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몬테소리 읽기] 1. 즐거운 인생 생생육아

"아이들에게 신선한 공기와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공급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 . . 아이에게는 영혼/정신의 기쁨, 즐거움 또한 필요하다." (마리아 몬테소리의 저작 Spontaneous Activity in Education: The Advanced Montessori Method 중에서)


신생아 시절부터,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해피 보이!” 였다. 병원에 가서 대기하는 시간에도, 간호사, 의사, 재활치료사를 마주하는 시간에도 아이는 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또렷한 눈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방긋 웃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내 밖에 나가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주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갔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개미며 무당벌레를 한참씩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있건 말건 큰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며 산책을 했다.  KT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불안한 마음만 커지던 나와 달리 아이는 언제나 어디서나 즐거워보였다. 그렇게 아이는 만 두 살, 세 살이 되어갔다. 매일 별 일 아닌 일에도 까르르 거리며 참 많이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를 보면 이 아이는 정말로 하루하루를 충분히 즐기고 있구나 싶어 부러운 마음마저 든다. 아, 나도 너처럼 아무 걱정 없이 매일을 그렇게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해피 보이’라고 기분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마구 흥분하며 짜증을 내거나 소매로 눈물을 연신 훔쳐가며 울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훌쩍 큰 아이는 이제 “엉엉, 엄마, 눈물이 뚝뚝 떨어져” 하면서 울고, 실컷 운 다음 눈물 콧물 닦아낼 휴지를 찾아 슥슥 닦은 다음 “이제 좀 괜찮아졌어!” 하고 이내 헤헤 웃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울 때면 눈짓을 주고 받으며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오늘 울 일이 부족했나본데?” “그렇지 뭐, 오늘 내내 울 일 없었어.” 이렇게 보아넘길 수 있을만큼 금방 스스로 진정하고 다시 평상시의 즐거움 모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오랜 바깥 나들이 후에 집에 들어오면 침대 위에 풀썩 몸을 맡기며 “집에 와서 좋아!” 하고, 맥락 없이 엄마 아빠를 와락 껴안으며 “엄마(아빠) 진--짜 좋아!” 하고 고백을 하는 아이. “아우 더운데 왜 이래~!” 하고 타박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엄마 귀여워” 하며 깔깔대는 아이. 서러워 엉엉 울어대며 엄마 아빠에게 기대어 왔다가도 금방 다시 웃으며 우리 품을 떠나는 아이.  


몬테소리가 말하는 그 '영혼의 기쁨'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식물 상태'의 인간이 아니라 '생동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은 자기 삶에 대한 긍정성, 거기서 비롯되는 즐거움과 환희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산다는 것이 늘 즐겁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닐테지만, 짜증나고 슬프다가도 금방 스스로를 달래고 다시 즐거움을 찾는 그 회복력은 자기 삶에 대한 긍정성에서 나오게 마련이고, 이 긍정성은 자신의 삶에 안정감을 느낄 때 생길 수 있다. 몬테소리는 아이들이 자기 주변의 사물들을 직접 조작하고 통제하려 드는 이유가 아이들이 바로 이 '삶의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안정감은 아이들이 어떤 일을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보고 그 성취와 실패의 경험을 쌓아갈 때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린 아이들이 신체활동이나 학습을 할 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몬테소리 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신체적 조건에 맞춘, 아이들이 충분히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되어 있다. 아이들이 직접 들어 옮길 수 있는 책상과 의자, 아이 손에 닿는 선반과 교구장, 그리고 구체적으로 계획된 커리큘럼을 갖춰놓고 아이들이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하며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몬테소리식 교육의 기본이다. 여기에는 손 씻기, 옷 입고 벗기, 청소하기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연습하기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활동을 시작하고, 지속하고, (혹은 지속하지 않고)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데 있다.


임신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업어 온 몬테소리의 저작을 읽으며 '아, 이거 나랑 코드가 맞는데?!' 싶어 그 후로 몬테소리의 저작 몇 권을 연이어 읽었다. 그렇게 더 찾아 읽어보니 역시 내 첫 인상이 제대로 들어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테소리 교육에서 교사는 관찰자, 역할 모델, 보조자로서 기능하는데, 우리의 평소 양육 방법이 여기에 가깝다. 무엇을 해도 아이가 원할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아이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위험한 상황만 아니면 아이가 원하는대로 하게 놓아두면서 지켜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해주고 함께 느껴줄 필요가 있다는 것. 작은 일이라도 아이가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고, 설명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 주는 게 좋겠다는 것. 굳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데 어른의 관점에서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대신해 어떤 일을 해주지는 말자는 것. 아이가 무언가를 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기다려줄 것. 시간이 걸릴 것이 예상되면 그것을 감안해 미리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것. 이 모든 것들이 몬테소리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나는 꽤나 비관적인 사람이라 삶에 대한 긍정성이 부족한 편인데, 그건 어쩌면 잦은 물리적/정서적 변화와 가족간의 불화로 불안하고 눈치 보이는 시절을 오래도록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어 속으로만 앓았던 내 지난 날들. 그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지, 어떤 공간을 내어주어야 하는지 더욱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어느새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혼자 걸음마를 떼었을 때,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때,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을 온 얼굴로 몸짓으로 보여주던 아이를 기억한다. 요즘처럼 외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과정--세수, 양치, 머리 빗기, 옷 고르기, 옷 입기, 양말 신기(심지어 오른발도!), 신발 신기, 문 열기, 문 닫기--를 혼자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다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그 각 단계마다 함께 좌절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우리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흐뭇해진다156bdddadfed6997?projector=1. 돌 무렵, 우리 눈엔 별 것도 아닌, '플라스틱 반찬통 뚜껑 열고 닫기'를 수십번 씩, 낑낑거리며 반복하던 그 열성, 퍼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맞추고 또 맞추며 눈에 손에 익혀가던 모습, 새로운 장소에 가면 온 사방을 열심히 둘러보며 눈을 맞추고 손짓을 하던, 그 활기찬 몸짓. 그 활동들을 통해 얻은 재미와 성취의 경험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 지금의 아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만 세 살 반. 무엇이든 혼자 해보겠다고 나서고, 많은 연습을 거쳐 결국 혼자 해 내며, 새로운 자극을 찾고, 어려운 일에 부딪혀 실패하더라도 신경질은 잠시 잠깐만 부리고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아이가 된 지금, 아이가 아기였을 적부터 함께 거쳐 온 여러 과정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레 포기하지 않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 청하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되 행동으로 과하게 표출하지는 않기..이런 일들은 특히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할 아픔을 갖고 태어난 우리 아이에게 더더욱 필요한 일이었는데, 정말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엄마로서, 또 비관론자에 좀 더 가까운 인생을 살아 온 사람으로서 조심스레 빌어본다. 부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아프고 좀 더 힘들어도 '살 만하다' 싶은 인생,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그래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마 같은 비관론자에게도 그 생기, 그 기쁨, 나누며 살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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