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건지기까지 생생육아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다고 인생, 수지맞는 장사라던 노래도 있다만 세월이 변한 탓인가, 옷 한 벌 갖고는 한참을 밑지는 장사 된 지가 오래다.

 

 2011521, 임신 테스트기를 두 개 샀다. 생리 예정일을 넘긴 지도 일주일. 혹여나 하면서도 설마 싶었는데 두 줄이다. 다음 날 아침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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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받아든 산모수첩에는 초음파 사진이 붙어 있다. 깊은 바다에 닿은 햇빛처럼 일렁이는 물결 속에 동그랗고 까만 콩이 하나, 그 씨앗이 자라나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할 것을 예감한다.

 은행에서 KB 고운맘 카드를 발급받고 창구의 여직원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이제 막 첫 페이지를 채운 산모수첩을 또 펼쳐본다. 혈압은 110/75, 몸무게 49킬로그램. 돌아갈 수 없는 숫자임은 미처 몰랐다.

 출산 예정일은 2012123.

 그 날을 기다리며 꼬박꼬박 병원을 찾았다. 67, 동글동글 까만 콩은 허리가 잘록 들어간 땅콩이 돼 있다. 키는 2센티. 심장소리가 들린다. 8주차에 일반적으로 한다는 산모종합검사를 받았다. 간단한 검사에도 긴장이 됐다.

 

 가벼운 어지럼증으로 시작된 입덧이 두 달 이상 계속 됐다. 끊임없이 메슥거리고 토하고 어지러운 정도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지만 누가 머리에 나사를 박고 조이는 것 같은 두통이 24시간 계속 되는 날은 아기고 뭐고 다 싫어졌다.

 화장실 문 앞에서 새우등을 하고 엎드렸다가 사다코처럼 기어들어 변기에 얼굴을 박고 토악질을 해댄다. 더 토할 것도 없어 신물까지 끌어올린 후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져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를 무한 반복했다.

 

 88, 여름이 한창인 16주 즈음 태아기형아 검사를 실시했다. 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신경관 결손, 무뇌아 등 태아의 이상을 발견하는 검사란다. 35세를 넘긴 초산의 고령 임산부인지라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문득 문득 걱정이 일었다.

 양수 검사도 하는 편이 좋을까 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권하지 않는단다. 찬반양론이 여전했지만 보통은 하는 쪽을 택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검사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며 만약 검사 결과가 나쁘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게 의사 선생님의 입장이었다. 뭐든 편하게 느긋하게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낙천적 조언을 따랐다.

 

 20주의 초음파 사진에는 아기 얼굴이 찍혔다. 몸을 웅크린 채 주먹을 움켜쥐고 가슴 쪽에 대고 있다.

 140/80, 120/70, 130/90, 혈압은 높았다 낮았다 널을 뛰었으나 몸무게만은 50, 54, 56kg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더니 이 무렵 이미 60킬로그램에 도달했다. 체중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주의가 계속됐지만 식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뭘 먹을까란 생각으로 하루가 갔다. 친정어머니는 얼른 자라, 자고 일어나서 또 먹을 수 있다며 한밤의 식사를 저지했다. 먹지 않던 것, 못 먹던 것이 갑자기 먹고 싶어진 적은 없었으나 음식양은 코끼리가 호형호제하자 들 정도로 엄청났다. 자신이 그렇게나 먹을 수 있는 인간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111, 28주에 임신성 당뇨 검사를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훨씬 정밀한 검사를 하는 듯 싶던데 내가 다니는 곳에서는 하얀 액체 덩어리를 마시고 소변을 받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이곳 의사 선생님은 이런저런 검사를 좋아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매번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아기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어떤 날은 귀여워 보였다가 어떤 날은 내가 인간의 아기를 가졌는가, 외계의 아기를 가졌는가 의심이 들게 심히 찌그러지거나 일그러지거나 구겨져 있었다.

 아기의 움직임도 자주 느껴진다. 움직임이 오래 없는 날에는 궁금하고 초조해져 자주 말도 건다.

 안정기에 접어든 12주에서부터 28주까지 4주에 한 번 꼴이던 병원 방문이 이후 2주에 한 번 간격으로 짧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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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산모의 몸무게는 70kg. 한밤 TV를 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입으로 집어넣는 나를 본 남편이 화들짝 놀란다. 잠에서 깨어 나온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하마인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었다.

 욕조에 다리를 죽 펴고 앉으면 엉덩이가 끼어 일어설 때 좌우로 몇 번 흔들흔들 한 후 천천히 빼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따뜻한 물을 맞는 게 좋아 한참을 있다 보면 등 뒤쪽의 물들이 내 몸에 막혀 배수구까지 흘러들지 못하고 고여 있다. 확실히 나는 거대해지고 있다.

