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게이들의 수다


군에는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규정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특별 취급한다. 자의든 타의든 성정체성이 드러나면 B급 관심병사로 지정되거나 지휘관이 집중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동성애자를 사고 유발 위험이 있거나 결함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군의 이러한 태도는 성실하게 군생활을 수행하려 하는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손 내밀어 줄 사람 하나 없이 고립된 군대라는 조직에서 성정체성을 이유로 문제병사 취급을 받다보면 없던 마음의 병까지 생긴다. 국방의 의무를 마친 예비역 동성애자들은 규정과 달리 동성애자에 대한 극심한 차별이 존재하는 병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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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폐기된 미군의 동성애자 차별정책
‘묻지도 말 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에 저항했던 한국계 대니얼 최 미 육군중위. 

지난 1월 7일 육군 모 부대에서 한 병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부 내용이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이 병사는 입대 전부터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살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의 사고사례로만 묻혀가던 사건은 1월 17일 군인권센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정체성이 드러난 병사에게 부대가 내린 처방은 ‘특별관리’였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국방부가 낸 입장자료에는 병사의 소속부대가 취한 조치들이 명시돼 있다. 

국방부는 대대장이 총 7회 면담을 실시하고 군의관 상담 및 정신과 진료도 권유했으며, 전역도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등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에서는 이틀 뒤 논평을 통해 “동성애자 병사를 관심사병으로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결국 문제는 동성애자에게 있다'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함에서 비롯하며 전반적인 군대 내 동성애 혐오와 차별 문제를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며 국방부를 비판했다. 

국방부는 동성애자 인권 보호를 위해 에이즈 검사 강요 금지, 식별 활동 금지, 아웃팅 금지 등 다양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으나 인권 활동가들은 규정을 만들어 놓는 게 다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차별금지 규정이 있어도 부대 내에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동성애자를 부대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인련에서는 논평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을 고민하고 바꿔나가는 노력들이 지속적이고 전반적으로 이뤄질 때 동성애자 병사들이 군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12일 <디펜스21>은 동성애자들이 군에서 겪는 고충과 각종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군생활을 마친 예비역 동성애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동인련 소속 활동가들로 신상보호를 위해 사진은 싣지 않고 이름도 가명으로 처리했다. 

국방의 의무 당당히 수행한 3인의 동성애자 예비역

먼저 각자 군 복무지가 어딘지 알고 시작하자. 

조율(가명) 1998년 입대해 육군 1사단에서 보병으로 근무했다. 병장 만기전역했다. 

광호(가명) 고3 때 자퇴한 후 19살에 군대부터 먼저 갔다 오자 생각해서 입대했다. 공군 30단 방공관제단 소속 부대의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상근(가명) 2010년 4월 입대 공군 30단 소속 레이더 기지의 헌병으로 근무했다. 

디펜스21 동성애자는 군대에 잘 적응하지 못 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많은 동성애자들이 군복무를 무리없이 수행하고 있고 이 자리에 있는 세 명도 정상적으로 마쳤다. 이성애자들도 군대라는 조직의 폐쇄적이고 딱딱한 특성 때문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군생활이 결코 무난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조율 사실 나는 만기전역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정체성이 드러난 것 때문에 정신병원에도 있었고 탈영도 했었고 스스로 많이 불안했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람복이 많은 사람이다.  

성정체성이 드러난 뒤에도 부대원들이 조율 씨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줬다는 말인가?

조율 그런 것 같다. 사실 묻지 않는 것도 배려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대놓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러지 않았다. 군복무 이야기를 이어가면, 나는 문산역 인근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1년은 경계근무를 서고 1년은 예비대 생활을 하는 부대였다. 경계에 투입될 때는 상병 중간쯤이었는데 처음에는 대대장이 경계작전 투입을 거부했다. 경계는 병사 두 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데 나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등의 이유였다. 대대장은 “경계 나가면 춥고 만날 풀이나 베고 강만 바라봐야 하는 등 고단하다”며 안 나가는 게 좋다고 권유했는 나는 아무 문제 일으키지 않을 테니 경계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성정체성이 드러난 건 언제인가?

