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천재의 탄생 생생육아

 보아하니 아들에게는 창의력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게 아닌가 싶다. 21세기 형 인재란 모름지기 남과 같지 않다는 데 방점을 찍어! 독창적이며 개성적인 사고를 해야 하거늘,

 4살에 이른 지금까지도 아들에게 블록이란 오직, 올림픽 정신에 충실하여 높이높이 더 높이 쌓기 위해서만 존재를 하니, 그렇다고 능히 금메달을 따고도 남을 만큼, 그 누구보다 높이 쌓을만한 집중력과 인내력을 가졌느냐하아, 일단 나오는 게 한숨이요, 흘기는 게 눈길이니.

 그저 높이 쌓기만 하는 블록놀이 패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 패턴, 그저 두바이에 그 높다는 전망대를 목표로 안정감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높이높이 쌓기만 하는데, 이 같은 부실공사의 귀결이란 게 뻔하니, 기다렸다는 듯 블록이 흔들림 짜증이 이어진다.

 둘째 패턴, 어쩐 일인지 블록이 흔들리지 않는다, 흐음, 이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일이므로 심심하다, 손으로 툭 친다, 블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레고가 제아무리 진화한들 우리의 블록놀이는 여기에서 끝!

 

 그래, 이는 네 탓이 아니오,  너에게 손톱만큼의 창의 DNA도 물려주지 않은 이 에미 탓이로세, 

 그리하니 내 너를 어여삐 여겨 기꺼이 다양한 놀이와 책읽기를 통해 인지력과 사고력을 확장해주마.라고 생각하는 엄마였다면 좋았을 것을, 쯧. '내 책은 내가 읽을 테니 네 책은 네가 읽도록 하라.'는 교육방침에 입각 자유방임형 독서교육을 실시한 결과,  아들은 보란듯이 책 읽지 않는 아이로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자자, 늦지 않았다. 엄마의 무릎독서가 책과 사랑에 빠지는 시작이라 하니, 이리 와 자세를 잡거라.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엄마는 책 한 권을 빼 자세를 잡은 참이다그러나 아들은 책이 한 장 넘어가기도 전에 매번, 제 갈 길을 찾아 나서는 참으로 무익한 독립심을 발휘하고 마니!

  '내 결코 책을 읽어주지 않는 것이 아니오, 저 독립적인 아이가 엄마와 책읽기를 거부한다오.'

  이와 같은 곤란함을 토로하자, 친구 조언하길. “이 봐, 친구, 자기 전 너가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라구!”

 그리하여 누운 자리에서 흥부와 놀부도 소환하고 심청이도 불러봤다만 아들은 단호하게 끌까.”라며 이야기 듣기를 거부하고는 뒹굴뒹굴 한밤의 체조를 시전한다거나 밤의 고요를 만끽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엄마는 최대한 상황의 좋은 점을 찾기 위해 모처럼 낙천성을 발휘하니,

 책 읽기만 수십 년 좋아해 온 이 엄마가 대단한 창의력을 발휘해 인류에 길이 남을 공헌을 했나하면 세상에, 그럴 리가?! 인류는 고사하고 제 앞가림이나 잘하면 다행이요 하는 판국이니, 그렇다! 우리는 모두 책읽기의 미덕을 지나치게 과장하며 쓸데없는 압박과 부담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드물게도! 네 살에 이르도록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은 아이가 탄생했는데, 아니 어쩐 일인가. 책에는 영 관심없던 아들이 순수하게 글자에 큰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길바닥에 노란 글씨로 적힌 소방차 전용 위를 지나며 몇 번이고 소방차의 시옷.’ 주사맞는 지옷이라며 폴짝폴짝 뛰는가 하면 <뽀로로 한글박사><립프로그>만 하나 턱 쥐어줬을 뿐, 본격적인 방문 학습은 고사하고 엄마표 놀이학습도 실시하지 않거늘 스스로 ABC와 두 자릿수를 깨침은 물론, 한글도 통으로 드문드문 읽다 요즘은 기역’‘니은' 같은 이름까지 읊으니,

 변두리 마을에서 유유자적 하루를 보내는 엄마는 하루 수십 번 내 아이는 영재?'라며 어깨춤을 추다 해 떨어지기 전에 아니아니, 참으로 범상한 기운이 흐르지 않는가.' 성공적 현실파악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차인데,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침이다. 아들은 매번 그러하듯 아파트 입구 머릿돌 앞에서 일단 멈춤. <.릿.. ABC 아파트 1단지. ABC 건설> 기분 좋게 소리 내 읽고서야 발걸음을 옮기는데!

 흠칫, 뒤통수에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의 주인공은 아들 또래 아이 손을 잡은 엄마다.

 그녀는 , 쟤는 글자 다 읽는다."라는 말로 자신의 아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우던 터였으니, 이 때 나는 진실을 알렸어야 했다. 허나 영재 아들을 둔 엄마의 기쁨에 한 순간 도취한 나머지, 사실을 왜곡, 과장하고 마는데. 

 “얘는 몇 살이에요?”

  지극히 엄마다운 관심을 보이시는 그녀에게 “4살이에요.” 기꺼이 알려드린다. 조금 양심적으로 “1월생이에요." 강조도 해 본다. 허나 그녀에게 1월생은 중요치 않다.

 봤지? 쟨 다 읽는다." 

 그녀에게 아들은 잠시 언어영재 쯤으로 오해되었다.

 

 내, 그녀에게 어이하여 진실을 고하지 않았던가? 무수히 많은 거짓과 사실왜곡이 판을 치는 이 판국에 어찌하여 나까지 진실을 은폐하였단 말인가, 뒤늦게 길을 지나다 언어영재를 조우한 그녀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혹 엄마에게 닥달 당했을지 모를 어린 동심에게 사죄합니다.

 

사실 얘는 아침마다 이거 읽고 다녀요. 글자 다 깨쳐서 그런 거 아니에요!!”

 

결국 그런 식으로 변두리 마을 어느 아침, 언어천재가 탄생하였다는 그런 이야기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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