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붉은 리본, 지리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가다 지리산케이블카백지화

3월 28일, '케이블카 건설을 위한 국립공원(지리산 4곳, 설악산 1곳, 월출산 1곳)계획변경(안)'(요약보고서, 계획서, 환경영향평가초안 등)이 도착한 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길에서도, 버스에서도 그것들과 씨름 중이다. 박그림 선생님(설악녹색연합)과 임경숙 간사(목포환경연합)에게, 지리산권 단체들에게, 몇몇 교수들에게 보내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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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서가 도착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는데, 설악산, 월출산국립공원은 손도 못 대고 여전히 지리산 케이블카 계획 속을 헤매고 있다. 남원, 함양, 산청, 구례 등 지리산자락의 4개 지자체는 케이블카만 된다면 도로도 폐쇄할 수 있고, 탐방로도 폐쇄할 수 있으며, 케이블카 운영 수익은 모두 국립공원과 문화재 관리에 쓰겠다고 한다. 지자체들의 국립공원 사랑에 감동스럽다가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립공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케이블카에 대한 집착, 지금 지리산은 케이블카로 갈등하고 있다. 갈등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며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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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립공원 훼손 압박을 감소하기 위해서는 탐방객 분산이 필요하고 케이블카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국립공원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니 케이블카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국립공원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박정희 정권에서도 행하지 않았던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에 더 길고, 더 거대한 시설이 가능하도록 자연공원법을 개정했다. 자연공원법을 개정한 후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검토기준을 만들어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왜, 환경부는 정상부로 몰리는 탐방객의 분산을 위해 정상부 탐방예약제, 탐방안내소 운영 체계화, 국립공원 주변지역과 연계한 프로그램 운영, 고산지 이용 부담금 등을 검토하지 않고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건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생활 가까이가 아닌 산꼭대기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케이블카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환경부가 직접 하지 않고, 왜 지자체들을 앞장세우는지는 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 환경부는 케이블카가 국립공원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환경부의 규제 완화에 발 빠르게 움직여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가 된 남원, 함양, 산청, 구례, 양양, 영암은 만족스러울까, 아니 내 생각엔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일 것이다. 3월 26일 제출한 보완계획서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부는 보완계획서 제출시기를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으로 하였고, 각 지자체의 보완계획서에는 법에 의하여 자연보존지구에는 설치할 수 없는 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있으며, 법에 허용된다고 하나 1400m 고지에 100톤 규모의 오수처리시설을 설치하여 5ppm으로 방류하겠다는 지자체도 있다. 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과 보완계획서가 불일치하는 곳도 있다. 보완계획서의 수준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이런 상태로 심의할 수 있을까 궁금하게 한다.

 

4월 중순, 지리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 예정지 4곳을 다녀왔다. 남원, 함양, 구례는 어렵지 않게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찾을 수 있었으며, 산청은 상부정류장 예정지 표시를 해놓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각 지자체가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붉은 리본과 천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일까, 요즘은 붉은 색만 보면 반야봉과 망바위, 노고단이 떠오른다. 심장을 뛰게 하던 붉은 빛은 회갈색의 지리산을 섬뜩하게 만드는 빛깔이 되었다.

 

남원시는 반야봉에서 묘향대로 가는 길, 우리나라 특산종 구상나무가 살고 있는 곳에 케이블카를 올리고 싶어 한다. 구상나무를 베어내고 상부정류장을 세우고, 상부정류장에서 연결되는 데크를 만든 후 전망대로 놓겠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생태계가 뛰어나다고 주민도, 전문가도 말하는 그곳을 훼손하고 케이블카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간 큰 남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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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올라가는 탐방로를 따라 케이블카 지주를 세우고 망바위 가까이에 상부정류장을 건설할 계획이란다. 계획서에는 케이블카를 건설한 후 백무동에서 장터목대피소로 오르는 탐방로를 폐쇄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지역주민과 지역산악인들의 서명용지가 첨부되어 있다. 지리산으로 오르는 길,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사연을 만들어 준 길을 케이블카를 놓기 위해 막겠다는 것이다. 지리산이 지역주민만의 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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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이 추진하는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은 노고단 KBS 송전탑 아래다.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연결하는 지방도 861호선을 폐쇄하고, 성삼재 주차장을 복원하며,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으로 우회하는 탐방로를 복원하겠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지방도 861호선, 우리도 성삼재 관통도로가 폐쇄되길, 우리도 성삼재 주차장이 복원되길 원한다. 그런데 가능한 일일까? 도로에 대한 연구용역만으로도 분노했던 뱀사골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성삼재 관통도로를 폐쇄할 수 있을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지방도를 한 지역의 이해만으로 폐쇄할 수 있을까, 케이블카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의 마약이라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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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은 제석봉 아래 장터목대피소 가까이로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정했다. 산청군이 제출한 계획서에는 세부도면이 없고, 산청군이 환경부에 말했다는 좌표는 장터목대피소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탐방로를 가리키니 이리저리 헤매다 대충 이쯤이겠지 생각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계획서에도 없는 상부정류장 예정지를 근거로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올라가도록 해도 될까, 산청군은 케이블카 건설을 낙관하는 걸까, 아님 포기한 걸까, 정말 의심스럽다.

 

환경부가 6월 안에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지를 결정하겠다고 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동안 왜 안 되는지, 뭐가 문제인지 조사하고, 정리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스럽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필요 없다고, 이미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는 설악산, 내장산, 덕유산 케이블카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아랫녘보다 7~8도 낮은 지리산 위에는 이제서 버들강아지와 생강나무, 진달래가 피고 있다. 지리산자락에서 시작된 신록은 더디게 산위를 향한다. 지리산이 초록으로 덮이는 날은, 초록 안에 품고 있는 붉고, 노란 색이 세상으로 나오는 날은 케이블카도 잊고, 댐도 잊고, 그렇게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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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주옥 사무처장(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국시모 영상미디어팀 (민종덕 님, 전재완 님, 허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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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