다. 흑흑.

 

 

 

 

 

 

---이유식 관련 지출

1.더블하트 이유식 조리기 세트(22,677)- 어떤 종류든 이유식 조리기 세트는 필요한 것 같다.

2.더블하트 이유식 피딩세트(15,728)- 결국 그냥 이유식 그릇. 피딩세트라는 이름에 무턱대고 사들였으나 그것은 그냥 그릇이었소.

3.더블하트 휴대용 이유식기(4,243)- 그냥 이유식 보관함을 사용하면 된다. 이유식 보관함이 따로 있다면 전혀 필요 없다.

4.이유식 조리스푼(4,500)- 아기 이유식 전용의 조리주걱이 있는 것도 괜찮다.

5.피셔프라이스 이유식 보관함 4set X 2 (6,000)- 플라스틱보다는 강화유리로 된 보관함이 훨씬 나을 듯.

6.글라스락 이유식 보관 용기 5pcs (14,130) 중탕 시 편리.

7.알알이 쏙 아이스 큐브 소, , 대 각 하나씩 (10,500)- 15g45g짜리 중, 대는 매우 유용하나 5g짜리 소는 없어도 무방하다.

8.접시저울 (가격 기록 없음)- 2~3천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기억, 채소와 고기 무게를 재려 샀는데 알알이 큐브가 있어 필요 없어짐.

9.톨스토이 플라스틱 턱받이 (5,780)- 아기가 뒷목에 거슬리는 부분을 너무 싫어해 몇 번 사용하다 방치.

10.유피스 일회용 턱받이 2박스 (14,000)- 전혀 사용하지 않음. 아기는 플라스틱뿐 아니라 목에 거는 모든 것을 싫어했던 것임.

11.이유식 죽통 (9,900)- 나들이 시 사용하려 구매. 허나 막상 잘 사용하지 않음. 제품이 나쁜 건 아니나 매번 챙기기가 애매함.

12.이케아 이유식 스푼 6개 세트 (2,900)- 이것과 더블하트 이유식 스푼을 함께 사용. 줄곧 사용해온 주제에 소재가 좀 미심쩍은 기분이 들긴 했음.

13.젤리맘 범보의자 (15,000) 이유식 초기 사용, 그냥 바닥에 앉혀 먹는 게 편함.

14.맘스프리 부스터 (25,400)- 식탁에 장착. 아기가 답답해 함.

15.지스코 식탁의자 (33,300)- 어른식 초기까지 사용, 어느 정도 크자 어른 식탁의자에 앉으려 해 사용하지 않음.

 

이리하여 누락된 것도 분명 꽤나 많을 법한 이유식 관련 물품의 지출 총합은 180,239원입니다.

이유식에 관련된 물건은 사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 많습니다. 이유식 조리기 세트나 적은 양을 나눠 담아둘 수 있는 보관함이야 필요하지만 피딩 세트니 이유식기니 결국 다 그릇이니 넓은 어른 밥그릇에 죽을 퍼서 살살살 식혀 주는 게 오히려 더 좋을 듯도 하고요. 부스터나 식탁의자도 끊임없이 광고하고 집집마다 있으니 사야할 것 같지만 실 사용 시기도 길지 않아요. 하지만 자기 식탁의자를 굉장히 좋아하던 지인의 아기도 본 터라 딱 잘라 말하기는 힘이 드네요. 암튼 뭐든 미리미리 사서 쟁여두지 마시고 필요할 때 하나씩 사는 게 낭비가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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