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미제 해상작전헬기, 대잠 전력 구멍 날라

물 건너간 미제 해상작전헬기, 대잠 전력 구멍 날라
사업비 두 배 초과해 사실상 도입 불가, 국내 개발도 미적대고 있어

방위사업청이 5,538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해외로부터 8대를 도입하려는 해상작전헬기 사업이 파행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정부가 자국산 헬기에 대해 방사청이 예상했던 사업비를 두 배 이상 초과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보고한 데 이어, 도입 시기도 우리가 요구한 2014년을 맞추지 못하고 계약 후 추가로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권 말 무기도입 사업에서 미 정부는 각종 무기 가격을 두 배 이상 일제히 부풀렸다. 기술이전과 도입시기도 한국 정부의 요구가 아닌 미국의 편의성만 고려한 일방적 행태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천안함 사건을 겪은 해군이 해상작전헬기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로 주장하는 “서해에서 대잠수함 작전의 시급성을 고려하여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사업청은 올해 10월까지 기종을 결정하고 계약한다는 당초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졸속 사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차기 전투기 사업(F-X)과 마찬가지로 타당성이 부족한 정권 말기의 미국 무기도입 사업이 연이어 강행되는데 대한 의혹도 덩달아 증폭될 조짐이다. 

지난 5월 10일 방위사업청에는 MH-60R ‘씨호크(Seahawk)'를 개발한 시콜스키사와 AW-159 ’링스 와일드캣(Lynx Wildcat)‘을 개발 중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사가 제안서를 제출해 현재 두 기종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슈퍼 링스(Super Lynx)를 운용하며 소형헬기의 한계를 절실히 체감한 해군은 비행시간이 길고 많은 임무장비를 탑재할 수 있는 중형급 이상의 기종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해군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MH-60R로 사업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사업 자체가 MH-60R을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AW-159가 소형이라 도입에 어려움이 있다면 MH-60R은 비싼 가격 때문에 도입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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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H-60R ⓒ US NAVY

가격 두 배, 사실상 물 건너간 MH-60R 도입

지난 5월 16일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처는 미 의회에 MH-60R 헬기와 관련 장비들의 한국 판매승인을 요청했다. 의회에 제출된 문건에 따르면 MH-60R 헬기 8대와 T-700 GE 401C 엔진 18대, 통신장비, 전자전 체계, 지원 장비, 예비 엔진 컨테이너, 평가 장비 등의 총판매 금액은 10억 달러로 명시돼 있다. 이는 달러 환율 1,200원을 기준으로 1조 2,0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으로 당초 한국 정부가 예상한 5,538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가 지난 5월 20일 개인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2일 미국 정부는 카타르에 6대의 MH-60R을 7억 5,000만 달러에 판매한다며 이를 승인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여분의 엔진과 부품, 교육훈련 등을 포함한 대당 가격을 계산해보면 약 1,500억 원 정도로 한국에 판매하려는 금액과 비슷하다. 

2010년 11월 30일 덴마크를 상대로 한 판매 승인 요청 당시 가격은 12대에 20억 달러로 대당 2,000억 원에 이른다. MH-60R 도입을 고려했던 세 나라 중 최종 계약을 맺은 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유일한데, 도입 가격은 24대에 31억 5,000만 달러로 대당 약 1,575억 원 꼴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이 가격에 도입한 탓에 한국이 제아무리 치열한 협상을 벌인다 해도 파격적인 가격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게다가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형식으로 도입 될 MH-60R은 미 의회 승인 없이는 해외 판매가 금지된 품목이다. 가격 조건 등에 대한 미 의회 승인이 떨어진 뒤에는 한국 정부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결국 MH-60R을 도입하려면 최소 1조원 이상 비용을 쏟아 부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해상작전헬기 한 대를 전투기보다 비싸게 사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직도입의 장점인 빠른 전력화 시기도 불확실한 상황이란 점이다. 


전력화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 높아

해상작전헬기를 해외 직도입했을 경우 국내 개발에 비해 전력화시기가 2년 정도 앞선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MH-60R은 이미 미 해군이 운용하며 성능이 확실히 입증된 헬기라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지는 국내 개발 헬기에 비해 해군이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해외 직도입이라도 기종 결정 후 해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반영하다보면 전력화 시기가 국내 개발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해군은 해외 직도입 헬기라도 무기체계와 통신체계는 국내 개발 품목을 탑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내 개발한 경어뢰 청상어를 비롯해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 중인 저가형 유도 로켓 로거(LOGIR), 합동전술데이터링크체계인 링크-K 등이 대표적이다. 1940년 세계 최초로 헬기를 생산하며 수십 년간 기술을 축적해 온 시콜스키지만 한국이 개발한 무기체계와 통신체계를 통합하는 시간은 최소 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한 국내 헬기부품 제작 업체의 관계자는 “청상어를 비롯한 무기체계와 링크-K까지 통합하는 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최소 3년 반에서 5년까지도 소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대로라면 해외 직도입으로 해상작전헬기를 구매한다 해도 늦으면 2017년이 돼야 전력화가 가능하다. 수리온 기반 해상작전헬기 개발에 참여할 유로콥터와 엘빗 시스템즈가 국내 개발에 최대 48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력화 시기는 직도입과 국내 개발이 거의 같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굳이 미국제 헬기를 구매하려는 명분 중 하나가 빠른 전력화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사업추진 방식은 전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내 무기·통신체계를 통합하기 위해선 관련 정보를 업체에 넘겨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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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er Lynx

높은 가격에 진퇴양난 빠진 국방부, 국내 개발은 오리무중

해외 직도입 헬기는 8대분의 최종 가격을 적어도 6,600억 원 수준까지 낮추지 않으면 도입이 불가능하다. 국가재정법 시행령 제22조에 총사업비가 확정 계획안보다 20% 이상 증가한 사업은 타당성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해 총사업비의 20% 이내로 인상분을 확정짓지 못 하면 사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 개발까지 뒤로 미룬 채 직구매를 결정한 국방부 입장에서는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타당성 재조사를 수행할 여유가 없다. 차기 호위함이 속속 건조될 예정이기 때문에 도입 대수를 줄일 수도 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국방부가 도입 대수와 예산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AW-159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중형급 해상작전헬기 도입을 원하는 해군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게다가 획득 계획을 변경해 이미 개발된 국산 수리온 헬기를 활용한 국내 개발로 전환할 경우 국내 항공 산업에 대한 기여도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굳이 해외에서 해상작전헬기를 직구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난맥상으로 인해 해상작전헬기 해외 직도입 사업은 기종 결정까지 3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개발도 정책 결정이 전혀 없는 상태라 사업을 언제 착수할지조차 불투명하다. 천안함 사건 이후 대잠전력 확충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해군이 원하는 헬기가 제때 들어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군사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텅 빈 갑판으로 바다를 누비는 독도함처럼 차기 호위함들도 헬기 없이 영해를 수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애초 해상작전헬기는 우리가 원하는 조건으로 해외에서 구매가 가능한지 철저히 따져보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국내 개발로 전환한다는 대안을 갖고 신축적으로 사업 전략을 구상했어야 한다. 처음부터 국내개발을 배제한 채 안보 상황의 시급성만 내세우며 정권 말기에 미국 무기 구매로 ‘올인’하는 청와대와 방위사업청의 고질병이 이번에도 도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런 방사청의 행태는 국내 방위산업계로부터 ‘심각한 역차별’로 인식되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미 국산 헬기가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개발로 전환하면 3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는데, 왜 조건도 맞지 않는 미국 헬기에 목을 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과 업계의 여론을 감안하면 해상작전헬기도입사업은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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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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