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여도 괜찮아 생생육아

자연분만, 모유수유를 2단 콤보로 실패하자 의기소침해졌다. 뭐랄까, 엄마가 되기 위해 마땅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를 생략해 버린 느낌.
 아기 머리가 커서 자연분만이 힘들거란 이야기는 이미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몇 차례 들어 예상했지만, 엄마들의 꿈이라는 완모마저 실패하자 속이 상했다.

 

 조리원에 머물며 다른 엄마들이 젖물릴 때 젖병 들고 있어야 해서 1차 씁쓸.  시간이 흐르고 준비해뒀던 모유 수유 패드와 모유 저장팩을 뜯지도 않은 채 중고로 팔면서 2차 씁쓸. 모유 수유할거라고 의기양양하지 않았냐던 곰탱이 남편의 면박에 3차 씁쓸. 인터넷에 수시로 뜨는 '모유 먹고 자란 아기와 분유 먹고 자란 아기 이 점이 다르다.' 류의 기사 (당연히 모든 점에서 모유 먹고 자란 아기가 뛰어나단다! )에 4차 씁쓸.

 

 뭐, 수시로 씁쓸했다만 감정적 씁쓸함은 그렇다치고 현실적으로 돈이 나간단 말이다. 분유는!!!
 그랬다, 출산 전부터 모유 수유는 엄마로서의 당연한 의무다!라는 감정적 이유에 덧붙여 금전적 이유때문에라도 반드시 모유를 먹이자-했으나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쉬이 이뤄지질 않는다고.
 그렇다면 분유를 먹고 자라난 아기들은 모유를 먹고 자라는 아기들보다 얼마나 더 가욋돈이 드는 걸까? 두뇌나 신체 면역력 차이 등은 다양한 연구결과가 나왔으니 금전적 차이도 알고 싶다.

 

 4Kg으로 태어난 아들은 거의 6개월 가까이 분유만 먹다가 6개월이 지나며 이유식과 분유를 병행해 먹었다. 분유업계의 양대 산맥인 남양의 임페리얼 XO와 매일의 앱솔루트 명작 두 종류만 먹였는데 선택의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먹이던 분유가 남양이었는데 큰 트러블 없이 무난해 생후 3개월까지 바꾸지 않았다. 그 때까지 먹은 분유는 임페리얼 XO 400g 짜리 34개에 800g짜리 1개. 총 14,400g.

 가격은?
 조리원을 나오며 400g짜리 분유를 개당 8,000원에 22개, 그 후 가격이 10,000원으로 인상됐을 때 추가로 12개를 구입했다. 그 후 이마트에서 800g짜리 하나를2만 4천 2백원에 구입. 1단계 분유 구입에 32만 2백원이 들었다.
 만약 아기가 엄마의 정성과 분윳값을 생각했다면 돈은 조금 적게 들었겠지. 처음에는 아기가 어찌나 찔끔찔끔 먹다말다 하던지 다 식지도 않은 분유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 먹는 음식이란 게 두고두고 먹이면 안 된단다. 아직은 자고 깨고 먹고의 습관이 잡히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2단계에 접어들면서 분유 먹는 습관도 조금씩 잡혀갔다. 한번에 200ml씩 꿀꺽꿀꺽 마셔줘 이 엄마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내 비록 참젖은 물리지 못하나 분유로 너를 살찌우리.
 2단계 때는 남양 임페리얼 XO 800ml 2개를 먹은 후 매일 분유로 갈아탔다. 매일 앱솔루트 명작이 2~3천원 더 싸긴 했는데 그 이유로 바꾼 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긴 했는데 그 즈음 아기가 방귀를 너무 심하게 뀌어서 좀 바꿔보면 어떨까 하던 참이었다. 소화가 잘 안 되면 그럴 수도 있다 들어서. 그런 때 마트에서 매일 분유 행사를 하고 있었다. 육아 방문 상담을 받고 선물로 800g 짜리 분유 하나 획득. 그 후 아기똥 솔루션 이벤트에 참여해 또 하나 획득. 그리하여 매일 분유로 넘어왔다. 처음엔 8:2 그후 6:4 이런 식으로 기존에 먹던 분유와 섞어서 자연스럽게.
 아기에게 이 분유가 더 맞았는지 방귀도 현저히 줄었다. (어느 분유가 낫다기보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2단계 분유는 800g짜리 총 12개. 이 중 선물과 이벤트로 받은 두 개를 뺀 10개 가격은 209,349원. 롯데 아이몰, 인터파크, 지마켓, 11번가 등 최저가 검색에 더불어 신규가입, 첫 구매 할인 포인트 등을 적극 이용했다.
 돈 버는 엄마는 마트 구매로 시간을 벌고! 집에 있는 엄마는 인터넷 검색으로 돈을 조금 줄이고!

 

3단계는 800g짜리 21개. 총 비용은 358,950원.

 그리하여 6개월 간 분유 구입에만 쓰인 비용은 888천 499원. (2만 4천원 상당의 공짜 분유 2개도 포함하면 90만원이 넘는다.)
 물론 분유로만 끝나지 않는다. 분유를 타기 위해 산 물은 바로 제주 삼다수로, 이것이 또 6개월 간 몇 병이나 들었는고 하니...하며 적기 시작하려니 끝이 없다, 하하. 대충 월 15만원이 분윳값으로 나가니 분윳값 벌려고 인형 눈이라도 붙여야겠단 말이 완전 농담은 아닌 셈이다.

 

 말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자기 몸을 위해 모유 수유를 거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산모들끼리 죽 둘러 제 새끼 입에 젖물리고 앉아 있노라면 젖 잘 나오는 엄마만큼 부러운 게 없는 거다. 젖병 물린 엄마들은 가물치즙도 마셔 보고 잉어 고은 물도 마시고 평소라면 비리다고 거들떠도 안 볼 돼지족 고은 물도 마시며 다들 필사적이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로 모유가 100ml 정도 나왔을 땐 무척이나 기뻐 젖병에 담아놓고 기념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그리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지 어느 순간 모유는 딱 끊기고 아기는 소젖으로 자라나는데...

 

 지금도 아기한테 분유 먹이면서 미안해하는 엄마들! 힘내세요. 분유 먹으면 면역력도 약하다지만 그래도 세 돌 바라보는 아기는 쑥쑥 잘 자라나고 있습니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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