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평화칼럼-케네디 대통령의 죽음, 그 이후 50년 편집장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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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 22일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 당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미국인이라면 케네디 대통령 암살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 사건은 또한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추모 열기로 이어졌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영국 역사가 아이자야 벌린 경은 케네디 대통령 특보인 아서 슐레징거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희망이… 한 순간에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암살당하기 1전인 1962년 10월에 소련이 쿠바의 해안에 중장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발생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는 극심한 두 개의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소련의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의회가 자신을 탄핵할 것이라는 국내정치적로부터의 압박과, 소련과의 핵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3차 대전의 압박이었습니다.

1963년이 되자 케네디는 반드시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핵 전쟁 가능성을 끝내겠다는 신념가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그해 1월에 케네디는 유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장낼 것이다.”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 미 군부는 이미 소련에 대한 전략폭격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전략공군사령관인 토마스 파워 장군은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전략폭격 계획을 케네디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브리핑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미국의 군부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 그리고 중국의 모든 도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통해 적어도 사망자가 4억 명에 달하는 전략 공격 능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파워 장군은 군사시설이든 민간시설이든 상관없이 1000개 이상의 목표물을 겨냥하여 중국과 소련의 전체 블록을 몰살시키는 계획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을 끝장내는 이러한 파국은 어떤 중간단계나 경고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미국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덧붙여졌습니다. 어이가 없어하는 맥나마라에게 파워 장군은 이렇게 말합니다.

 

“장관님, 핵전쟁으로 미국인이 2명 살아남고 소련인이 1명만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이기는 겁니다.”

 

전쟁의 문제를 군인에게 맡기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10월에 케네디는 예일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소련을 향해 전략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을 제안함으로써 핵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당연히 냉전세력은 반발했습니다. 특히 군부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서 철수한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공격적인 핵무기 덕분이고, 그런 만큼 핵미사일은 신이 미국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선사한 것입니다. 한번도 도전받은 바 없는 핵미사일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 대통령은 반역자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케네디는 의문의 암살을 당하면서 핵무기 군축의 희망도 사라집니다. 이후로 미국과 소련은 미친듯이 핵무기 경쟁에 매달립니다.

우리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젊은 지도자를 어느 날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무언가 특별한 희망이… 한 순간에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로 그 때,

“무언가 특별한 희망이… 한 순간에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저들은 우리를 억압합니다. 바로 50년 전의 그 때처럼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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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