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시터와의 만남, 이별 그리고 또 만남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2011.07.01 09:45 양선아 Edit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또 이별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 삶은 거듭되는 만남과 이별의 과정 속에서 진행된다. 만남과 이별 속에서 우리는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때론 화내며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 만남과 이별의 공식은 베이비시터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시터와의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고 그리고 또 다른 시터와의 만남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 가족은 웃고 울고 화내며 그렇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베이시시터 D를 만난 것은 민지를 1년이 넘도록 잘 키워주셨던 C가 도저히 체력이 안돼 아이 둘은 못 키우겠다고 손을 들면서였다. (이전 시터 A,B,C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이전 글을 참고하시라.) 시터 D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말이 많았고, 둘째 민규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정말 예뻐했다. 평소 아들 자랑을 많이 했으며, 식탁에서 남편 욕을 많이 했다. D는 식탁에서 갱년기 증상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우는 바람에 날 당황시킨 적도 더러 있다. 내가 마트에 장을 보러 잠깐 나가기라도 하면 1시간도 안돼 전화를 해댔다. “민지 엄마~민규가 젖 먹고 싶어하네~언제 와?”
민지보다는 민규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편애하는 것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는 D가 심성이 착하고 성실한 분인데다 음식 솜씨가 좋아 계속 호흡을 맞춰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D가 비자 문제로 중국에 다녀와야 했다. 한 달 동안 나는 D를 기다렸고, D는 중국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우리집에 복귀했다. 그런데 D는 중국에 다녀온 뒤로 계속 몸이 아팠다. 하루는 이가 안좋고, 하루는 가슴이 콩닥대서 잠이 안오고, 하루는 목이 아프고... 급기야 “몸이 안 좋아 며칠 쉬어야겠다”는 말을 했다. 또 민규가 밤중에 자주 깨 젖을 먹으려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했다. 밤에 잠을 잘 자야 하는데 민규 때문에 잘 수 없으니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때는 이모님이 민규를 데리고 잤고, 나는 민지만 데리고 잤다. 민규가 깨면 나는 이모 방으로 가서 민규에게 젖을 먹이고 돌아와 다시 잤다. 그땐 민지가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예민해 있어서 둘이 데리고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나와 아이들이 두 달 넘게 감기를 앓아 나 역시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내 코가 석 자인지라 결국 D에게 6개월 만에 이별 통보를 했고, 바로 나는 몇 명의 시터를 면접보고 시터 E를 들였다.
시터 E를 들일 때는 이전 이모에게 부족했던 체력과 아이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능력을 중시했다. 이전 이모가 56살이었는데 시터 E는 47살의 젊고 건강한 이모였다. 다만 시터 E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없었고, 식당 일만 하셨던 분이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는데 화장을 진하게 하고 금 목걸이에 금 팔찌 금 귀걸이를 치렁치렁 하고 와 ‘역시 초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루 지내보니 외모와는 달리 아이도 잘 보고 성격도 서글서글한 것이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아팠던 상황이라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나는 시터 E를 바로 고용했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니 아이를 돌본 경험이 없더라도 내가 아이 돌보는 것을 알려주면서 지내다보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는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제까지 만난 이모들 중에서 가장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주는 인물이었다. 민지랑 숨바꼭질 놀이도 하고, 가위바위보를 한 뒤 게임을 하기도 하고,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같이 뒹굴며 놀아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동생이 생긴 뒤로 내게 더 집착을 하던 민지는 E가 온 뒤로는 엄마를 덜 찾았다. 민지는 E를 참 좋아했고, 민규 역시 역동적으로 놀아주는 시터 E를 좋아했다.
또 E는 매우 건강했다. 생파를 반찬으로 먹는,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식성의 소유자였다. 우리 집 온 식구가 감기를 두 달 동안 앓아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감기 한번 앓지 않는 것은 생파를 마치 오이 먹듯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 둘을 버거워하지 않았고, 그렇게 수다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E의 음식 솜씨는 별로였다. 국과 반찬 모두 입에 잘 맞지 않아 남편이 아침 식사를 거르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러나 음식 솜씨가 뭐 그렇게 중요하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이들 음식 잘 챙겨 먹이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시터 E와 또 이별을 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2주 전 민지가 그네를 타다 다리를 접질려 병원에 다녀온 날이었다. 동네 정형외과에 대기 환자가 많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민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그날 오전 민규가 잠을 30분 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유모차에서 잠자고 있는 민지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 세 곳을 모두 가봤다. 이모가 민규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놀이터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곳의 놀이터에서는 이모와 민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댔다. 민지를 데리고 다니며 마음대로 자기 볼일을 보러 다녔던 과거 시터 B가 생각나면서 ‘설마... 설마....’하는 생각으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어디세요?”