조율 이등병 때 탈영을 하는 바람에 드러났다. 동인련 친구들이 보낸 편지 때문인데 딱히 거기에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야기가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그냥 스스로 많이 위축됐다. 불안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던 도중 철조망을 넘어 버스를 타고 서울 동인련 사무실까지 갔다.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아웃팅이라기 보다는 커밍아웃을 한 것에 가깝다. 당시 간부들은 동성애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 일단 나를 부대에 둘 수 없다고 여겨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신병원에 갔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군의관이 나보고 너무 멀쩡한 동성애자라고 했다. 다른 문제 병사들과는 달리 모범적으로 병원생활을 하고 맡은 임무인 배식도 잘 수행했다. 그러나 내가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병원에 계속 있을 이유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나를 다른 부대로 전출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출간다고 해서 비밀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복무를 계속하겠다고 요청했다. 결국 원래 있던 부대에서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군생활의 목표였다. 왜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키면 작은 것도 크게 보일 것이고 ‘동성애자라서 역시 군생활을 못 한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휘관들도 내가 복무를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두 명의 지휘관을 겪었는데 모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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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호 나는 조율과 다르게 성정체성 관련 문제는 전혀 겪지 않고 복무했다. 나는 사회에서 별명이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이었다. 처음에 자대에 가자마자 행정병 선임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선임도 생각이 열려있는 사람이라 잘 이해해줬다. 어떻게 보면 나도 사람복이 따랐던 것 같다. 동기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는데 자기 주변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반응도 있고 무성애자도 한 명 있어서 대부분 잘 받아들여줬다. 그래도 군대라는 특수 조직에 들어온 이상 웬만하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숨기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성정체성보다 인간관계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입대 전 활동했던 동인련은 수평적 관계만 존재했고 형제도 없고 그러다 보니 군에서 수직적 인간관계를 처음 접하며 어려움이 많았다. 아웃팅을 통해 부대 전체에 내 성정체성이 드러난 적이 있었지만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에 대해 당당하고 태연하게 반응하니 별 문제는 없었다. 

관심병사, 배려처럼 보이지만 배려 아냐

군대 내 동성애자에 관련된 사고사례를 보면 성정체성이 드러난 뒤 숱한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거나 자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호 씨는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 같다.  

광호 짓궂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내가 받아칠 수 있는 수준의 농담만 했다. 공군은 다른 군에 병영문화가 선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그것이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대부분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동성애자란 걸 속인 적이 없다. 내 성정체성이 불치병이나 바이러스, 돌연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병사들처럼 당당했다. 그래서 성정체성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은 게 없어 내 경험으로는 크게 말해줄 것이 없다.

조율 아무리 스스로 당당해도 들어가기 전에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 겁먹었을 것 같은데…

광호 사실 좋지 않은 사례를 많이 듣고 군에 갔기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다. 만약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성추행을 당하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다. 훈련소 군법 강의 시간에 동성애자 관련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장교가 “누군가가 동성애자인 걸 알게 되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지마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근 군 입대 전 군대의 수직적인 인간관계, 폐쇄적인 문화, 군대에 적응하며 변해가는 사람들 등을 보며 군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안에 들어가서는 그냥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했다. 사건을 만들기도 싫고 내 성정체성이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서 유발할 문제들이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성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 자체에 스트레스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가장 답답했던 건 밖에서는 커밍아웃을 하고 살았는데 군에서는 그러지 못 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친구들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어디 가서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는데 그걸 못해 생기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러던 중 내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성정체성이 드러났다. 복무 중에도 SNS를 상당히 즐겼는데 군에 부정적인 글도 많이 올렸다. 그러다 어떻게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기무사가 출동해 증거자료로 내가 쓴 글들을 다 출력해왔다. 그 글 가운데 내 성정체성에 대한 정보도 있었고 간부들까지 알게 됐다. 처음에는 대대장만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간참모회의를 하며 간부들에게 퍼졌을 것이고 행정 서류를 작성하는 행정병들이 보고 병사들 사이에 퍼뜨렸을 것이다. 내 성정체성이 부대 내에 다 드러난 것이다. 

성정체성이 드러난 이후 부대 차원의 조치가 있었나?

상근 사실 나는 성정체성이 문제가 된 게 아니라 SNS를 하다가 걸렸으니 문제가 더 커질 것이란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기무사에서는 다른 곳으로 전출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대대장도 “네가 성정체성이 알려져 불편할 텐데 다른 곳으로 전출가지 않겠냐”고며 조언했다. 그 순간 대대장이 골칫덩어리 하나 치워버리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단호하게 “내가 누굴 추행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기무사가 출동한 건 다른 잘못 때문인데 전출 갈 이유가 없다. 난 앞으로 여기서 잘 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율 내가 볼 때 지휘관이 보여준 태도가 배려 차원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동성애자 병사를 감당하지 못 할 것 같아 전출 이야기를 꺼낸 것일 수도 있다. 내 경우처럼 “경계투입보다는 편한 부대에서 1년만 버틴 뒤 제대하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배려처럼 보이지만 배려가 아닌 그런 방식이 문제다. 동성애자를 관심병사로 지정해 등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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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손길 내미는 민간단체 외면 말아야

만약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성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던 병사가 상근 씨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지 않나.

상근 그렇다고 본다. 

조율 최악의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상근 다른 동성애자였으면 아웃팅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매일 상담사와 상담해도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 어렵다. 훈련소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 퇴소당하는 경우도 있고 부대에서 아웃팅 당하는 바람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이 봐왔다. 군의 대처방식은 항상 똑같다. 다른 곳으로 치워버리기.

