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23개월, 생애 첫 선행학습 생생육아

극성 엄마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엄마가 되기 전까진 극성 엄마 씨는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애초에 극성의 유전자가 몸속을 둥둥 떠다니다 양분을 죽죽 흡수해 싹을 틔우고 잎이 나 마침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 이윽고 극성 엄마 등극!

 허니 나처럼 뭐 하나 열심히 하려는 의지, 끈기, 노력 두루두루 없는 사람이 극성 엄마가 될 리는 만에 하나조차 없다 굳게 믿었거늘.

 

 나는 23개월 아들을 닦달하고 앉았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다시 해보라고!”

 아들은 엄마의 말이고 의도고 전혀 이해하지 못해 까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뽀로로 쇼핑 카트의 오렌지 주스 병을 꺼낸다.

 “돌려 봐. 돌려서 열어보자. 엄마 따라 해볼래? 이렇게, 이렇게. 손목을 샤샤샥 꺾고.”

 그러하다. 엄마는 개인 과외에 돌입했다. 허나 아이는 딴청. 주스 병을 흔들고 굴리다 멀찌감치 던지고 까르르.

 좋다, 그러 하다면 이번엔 폴리 밀대다, 으샤!

 “자자, 밀어보자. 옳지.”

 이건 좀 먹히는가 아이는 폴리 밀대의 길쭉한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밀고 다닌다. 오가다 식탁 의자에도 쿵, 벽에도 쿵.

 “아니라고! 장애물이 있으면 피하라고! 모퉁이에선 돌고!”

 결국 이마저도 영 재미가 없다. , 폴리 밀대를 바닥에 떨구고는 다른 놀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엄마는 다시 아이를 잡아 앉힌다.

 “요건 어때?”

 운동화 끈 꿰기란 놈이다.

 “구멍에 쏙쏙 넣으면 되는데.”

 허나 구멍이 너무 작은 걸까몇 번 시도해보다 안 되자 짜증을 낸다. 허나 엄마는 틈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렇다면 실 꿰기 동물농장 등장이오. 꽥꽥 오리, 꼬꼬 닭, 이힝힝 얼룩말, 꿀꿀 돼지.

 “보라고. 엉덩이에 주사를 콕, 아야야, 입으로 쏙 나오지?”

 신이 난 척 동물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실에 꿰어 본다만 아이는 흥이 나질 않는다.

"그럼 블록 쌓자. 컵 쌓을까 여섯 개 이상 쌓아야 한다고! 아니지, 아니지, , 이게 왜 안 되지? 이게 어렵나? 이게 뭐가 어렵냐?”

바보 아냐?란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  "그럼 토토. 토토 어부바할까? 토토 맘마 주자.”

 토끼 인형을 불쑥 내민다. 허나 이 또한 썩 내키지 않는 모양새다. 급기야 엄마는 폭발, 아이에게 분노를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이리 간단한 걸 단 하나도 못하다니 내 이해하래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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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 영유아 검진 항목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한다. 벌써 한 달 여를 보고 보고 또 봐서 30개의 질문을 빠짐없이 외우고 있다.

 의사소통, 대근육 운동, 소근육 운동, 문제해결, 개인-사회성. 다섯 분야 영역에는 각각 6개씩의 수행과제가 있다.

 각 문항에 대해 예, 가끔, 아니오 체크한다.

 10, 가끔 5, 아니오 0. 모든 항목의 점수를 합산한다.

 정상발달 범주에 속하려면 의사소통 16.4, 대근육 운동 38, 소근육 운동 29.6, 문제해결 31.2, 개인-사회성 35.4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헌데 아이는 대근육 운동 영역을 제외하고 모든 영역이 평균 이하다. 심지어 의사소통 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의사소통 향상이야 능력 밖, 당장 어찌해 볼 도리 없으니 궁여지책 다른 분야에 매달린다. 이 무어라고 전체 평균향상을 위한 엄마의 발버둥만이 눈물겹다. 질문을 떠올린다.

 

  아이가 신발 끈 구멍이나 다른 구멍에 끈을 끼우는가.'

  '아이가 혼자서 작은 장난감이나 상자를 여섯 개 이상 쌓는가.'

  ‘장난감 손수레, 유모차 등을 밀 때 장애물이 있으면 피하고, 모퉁이는 돌아가는가.’