(천연덕스럽게) “응~ 뒤쪽 놀이터.”
“네? 뒤쪽 놀이터요? 어디요? 저 지금 뒤쪽 놀이터인데 이모 안 보이는데...”
(약간 놀라며) “어... 여기 뒤쪽 놀이터야... 금방 가... 10분이면 가... 나 갈게.”
뚝.
전화를 끊는다.
갑자기 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지고 손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이 여자가 우리 애를 데리고 어디를 간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정문 앞에서 이모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그 10분이 내겐 1시간처럼 느껴졌다. 민규를 맨손으로 안고 웃으면서 이모가 나타난다. 민규는 좀 지쳐보였고 잠이 몰려와 눈이 작아져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민규에게 젖을 물리니 민규는 바로 잠이 들었다. 지쳐서 잠이 든 민규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젖을 물린 채로 난 낮지만 격앙된 어조로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어디 다녀오셨어요? 놀이터 다녀온 것 맞아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응.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 뚝방 쪽으로 돌고 왔어. 민규가 밖에만 나가자고 해서.”
(벌개진 얼굴로 한참을 침묵하다.. 격앙된 어조로) “이모! 솔직히 말씀하세요. 누구 만나시고 왔어요? 이모 솔직히 얘기 안 하시면 우리 이대로 갈 수 없어요. 저한테는 신뢰가 제일 중요해요. 저는 이제 직장 복귀하면 이모한테 전적으로 애 둘 맡기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모 불신하게 되면 맡길 수 없죠. 솔직히 말씀하세요. 10kg 되는 아이를 그냥 안고 2시간이 넘게 이모가 뚝방 길을 돌았다고요? 그건 저도 못해요. 누구 만나고 오셨어요?”
(겁먹은 토기 눈으로) “어... 솔직히 얘기할게... 남편이 이 근처로 일하러 왔는데 잠깐 보자고 해서 떡볶이 먹고 뚝방길 좀 걷다 온거야...”
“이모 왜 거짓말을 하세요? 남편분이 근처에 왔으면 내게 전화해서 말하고 가시면 되잖아요...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왜 하시는 거냐고요... 이모랑 나 사이엔 신뢰가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하시면 제가 어떻게 이모를 믿고 일을 하러 갈 수 있겠어요?”
“주인 입장에선 내가 누구 만나러 간다고 하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지... 알았어... 미안해... 다음부터는 말하고 나갈게...”
아... 그 순간 치밀어오르는 분노란... 가슴에서 활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잠도 못 잔 아이를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가 시간을 보내고, 내게는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가 집에 있는데도 이런 일이 있다면 내가 집에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직전 자꾸 E에게 전화와 문자가 자주 와서 신경이 거슬리던 터였다.
그러다 우연히 E의 핸드폰을 보게 됐는데 문자 내용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직감적으로 이모에게 애인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런 의심을 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일까지 생기니 E에 대한 내 신뢰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민지가 E를 너무 잘 따르고 좋아했지만 이 일이 있고난 뒤 E와 나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돼버렸다. 며칠을 고민하고 주변 친구들과 상의를 하다 결국 난 E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E는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였고, 본인도 그날 이후로 마음이 찜찜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고, 나는 또 한 명의 이모님을 만났다. F 이모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할 텐데... 복귀하기 전 아이들이 F 이모와 완전히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할 텐데... F 이모님과는 제발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민지를 1년 넘게 키워주셨던 C 이모님처럼 지내야 할텐데...
여러 시터를 만나고 이별하면서 이제는 시터를 교체하는 문제에 대해서 과거처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름다운 이별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이다. 또 첫 달에는 누구나 잘 하고 열심히 하기에 첫 달 일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터는 첫 달은 열심히 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본연의 성격을 드러낸다. 처음과 끝이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여러 시터를 겪어보니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엄마의 직감을 믿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시터에게 적응한 시간이 아까워서, 또 좋은 시터를 만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뭉기적 거리며 시터 교체시기를 놓치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아이들은 다 적응하기 마련이고, 결국 우리 가족과 꼭 맞는 시터를 빨리 찾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터 E를 교체하는 문제로 상당히 마음의 갈등을 겪었지만 난 내 직감을 믿었고 일사천리로 이별과 만남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시터 F와의 만남은 과연 어떤 추억들을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줄까. 부디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추억이길. 온전히 내가 아이들을 믿고 맡기고 일터에 나갈 수 있도록.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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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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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이모들께서 `이모' 또는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원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님의 댓글을 보고 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 문제의식이네요. 호칭도 관계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저의 경우는 시터분들과 친가족처럼 지내고 싶어서 `이모'라고 불러요. 아무래도 아이를 맡기는 사람으로서는 시터분께서 내 조카처럼, 내 손자처럼 봐주시길 바라니까요. `이모'라고 부른다고 책임과 의미를 소홀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첫째를 오랜 기간동안 봐주신 이모님의 경우엔 지금도 연락하면서 이모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딸 생일도 챙겨주시고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이모'라는 개념에 혼란을 가져올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 아래 댓글 다신 분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제안하셨는데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여사님'이라는 호칭은 조금은 어색한 것 같고요.