 산모만큼이나 태아의 몸무게도 만만치가 않다. 아기의 몸무게는 이미 3킬로를 훌쩍 넘었다. 심지어 몸무게의 대부분을 머리에 할애한 내 아기는 다른 아기에 비해 머리가 너무 큰 탓에 자연분만이 힘들 것 같단다.

 

 36, 친정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30분 간 태동검사를 했다. 양수 검사와 정밀한 임신성 당뇨 검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의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의기소침해졌다.

 출산이 임박해지며 매주 병원을 찾았다. 37, 분만 전 종합검사를 했다. 1층으로 2층으로 지하로 엑스레이도 찍고 태동 검사도하고 걸음이 분주했다.

 117, 39주에도 출산 조짐은 없다. 예정일인 23일은 설이다. 의사는 그때에도 출산할 것 같지 않다며 설 연휴가 끝나는 25일 입원하자고 한다.

 2012123, 출산 예정일에도 평소와 같다. 언니는 배를 보더니 아직 아닌 것 같단다. 출산이 임박하면 배가 아래로 처진다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는 여전히 동그랗게 솟아 있고 자궁수축도 전혀 없는데 실은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겠으며 소변이나 대변이 자주 마렵지도 않다. 모든 것은 여전했고 아무것도 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125, 입원해 가벼운 책 한 권을 읽었다. 26일 새벽 몇 차례 관장이 이어졌고 간호사가 몇 차례 공포의 손 넣음을 반복했다. 간호사도 지친 눈치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는 내려오지 않는다.

 

 26일 새벽, 유도 분만이 시작됐다. 아기는 이미 4킬로를 넘은 것 같다. 다섯 시간이 흐른 후 의사는 수술을 결정했다. 이미 예정일을 넘겼고 아기는 지나치게 컸으며 스스로 내려올 조짐을 보이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남편도 긴장하고 있었다.

 수술실, 간호사가 귀에 헤드폰을 씌워줬다. , 음악이 나오는구나 인지하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초록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여전히 주위에 보였다. 마른 입술을 겨우 떼 물었다.

 “아기는요?”

 간호사가 답했다.

 “벌써 나갔어요. 학교 보내도 되시겠어요.”

 유치원도 아니고 학교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친정어머니와 남편이 손을 잡는다.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동안 마음으로 수없이 기도했을 어머니와 남편이 느껴졌다. 병실로 옮겨져 그 밤 내내 앓았다.

 아직 아기를 보지 못했다.

 

 127, 오후 마침내 유리 너머의 아기를 만났다. 발갛고 통통한 아기를 보며 별로 머리 안 큰데? 몸무게 별로 안 나가 보이는데?’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이 오고, 간호사가 다른 아기들을 안아 보여줬다. 그제야 알았다.

 ‘, 우리 아기 머리 많이 크구나.’

 어머니와 남편은 아기를 처음 본 순간을 읊었다. 다른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아기와 달리 얼굴은 넙대대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게 갓난쟁이 같지가 않더라며. 과연 학교 보내도 되겠다던 간호사의 말을 뒷받침했다.

 출생 3일째, 아기는 난청 검사와 대사질환 검사를 했다.

 

 지나치게 따뜻한 조리원 방과 수유실을 오가며 2주를 보냈다. 수유는 잘 되지 않았고 조리원에 혼자 남겨지면 자주 눈물이 났다.

내가 어쩌자고 이 험한 세상에 저 연약한 것을,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와 마음이 바닥을 쳤으며 누가 와도 반갑지 않았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49kg에서 시작한 몸무게는 결국 30kg이 불어나 78kg이 됐다. 다행이 아기와 함께 식욕도 출산했는지 더는 뭔가 먹고 싶지 않았다. 조리원에서 나오는 밥과 국도 마지못해 겨우 먹었다.

그랬다, 그랬었다, 그런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병원과 조리원을 떠나오고 가벼운 산후우울감도 걷히자 돌아온 것은 입맛.

 아기와 함께 내 안에 둥지를 틀었던 입맛은 아기가 떠난 후에도 여태 남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이제 36개월,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엄마는 와구와구 먹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16번 병원을 찾았다. 병원비는 총 473,100. 수술비와 일주일 입원비가 811,710. 무통주사 비용이 50,880. 출생 후 실시한 아기의 난청검사와 대사질환 검사비가 109,320. 일주일 조리원 비용이 750,000.

 하여 출산까지 총 2,195,010원이 들었다. 여기에 KB 고운맘 카드가 지원한 40만원을 더하면 한 아이의 출산에 대략 2,595,010원이 든 셈이다.

 자연분만과 산후조리를 집에서 한다 해도 얼추 출산에 백만 원 정도는 잡아야 하니 이래서야 옷 한 벌 건지는 걸로 수지맞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싶다만.

 

 산천초목의 축복으로 한 아기가 나를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덕분에 나는 코끼리도 돼 보고 하마도 돼 보고 마침내 엄마가 되었다. 허니 실상 나에게 이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가 있겠나.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내가 엄마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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