  ‘인형이나 동물 장난감을 갖고 놀 때 흔들어주기, 먹이기, 재우기 등의 흉내를 내는가.'  

  

 집에 있는 생활용품을 활용, 서서히 배우고 익히게 두면 이 아니 좋을쏘냐만 엄마는 무익한 스파르타 학습을 체택하니. 

 뭐 하나라도 얻어 걸리라는 심정으로 shoes zoo’s(운동화 끈 꿰기)며 다솔 원목 실 꿰기, 폴리 밀대, 토토는 혼자 할 수 있어요 인형을 사들였다.

 진짜 운동화로는 힘들던 것이 장난감 운동화로는 수이 될 지도 모르고 뽀로로 카트로는 안 되던 게 폴리 밀대로는 거뜬할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수행과제를 한 번만 성공하면 가끔에 체크해 5점 보태려는 심산이었다. 

 

 3차 영유아 검진 데드라인까지는 한 달. 그 안에 어떻게든 평균에 가까워져야 하거늘 천지도 모르는 아이가 시종일관 비협조적이다.

 이미 놀이가 더는 순수한 놀이가 아님을 잽싸게 간파한 아기는 학습의 연장선에 있을 뿐인 놀이가 마뜩찮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 사람이란 게 멍석 깔아주면 더 하기 싫은 법이거늘, 학습의 멍석을 주루룩 펼쳤으니 무어 좋으리오.

 엄마야 속이 타건 말건, 시일이 촉박하건 말건, ‘나는 내 길을 가련다.’ 아이는 놀던 대로 놀고 먹던 대로 먹고 자던 대로 잔다.

 

 한 달 가까운 스파르타 선행학습의 눈부신 성과는 결국 나타나지 않고, 데드라인을 꽉 채워 받은 영유아 검진은 진실성이 심히 결여되었으니.

 엄마는 애매하게, 엇비슷하게 했나? 싶은 것에 죄다 가끔이라 체크함으로써 대충 평균에 가깝도록 점수를 조작했다.

 이미 전문가에게 언어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후였거늘 또 한 번의 발달지연 판정을 겁내고 있다. 그러하다. 못난 엄마는 부족한 아이를 인정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눈속임이라도 좋으니 정상 범주 안에 남으려 바둥거렸다.

 

 '사교육은 다 무엇이며 선행학습은 또 무어란 말이오, 내 이 아이를 그저 자유롭게 방목하며 무탈하기만을 기원하겠소.'

 내 그런 교육관을 가졌다 진정 믿었거늘 궁지에 몰리자 민낯이 스르르 고개를 내밀었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한 기준에 다다를 때까지 몰아붙이는 엄마, 사안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참 한심하다.

 지금이야 오직 정상 범주에 들고 싶은 엄마의 절박한 마음이었다 변명을 한다지만 이후 성적의 기대치를 디밀며 아이를 잡지 않는다 어찌 보장을 하리.

 일련의 비이성적 행태를 통해 눈을 뜨고야 말았다.

 내가 바로 다가올 미래,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선행으로 달리고 달리고 달릴 극성 엄마의 씨앗을 품고 있었구나, 오호애재라.

 

 참으로 감사하게도 아이는 천천히 마침내 정상 발달의 영역에 들어왔다. 그리고 단기 속성 과외로 아이를 괴롭힌 엄마는 조그맣게 깨달은 바 있으니.

 shoes zoo’s(운동화 끈 꿰기)8,200, 다솔 원목 실 꿰기가 15,280, 폴리 밀대가 16,400, 그리고 토토는 할 수 있어요가 17,150. 이리하여 도합 57,030원의 값싼 선행 학습료를 치르고 얻은 깨달음은 이러하다오.

 

 하나마나 한 뻔한 소리오만 아이의 의지 없는 강요된 학습은 참으로 의미가 없더이다. 학습이란 저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면 장난감조차 외면하거늘 앞날의 학습지며 학원은 오죽하리오.

 

 부디, 내 안 어딘가 잠복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극성의 씨앗이 햇빛 아래서 싹을 틔우지 말아야 할 터인데, 제정신 단단히 붙잡고 두 발 땅에 딱 붙이고 이성의 끈을 꼭 붙들어야 할 것 같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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