조만간 시터를 구하셔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런 글 읽으면 많이 두렵고 걱정이 되시겠지만 부딪히다 보면 요령을 알아가게 된답니다. 부디 좋은 시터분 만나셔서 믿고 아이를 맡기고 안정적으로 직장생활 하시길 빌게요~ 나중에 좋은 분 만나면 소식도 베이비트리에 전해주세요~ -
저도 네 살짜리 딸이 있고 풀타임으로 일을 합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불안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약 제가 육아 도우미를 둬야 한다면 비디오라도 달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는 다른 것 같습니다.
우연히 E의 손전화 내용을 보셨다는 대목에서 사실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고의가 아니고 우연히였음을 믿습니다만 전혀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눈을 돌리실 수 있었을 테데 보기로 결정을 하신 거일겁니다. 순간에 이루어진 빠른 결정이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고 느끼셨겠지만 사실 그리 하지 않으실 수 있었을 겁니다. 고용주라 해도 고용인의 손전화 내용을 보실 권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법정에서 그 내용을 증거로 내셔도 채택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증거를 얻은 과정이 정당치 못하기 때문에.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에도 손전화 내용은 보지 않는 법인데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는 더 그렇지 않을까요?
아침에 이 글 보고 깜짝 놀라 댓글 달려다가 저보다 더 곱게 양선아님 마음 안 다치게 이런 것을 지적하실 분이 있으리라 했는데도 아무도 그런 말씀은 안 하시기에 미운 말투지만 댓글답니다. 딴지로 보인면 죄송합니다. -
저는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아줌마'는 아닌 것 같고, '어머니'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젊으시고, 처음 며칠은 '아주머니'라고 했는데 네 글자 호칭이 제가 부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보육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요. 선생님도 좋아하시고요, 아이도 선생님, 선생님 부릅니다.
'이모'라는 호칭도 좀 그렇고, '여사님'은 생각 못했었는데요... 선생님이란 호칭이 꼭 학교선생님한테만 붙는건 아니니까요...
저는 아이 7개월때부터 이 선생님이 봐주시기 시작해서 43개월 된 지금까지 쭉 봐주십니다. 선생님도 너무 좋은 분이시고요,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는건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 솔직히 부모님보다 선생님에게 더 의지하고 삽니다. 저는 '여성노동자회'에 의뢰해서 이 분을 만났습니다. 중개수수료를 떼고 하는 이런저런 알선업체보다 '여성노동자회'에서 교육도 받으신 좋은 분을 만날 기회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마다 여성노동자회 지부가 있답니다. 홈페이지 방문해 보세요.
베이비트리 즐겁게 방문하고 있습니다. 새로 만난 베이비시터 분과 오래오래 잘 지내실 수 있길 빕니다. 복직하셔서 좋은 기사 많이 쓰시고요^^ -
복귀 앞두시고, 시터 문제로 마음이 많이 복잡하셨겠어요. 저도 복귀하면서부터 시터 분 몇 분 거치면서 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이렇게까지 애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싶어 마음도 아팠답니다. 제 경우에는 아이는 어떤 분이 오셔도 잘 적응하는데, 시터분이나 가족들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데 더 힘들더라구요. 두 아이를 맡기셔야 하니 더 많은 고민이 따르겠어요. 건강은 많이 회복되신거죠? 힘내시고, 좋은 분과의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보미사업에서는 호칭을 "돌보미 선생님"이라고 하더군요. 선생님이란 호칭 괜찮은 거 같아, 저도 써보려고 합니다.
음. 이건 시터와 만남과 이별이라는 주제와는 약간 별개이지만, 저는 베이비시터 아주머니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걸 긍정적 효과보다 고용인-피고용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모호하게 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진짜 '이모'의 의미에 혼란을 주기도 하고 말이죠. 주변에 시터와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 이 얘기를 하다보니 대부분 의견에 동의했고, 그럼 어떤 호칭이 가장 좋을까 토론이 벌어졌죠. 어떤 집은 아이가 자발적으로 만화 캐릭터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집은 되도록 호칭을 안부른다고도 하더군요. '아줌마'는 말 그대로 식당 아줌마라는 약간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고, '여사님'이 그나마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존중적이면서 책임감을 부여하는 적당한 호칭인 거 같습니다. 다른 거 뭐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