만약 상근 씨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면 전출이란 말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

상근 군기위반일 뿐이고 처벌만 받고 넘어갈 일이다. 

지난 1월 자살한 동성애자 병사 사례는 어떻게 보는가?

조율 자살한 병사의 기사들을 보면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유서를 통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점이 드러난다. 자신 같은 사람은 장례도 치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자기혐오가 있던 사람이다. 자기혐오에 빠진 상황에서 수차례 상담을 제공한 것과 같은 조치는 실효성이 적다. 사건 이후 나온 국방부 보도자료가 사실이라면 그 친구도 상담과정에서는 군복무를 잘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을 것이다. 그럼 지휘관은 여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상담 몇 번 제공했기 때문에 할 일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 중요한 건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가다. 

인권단체들이 항상 강조하는 건 군이 그런 문제를 겪으면 인권 전문가들이 포진한 민간단체 도움을 받으라는 건데 국방부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근 잘 알다시피 군은 외부로 자신들의 일이 새어나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도움을 거부하는 것 같다. 군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밖에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을 차단하는 것이다. 

조율 그런데 그런 태도가 더 큰 화를 부르고 있다.

상근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사고들 중 상당수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라고 본다. 원래 심각한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입대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상태로 군에 들어온 병사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결국 소통의 창구가 없기 때문이다. 

조율 국방부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에 강릉에 있는 모 부대의 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전화했다는 사실을 다른 곳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자기가 데리고 있는 병사 하나가 커밍아웃을 했는데 어떻게 도움을 줘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통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군대 안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상담과정에서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군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른다. 국방부 스스로 인권 정책을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할 것 같다. 스스로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인권증진을 위한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발을 내딛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현재 군에서 인권을 담당하는 전문 상담사나 정책 담당자의 자질문제도 있지 않을까?

조율 일단 국방부의 인권전문가들이 군인 출신이든 민간 출신이든 동성애자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 사람들이 한번쯤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한다고 본다.

광호 대부분이 성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민간에서도 그런데 군대는 오죽하겠나. 

상근 상담사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의 자세로 상담에 임하는 것이다. 그런 분들이 성소수자 상담을 하면 나오는 대답들이 뻔하다. 일단 성정체성을 고치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거나 살기 힘들다고 설득한다. 이미 성정체성은 교정이 가능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상담을 진행하는 거다. 물론 상담사들도 다양한 사례를 겪어봤겠지만 동성애자 문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우리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이 교육을 나가본 적이 없다. 인력도 부족한데 공부할 시간도 없으니 상담 내용에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광호 병사들에게도 지금 수준보다 훨씬 개선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무하던 부대에는 1년에 두 번 정도 성군기에 관련된 교육이 실시됐는데 이상한 말만 하고 간다. 어느 날은 성교육 시간에 왜 여자화장실이 남자화장실보다 더 넓어야 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하더라. 그 시간에 동성애자가 어떤 존재인지 병사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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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시한폭탄이란 인식이 진짜 폭탄 만들어

국방부가 인권단체 몇 곳을 지정해서 동성애자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장 지휘관이 직접 연락을 취해 도움을 구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건 어떤가?

조율 차라리 그런 게 현실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해결책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동성애자들은 징병제 사회에서 군대에 갈 수밖에 없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성정체성을 숨기고 전역하겠지만 성정체성이 밝혀진 병사들은 자기를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적어도 커밍아웃한 병사나 성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병사가 있다고 하면 그 부대의 지휘관들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호 정말 안타까운 건 국방부도 그렇지만 아웃팅 문제를 겪는 개개인도 손 잡아줄 곳이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손 뻗을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분위기가 ‘괜히 말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에서 ‘힘들면 말을 해라’는 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군 내부에서 성정체성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무래도 인권단체와 국방부가 머리를 맞대고 장기간 연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광호 사실 군에만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게 동성애자 문제는 사회적 의제다. 

상근 국방부 내부에서 논의되는 동성애자 정책들은 상당히 경직돼있다. 성정체성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맞춤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냥 문제병사로 만들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상담하면 된다고 하니 문제가 된다. 

조율 관심있게 지켜본다는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광호 딱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동성애자는 시한폭탄이 아니다.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보는 편견으로 인해 멀쩡한 사람이 진짜 폭탄이 될 수 있다. 동성애자를 사고유발가능성이 있는 관심병사로 보지 말고 평범한 병사로 봐줬으면 한다. 

상근 급진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국방부가 동성애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동성애가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병사들을 어떻게 잘 어울려 살게 할 것인가만 생각하면 외려 쉽다고 본다. 결국 군대 내 동성애자 문제도 대한민국 사회가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사람 사는 문제인 셈이다. 동성애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고 남과 다른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군이 동성애자의 존재자체가 문제라고 여겨온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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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이 청년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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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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