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도 괜찮아, 그것도 여행이야 양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순천3.jpg » 순천 국제정원박람회에서 관람차를 타고 찍은 전경. @양선아

 

최근 비자가 전 세계 25개국 1만3603명의 국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은 국외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의 국외 여행객은 최근 2년 동안 총 5번의 국외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25개국의 평균 여행 횟수가 3회이니,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외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그동안 국내외 여행을 맘껏 다녀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경제적·심리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와 집을 반복적으로 오가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도 팍팍하기만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 나라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도 악화됐다. 국내 경기가 악화되면서 우리 가정 경제도 파탄이 났다. 대학 시절 나는 졸업 뒤 취업을 빨리 해야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다. 일부 친구들이 국외 배낭 여행 다녀오는 것이 마냥 부러웠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도 해야하고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국외 배낭 여행은 커녕 국내 여행도 맘껏 해보지 못했다. 간신히 신문사에 입사한 뒤로도 무엇이 바쁜지 여행할 짬을 내지 못했다. 아니 나 혼자서 여행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여행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음식도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여행도 두루두루 다녀본 사람만이 즐길수 있는 법이다. 여행을 하려면 시간과 돈,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입사 뒤에도 나는 당장 해야할 일들에 에너지를 소진했고, 쉬는 날에는 집에서 그냥 널브러져 쉬는 것을 선호했다.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 간 경우는 대부분 일 때문에 갔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간 경우가 거의 없다.

 

순천4.jpg » 순천 국제정원박람회에는 다양한 나라의 정원이 잘 조성돼 있다. @양선아

 

그런데 그런 내가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슬슬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왜 시간 있고 키울 아이도 없는 결혼 전에는 이런 즐거움을 몰랐단 말인가!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이 어디로 가자고 하면 나는 그냥 따라나서는 편이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은 심심할까봐, 무서워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시도하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과 어디로 여행을 가면 좋을지 궁리한다. 틈나는대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다.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긴다. 어느 여행지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듣는 일이 너무 재밌다. 이제는 아이들이 컸으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도 훌쩍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쏘다니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라며 눈을 흘긴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는 내가 조금씩 여행의 맛에 눈을 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만은 나와 다르게 어릴 때부터 여행의 즐거움,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여행과 독서, 다양한 경험만큼 사람의 시야를 넓혀주고 마음의 깊이를 키워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여지없이 찾아온 아이들의 여름 방학 기간에 나는 당당하게 남편에게 아이들과 함께 순천에 가자고 제안했다.
 
전남 순천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고향 광주와 가까워서다. 제주도나 국외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시간과 돈 모두 부족했다. 고향에서 가깝고 숙박을 하지 않고 당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곳들 중에서 주변 지인들이 추천한 곳이 순천이다. 게다가 얼마전 인터뷰한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선생님이 순천시에 제1호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하고, 기적의 도서관이 있는 그 지역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휴가 가기 전 해야할 일은 산더미였고, 따로 계획을 치밀하게 짤 틈도 없었다. 대략 이번 여름에는 순천에 다녀오자는 마음만 먹었고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됐다.

 

순천6.jpg »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에서 찍은 가족 사진. @양선아
 
휴가를 가기 전에는 항상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이번에는 꼭 고향 친구들도 만나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양가 부모님들과도 알찬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제대로 다녀오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많은 계획들이 쉽게 이뤄진 적이 있던가. (그러나 이번에는 대체로 계획을 세운 것들을 실천에 옮겼다. 다만, 너무 많은 목표 달성에 치중하다보니 진정한 여유를 느끼며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여름 휴가 기간동안에는 아이가 많이 아파 여행에 차질을 빚었고, 이번 여름에는 너무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날씨 고려를 하지 않은 여행지를 선택해 생고생을 했다.

