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특사단 사찰’ 누가 국익 능멸했나 기고

<경향신문>시론 2011. 2. 26.
 
 
최근 일부 논객들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에 대한 국정원 요원들의 사찰사건을 보도한 언론을 비판하면서 ‘국익을 위해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국정원 역시 이 사건을 까발리는 여론에 야속하다는 투다. 이렇게 부각되는 국익이라는 개념이 정보기관의 특권의식과 표리관계를 형성하는 바로 그 지점은 ‘도덕적 불감증’의 영역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이 논란은 문제점이 많다.
보수지가 처음 ‘주범 국정원’ 보도
그렇게 덮어두는 것이 국익이라면 최근에 남북 간에 이중 첩보원으로 20년 넘게 일해 온 박채서, 일명 ‘흑금성’을 왜 드러냈는가. 일단 흑금성이 입을 열면 남과 북 첩보기관들의 치부가 다 드러난다. 작년 연말에 그를 간첩으로 몰아 구속시키고 언론에 보도되게 한 국정원의 행태는 어떤 국익을 위함인가.
게다가 인도네시아 특사단 사찰 건을 낱낱이 드러낸 최초 보도는 조선일보였다. 국익을 신봉한다는 정통보수지가 사건의 주범을 ‘국정원’이라고 적시하는 동안 정작 동일한 정보를 입수한 한겨레신문은 ‘정보기관’이라고 모호하게 보도했다. 국익을 내세우는 논객들에게 묻고 싶다. 보수지가 국익을 능멸하는 동안 진보지가 국익에 예의를 지켰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나.
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 유력 신문과 보수언론이 쏟아내는 ‘군사기밀 폭로’를 신물이 나도록 봐 왔다. 이 언론들의 특급 북한 군사정보와 우리 작전계획에 대한 무분별한 폭로로 국방부가 미국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동맹국과 우리의 정보능력을 완벽히 드러내는 보도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피아 구분이 안된다”며 보수지를 원망하는 군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도 수시로 들린다. 군부와 유착된 보수언론의 ‘안보 상업주의’형 기사들이 우리나라 서북도서에서의 안보위기와 연결된 사슬이라는 점은 일반인의 눈에는 잘 안 보이는 아주 은밀한 메커니즘이다. 사실 국익이나 군사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여 국익을 훼손하는 측은 보수지이지 진보지가 아니다.

‘정권 3년 공명심 압박’서 비극 출발
더군다나 이번 특사단 사찰은 국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첩보공작이었다. T50 수출은 인도네시아가 우리 항공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야 협상전략이든 뭐든 나오는데, 현재 인도네시아는 그럴 기미조차 없다. 국정원이 입수한 특사단의 노트북에도 T50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T50과 관련된 특수공작’이 아니라 ‘통상적 사찰’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 국민과 달리 외국인에 대한 감청은 인권시비도 적고, 영장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더 감청하고 더 사찰하는 ‘통상적 수준’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보 맨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세일즈 외교’는 이명박 대통령의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우리의 자원외교는 기대 이하였고, 중국에서도 좋은 소식 하나 들리지 않는다. 유일한 성과였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은 100억달러 뒷돈이라는 이면계약과 특전사 파병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12월 이 대통령의 인니 방문 직전에 한 정권 실세가 “이번 방문에서 T50 수출이 터진다”며 이 대통령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막상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 의제에도 없는 T50 얘기를 꺼내자 유도요노 대통령은 들은 척도 안했다. 정상회담 직후 이 대통령은 수행한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을 1시간 넘게 질책했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잘못된 정보임에도 “T50이 팔린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대통령이다. 그걸 잘 아는 국정원이 얼마나 압박을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통상적 수준’의 사찰도 제대로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12월에서 2월까지 두 달간 T50과 관련된 청와대와 방위사업청, 국정원의 해프닝은 정권 3년의 실적에 목말라하는 그런 공명심이 주범이라면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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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