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상아이, 진상엄마 생생육아

 십 년도 더 전에 아이라는 생물이 도무지 무엇인지 당최 감도 못 잡던 시절에 말이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데려가 집단으로 키우는 게 최고라며 친구들과 진지하게 의견일치를 본 적이 있다. 원, 유유상종이라고 주위에 아이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터라 그 따위 의견에 모조리 박수를 치며 두 엄지를 치켜들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도다. 

 굳이 나누자면 세상 엄마들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전부터 아이를 좋아했던 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세상 아이를 돌아보게 되는 이도 있다. 
 아이라는 게 참 아장아장 발걸음 떼는 것도 귀엽고 오물오물 음식 씹는 것도 귀엽고 아야어여 옹알옹알하는 것도 귀엽다만, 밉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미운 존재가 아닌가. 내 애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남의 애야 오죽하겠나.  
 그러하니 노 키즈 존이 날로 늘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엄마인 나조차 노 키즈 존에 적극 찬성, 취지를 십분 이해하겠으니 아이 없는 사람들의 아이 거부증이야 말해 뭐하리오. 

 예전에 불룩한 배를 디밀고 실룩대며 차 한 잔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출산이 머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아이란 아직 미지의 생물이던 시절이다. 딸을 둔 지인으로부터 엄마 ABC를 수강 중인데 말이다, 가까운 곳에서 사내 녀석 둘이 자꾸 뛰어다니는 거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그 넓은 공간을 종횡무진하는 두 녀석의 존재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심한 응징이랄까, 마음으로 두 아이에게 밉.상.딱지를 붙였다. 잠시 후, 밉상 1이 방뇨의 기운을 어필했고 엄마는 느긋한 동작으로 종이컵을 들었다. 그리고 훌렁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일처리를!
 아, 나는 밉상 아이1의 엄마에게 진상 딱지를 망설임없이 붙였다.  
 딸 가진 지인 역시 "아들 가진 엄마가 저래서 안 되는 거다, 저런 게 일상회되면 어른 남자가 되더라도 노상방뇨며 타인이 불쾌해하는 성적 유희-가령 여자 아이의 치마를 들춘다던가-에도 거리낌이 없어진다."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과연, 참으로 그러하군, 아들 가진 내가 잘 해야겠다며 두 주먹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몇 년 후 내가 붙인 수많은 진상 딱지의 상당수는 다시 회수해야한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으니. 
 배변훈련 중 아들은 조금만 늦어도 바지를 적시고 말았다. 십수 번의 실패가 거듭된 후 결국 주위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쉬야~"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소변통부터 내밀게 됐다. 화장실이나 외진 곳까지 데려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딸 가진 엄마의 상당수도 다르지 않았으니 아들 가진 엄마에게만 너무 가혹한 진상 딱지만은 붙이지 말아주세요. 흑흑. 
 내 일이 아닐 때는 잘도 남발하던 진상 딱지였건만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못 찾겠는데!

 배변훈련 기간의 진상 짓은 생리적 현상이니 그렇다 치자.
 허나 얼마 전 '내 아이 이전에는 아이라는 존재 자체에 거부감'을 가져던 엄마들을 포함,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만한 진상 짓을 하고야 말았으니. 
 때는 찌는 듯한 여름, 평소 알고 지내던 아이 엄마와 놀이공원에 출동했다. 많지는 않아도 찾아보면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몇 있었다. 회전목마도 두어 번, 하늘풍선도 한 번. 처음이라 무서워할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아이는 신이 나 이것도 타고 싶다, 저것도 타고 싶다며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문제의 어린이 버전 청룡열차 앞에 도착을 하였는데! 기다렸던 줄은 딱 우리 앞에서 끊겼고 아이는 세 번을 도는 청룡열차가 눈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이번이야? 이번이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림에 몸이 달았다. 마침내 열차가 멎고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가 입장!
 헌데 안 된단다!!! 두둥, 이것은 청천벽력. 
 함께 갔던 친구는 되는데 아이는 안 된다고. 키가 1미터가 안 되면 보호자가 함께 타도 안 된다며 엄격하게 법을 준수하던 안내원. 
 엄마는 사정했다. "98.2예요. 그냥 태워주세요."
 법은 냉정했다. "안 됩니다!"
 차례를 기다리던 이들이 모두 탑승하는 동안 엄마는 태워달라며 안내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사이 아이는 자리에 착석완료!
 안내원은 내리라며, 이러시면 출발을 못한다며 난감해했다. 
 결국 아이를 안아 슬픈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열차는 아이가 흩뿌린 눈물을 뒤로 한 채 매정도 하게 출발을 하였다.
 청룡열차가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내내 "미숫가루 줘. 미숫가루 먹을테야. 키 클거야."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였으니.  
 처음엔 달래다 울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도 발끈하고 말았다.
 "그러게 누가 밥 안 먹으래? 너가 밥 안 먹어서 이런 거 아냐!!!"
 
 참, 진상도 이런 진상이 있나 싶다. 
 혹 한여름의 대전 오월드에서 키 98.2라며 태워달라고 사정하던 아줌마에게 진상 딱지를 붙인 이들이 있다면 겸허히 모두 받아들이겠다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지 못할 일이 참 많다는 걸 곁에 아이가 오고서야 깨닫는다. 절대 내가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일,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단언했던 일들에 얼굴이 붉어진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편리함때문에, 아이의 웃음을 멈추고 싶지 않은 욕심에 어느새 진상짓도 하는 엄마가 돼 있다. 

 내 비록 엄마지만, 한 때 아이를 싫어하는 과거를 지닌 자로서, 아이가 존재자체만으로 사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여, 나에겐 더없이 사랑스런 아이가 세상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도록 어찌하면 올바른 육아를 해나갈지 고심한다.
 진상 엄마, 밉상 아이 콤비가 되는 일 없도록 잘 해나가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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