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사진, 유혹의 덫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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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부인과에서는 스튜디오와 연결해 아기 동영상 시디와 함께 만삭 사진 무료 촬영권이라는 티켓을 주는 곳이 많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는 텔레토비처럼 배가 불룩 나와서 그것을 기념한다고 사진을 찍는게 좀 민망스러워 만삭 사진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는 날, 말 그대로 배가 부를 때까지 부른 배를 남편이 디카로 찍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같은 또래 친구들 블로그를 둘러보는데, 친구들이 무료로 만삭사진을 찍어 올렸더라구요. 배가 잔뜩 부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태어날 아이에게 신길 예쁜 신발을 들고 불룩 튀어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드러낸 친구의 모습이 너무 예뻐보이더군요. 친구들은 무료로 만삭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가 많으니 이곳 저곳 들르며 주말에 나들이 겸 임신 때의 자기 모습을 담아놓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저도 만삭 사진은 한 장 정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가 부른 모습을 이제 내 인생에서 다시 재현되지 않을 것 같으니 기념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5cb01158ebdd03b0d00cb8ff408e700e.현재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만삭 사진 무료 촬영권을 준데다, 임신 7개월 정도 무렵 됐을 때 ‘친절하게도’ 그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보이는 실장이라는 분은 “만삭 사진은 만삭 때 찍으면 엄마도 힘들고 이쁘게도 안나온다. 8개월 때 많이 찍으니 미리 예약 날짜와 시간을 잡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8개월이 되는 지난주 주말로 만삭 사진 촬영 일정을 잡았더랬습니다. 그 실장은 “오실 때 평소 모습대로 오셔도 좋지만 화장 예쁘게 하시고, 머리만 미용실에서 드라이를 하고 오시면 복장은 저희가 준비해드립니다. 이왕 찍는 것 예쁘게 찍으셔야죠~”라고 하시더군요. 



토요일 저는 드라이를 하러 집앞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친절한’ 남자 미용사 분께서는 본인 아이도 4개월이라고 하며 요즘 만삭 사진 찍는 법에 대한 구체적 정보도 주시더군요. (요즘은 아빠들도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으신 듯 합니다.)



“둘째 아이 만삭 사진을 찍을 때 보통 첫째 아이 데려가 사진 찍는데 왜 혼자 가세요? 그리고 보통 만삭 사진 찍을 땐 남편하고 함께 가는데 혼자 가세요? 참, 너무 하시네~. 혼자 가서 만삭 사진 찍겠다 하시고~ 첫째 아이라도 데려가세요~”

 

전 제 배부른 모습만 담겠다 생각했지, 사실 남편과 첫째 아이와 함께 하겠다 생각을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둘째 아이를 맞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해야하는 것이고, 기념 사진도 모든 가족이 함께 찍는 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토요일은 저희 남편이 출근한 상황이고, 이미 사진 찍겠다고 머리 드라이도 한 상황이어서, 첫째 아이만 데리고 스튜디오에 갔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배를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여러 벌 완비해놓고 저를 기다리더군요. 조명 앞에서 평소에는 입어보지 않던 옷들을 입고 ‘친절한 실장님’께서 하라는 대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혼자 찍으면 쑥쓰러운 상황도 첫째 아이와 함께 있으니 자연스럽게 연출되더군요.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시키는대로 아이와 즐겁게 사진을 찍다보니 좀 이상했습니다. 무료로 사진을 찍어준다 했는데 이렇게 여러 컷을 찍어주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불어 첫째 아이 사진도 마구 찍어주고요. 사진을 찍고 나서 스튜디오에선 방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더군요. 모두 맘에 들었습니다. 다 소장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저와 제 아이가 광고 모델처럼 나왔더군요.  저의 허영심을 이 스튜디오가 마구 자극한 것이죠. 사진 속의 저는 정말 첫째 아이와 행복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실장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것은 ‘덫’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만삭 사진 무료 촬영을 미끼로 신생아 사진, 50일 사진, 100일 사진 예약을 권하더군요. 돈을 내든 안내든 만삭 사진 두 장과 신생아 사진 두 장, 50일 사진 두 장으로 만들어진 앨범은 만들어주지만, 원본 시디는 가져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본 시디를 사려면 별도로 10만원을 내야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권하는 전략이 참 치밀했습니다. 옵션이 다양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무료 앨범을 만들던가, 원본 시디를 10만원 주고 사던가, 만삭 사진 앨범과 신생아, 50일 앨범과 원본 시디를 15만원에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100일 사진을 이 스튜디오에서 찍는다면 그때 15만원을 캐쉬백을 해주겠다 했습니다. 백일 사진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등등을 고민하려 하는 순간, 그 실장은 "뭘 고민하세요. 애 태아나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여기서 이것저것 고민하려면 골치만 아파요. 지금은 원본 시디 가져가시고, 나중에 애 태어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백일 사진 설명은 자세히 안드리는 것이예요. 엄마 골치만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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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상세한 설명과 “사진 너무 잘 나왔다”는 계속되는 칭찬에 현혹된 저는 분위기에 이끌려 그날 카드를 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초 생각했던 만삭 사진 무료 촬영이 아니라 어물쩍 둘째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생아 사진과 50일 사진 예약까지 하게 됐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저의 허영심을 버린다면 그냥 만삭 사진 두 장에 만족하면 됐는데, 카드를 긁을 때만 해도 ‘언제 이렇게 사진 찍어보겠나. 이게 마지막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던거지요.  이틀 정도 지나 오늘 생각해보니 제 자신이 우습더군요. 첫째 아이 옷 한 벌 살 때 1만원만 넘어도 사시나무 떨 듯 들었다 놓았다 하며 심사숙고하던 제가, 당시엔 `15만원 들여서라도 만삭 사진 원본 시디를 손에 넣고 말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다른 엄마들 또는 무료로 만삭사진 찍었다는 제 친구들, 만삭 사진 찍을 때 각종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심드렁하게 “잘 나왔네”라고 말합니다. “첫째 땐 만삭 사진도 안 찍었는데 둘째 때 꼭 찍어야해? 그냥 나중에 내가 배 사진 찍어줄게”라고 전날 저녁 말하던 남편은 15만원 카드까지 긁었다고 말하니 “그러게. 어쩐지 이상하더라.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이 철없는 마누라야”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그래도 ‘철없는 마누라’인 저는 한 이틀은 만삭 사진 원본 시디를 보며 ‘돈은 썼지만 사진은 맘에 든다’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첫째 아이랑 둘이 정답게 찍은 사진들이 맘에 쏙 들었습니다. 만삭 사진 무료 촬영 하시려는 분들, 사진을 찍으려시거든 상술에 넘어가지 않을 강심장을 가지시던가, 미리 돈을 쓸 마음의 자세를 갖고 가세요. 아니면 아예 사진 잘 찍는 주변 지인 또는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던가요. ^^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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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