 

7월말 무더운 어느날, 친정 엄마를 모시고 순천만 생태공원과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를 들렀다. 땀은 비오듯 흘렀고 햇빛은 너무 따가웠다. 차에 있던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친정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시며 “이게 뭐가 좋다냐~ 하나도 볼 것도 없구만~”이라고 말씀하셨고, 아이들은 엄마 “다리 아파~ 너무 힘들어~업어줘~”라고 말했다. 남편 역시 “이 더위에 여름에 순천 가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이 뙤약볕에 여기 오자는 사람이라니. 쯧쯧. 이런 곳은 봄·가을에 와야지~ 장모님, 그래도 제가 아무 말 안했습니다. 여행 간다고 들떠 있는 사람한테 말해봐야 뭔 소용 있겠습니까. 둘이 싸움만 하지. 그리고 마누라 입장도 이해합니다. 봄·가을에 따로 시간내서 저희가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니까 마누라가 이런 선택을 했겠죠. 그래도 덥긴 덥네요. 오늘 제대로 땀 흘리네요.”


순천2.jpg » 무덤덤한 표정의 친정 엄마. @양선아

 

순천5.jpg » 더워서 지쳐있는 딸. @양선아

 
물론 나도 덥고 힘들었다.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업어 달라고 하면 여행지 잘못 선택한 죄로 내가 업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그것도 자외선이 강한 오후 1시~4시 사이에 공원을 돌아다니자고 한 내가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들을 볼 낯이 없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열심히 볼 것은 보고, 사진도 두루두루 찍었다. 무릎이 아프신 친정 엄마를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하필 일정이 꼬여 이날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모여 시아버지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고, 우리 부부는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쉬려면 여행은 왜 해? 덥고 힘들었어도 나는 탁 트인 공간이 너무 좋더만! 집에서 앉아서 티비 하루종일 보는게 쉬는건가? 그리고 국제 정원 박람회는 각 나라 정원을 볼 수 있어 너무 좋더라~ 다시 또 가고 싶어~ 얘들아, 너희도 그렇지? 무릎 안좋은 엄마 모시고 이렇게 걷는 곳은 아닌 것 같지만, 뭐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 이게 다 여행 많이 못다녀봐서 그런거지 뭐. 이런 실패도 해봐야 다음에 더 여행지를 잘 선택할 수 있지 않겠어? 이런 시행착오 줄이려면 남편도 함께 여행 계획도 세우고, 여행지도 선택하던가~ 덥고 힘들었지만 이렇게 순천이라는 곳을 내가 선택해서 이렇게 왔고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게 난 긍정적이라고 생각해! 이것도 다 경험이야~ 애들도 천문관이며 국제 정원이며 기억에 남을 것이고.”

 

순천7.jpg » 순천만 생태공원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천문관. @양선아

 

순천8.jpg » 순천만 생태 공원에 있는 소리박물관에 올라가는 길. 이날 소리박물관의 기기는 고장나 있어 에어콘을 쐬며 잠깐 쉬기만 했다. @양선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이번 순천 여행을 하기 전 일정 조정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좀 더 준비를 하고 날씨 고려도 해서 방문 시간대를 조정해 해질녘에 공원을 들렀다면 이런 고생은 덜 했으리라. 시간과 돈을 조금 아끼겠다고 당일 여행지를 다 둘러보겠다고 하는 것보다, 아예 하루나 이틀 정도 현지에서 머물면서 여유롭게 여행하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이 드신 어른들을 모셨을 때 특히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어르신들과 여행할 때는 많이 걷는 장소를 피할 필요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지만, 여행을 자주 안다녀본 나로서는 여행의 에이비시(ABC)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셈이다.  
 
여름 휴가때마다 짧은 여행을 다니면서 이제는 여행이 무조건 편하거나 쉬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아졌다. 그리고 여행 중 고생이 꼭 나쁜 것은 아니며, 다음 여행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고생해도 괜찮고, 힘들어도 즐겁다며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또 한 번 눈을 흘긴다. 아마도 다음엔 어떤 고생을 시킬지 걱정되나보다. 훗.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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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알듯말듯한 육아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고민합니다. 불안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꿈꿉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