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아빠의 장난감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재개봉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90년대의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는 일본 대중문화의 입문작과도 같았다.

90년대의 어느날, 20대였던 나도 한국의 극장가  어딘가에 앉아 <러브레터>를 보았다.

그때는 알았을까.  영화 속 주인공이 외치던 "오겡끼데스까..."를 내가 일상언어로 쓰며 살게 될 줄을.

 

90년대가 막 끝나갈 즈음, 베낭여행을 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일본인이었고 영화<러브레터>처럼 존재 자체가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었다.

먼 거리를 둔 연애였지만, 막 새로 장만한 노트북으로 날마다 그로부터 날아오는 이메일로

하루하루가 빛나던 시절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국제 택배로

한 품에 다 안을수도 없을만큼의 장미 다발이 배달되곤 하다,

결국 2000년대가 막 시작되던 때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2년이 지났고, 우리 곁엔 이제 새봄이면 4학년이 되는 딸과 유치원을 다니는 아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2013년은 남편과 내가 전화요금이 무서워서 국제통화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시대와는 많이 변했다.

값도 싸고 무료에 가까운 전화도 많아진 건 물론이고, 스마트폰으로 국내외 상관없이 문자를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우표를 일일이 붙이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일은 영화 <러브레터>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의 2013년과 일본의 2013년은 비슷하지만 또 아주 많이 다르다.

일본 역시 점점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디지털 사회가 되었지만, 이전의 아날로그 문화도 여전히 남아 공존하고 있다.

일본은 새로운 강력한 문화가 생겨난다 해도 이전의 것들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전학 간 절친에게 오늘도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낸다.

작은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선생님들이 손글씨로 써서 인쇄된 통신문을 보내온다.

 

얼마 전 일.

아들이 만 4살 생일을 맞았다. 요즘 울트라맨에 푹 빠진 아들을 위해 남편이 시댁에서 옛날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져왔다. 그 중에 30년은 된 듯한 울트라맨의 주제가가 담긴 레코드가 있었고,

아들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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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30년 된 레코드를 발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아들>

 

턴 테이블에 오래된 레코드를 올려놓으니 지직거리며 울트라맨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울려퍼졌다.

아빠와 아들은 30년을 훌쩍 뛰어넘어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하나가 되었다.

그 옆에서 딸아이는 레코드 표지에 어린 시절의 아빠가 어눌하게 쓴 이름과 낙서를 읽으며 키득거렸다.

아...   30년이란 세월이 이렇게 잠깐이라니.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옛 물건들을 무척 소중하게 잘 보관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렇지만, 시부모님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날짜의 신문을 잘 보관해 두셨다가

챙겨주셨고 남편의 어린시절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입이나 그림책, 장난감도 소중하게 남겨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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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어릴 때 보던 그림책과 장남감. 대부분이 70년대의 것임에도 지금 꺼내 보아도 손색없을

   만큼 보관상태가 훌륭하다. 아이들의 물건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어린 시절, 한참 좋아하며 놀던 장난감이나 물건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된다.

남편의 옛날 장난감을 본 뒤로,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달라고 조르는 장난감의 가격 땜에 스트레스를 받던 것에서 벗어나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오랫동안 보관해도 좋을 만큼의 질이 좋고 유행을 별로 타지 않는 것이면

조금 비싸더라도 산다는 기준으로 고르게 되었다.

20,30년 후, 손자손녀들이 가지고 놀기에도 좋은 것, 보관하기도 어렵지 않은 것,

그리고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인테리어로 써도 좋을 듯하다 싶은 것 등을 고려해 즐겁게 사 준다.

 

이런 게 가능하려면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가 오랜 생명을 유지해야 하고,

시중 판매용 장난감의 질과 수준이 좋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들이 좋아하는 <울트라맨>은 벌써 몇 십년째일까. <도라에몽><호빵맨>도 몇 십 년째니

일본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캐릭터를 아이와 다시 한번 즐기는 행복을 누린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오랜 사랑을 받은 사진 속의 <구리와 구라>그림책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50년!!!  

지금은 한국에도 좋은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90년대만 해도 유아 그림책은 대부분 일본의 번역 그림책에

기대왔던 게 사실이다.

한국의 뽀로로도 이제 10주년을 맞이했다 들었다.

지금 뽀로로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는 그날까지

뽀로로를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노는 게 젤 좋은' 아이를 장사가 된다 해서 이상하게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잘 지켜야 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와 장난감 산업이 물론 엄청 상업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본질은 지켜나간다.

그게 몇 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한국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과 장난감, 애니메이션 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부족한 건 아닐까.

요즘 <사교육 대리모>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도 한국에서 어린이라는 존재는  어른이 마음 먹고 계획하는 대로 자란다는 믿음이 통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진화해가는 사교육 시장에 놀라고 긴장하기 전에 그와 대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교육과 육아 문화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밖이 아니라 내 가정 안에서, 엄마인 나의 내면에서 좀 더 다른 육아방식을 찾아갈 순 없을까.

 

나는 내 육아이야기가 아날로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아놀드 로벨의 동화에 나오는 문구처럼,  '잠자느라 아무도 보지않는 아침'을 아이들과 함께 보고 싶다. 

그리고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함께 누리고 그 포근한 질감을 느끼며 살고 싶다.

이렇게 사는 게 맞아! 하면서도 나는 마흔을 넘긴 지금까지도,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문화와 교육방식 사이에서

갈등하며 정말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가끔 불안하다. 

그래도 나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찬 지금의 교육과는 다른 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

내 모국은 아니지만, 아직 일상의 곳곳에 아날로그 감성이 숨쉬고 있는 이 나라에서 외국인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을 모두와 나누며 소통하고 싶다.  

꿈과 상상력과 지혜로 펼치는 아날로그 육아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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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오던 어느날, 딸아이가 하교길, 뭉친 눈 속에 나뭇잎을 꽂아

 만들어왔는데, 지금도 우리집 냉동실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늘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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