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업체 감싸는 방위사업청

해외업체 감싸는 방위사업청
국내 업체는 사업 손도 못 댄 채 3차례 검증, 해외 업체는 제안서 하나로 검증 끝?

5,538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의 해외업체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수리온을 기반으로 하는 해상작전헬기 국내 개발은 몇 년간 수차례에 걸친 검증을 거치며 사업 착수조차 하지 못한 반면 해외 업체는 제안서에 제시된 내용만으로 10월까지 기종을 선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위사업청은 이미 두 차례에 걸친 선행연구에서 해상작전헬기 국내 개발이 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업체에 검증을 위한 세부개발 계획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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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직도입, 전력화 시기 만족시킬 수 있나

해군이 2015년부터 운용할 해상작전헬기는 2006년 4월 소요가 결정된 뒤 이듬해 12월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사업 추진에 대한 1차 선행연구를 수행했고 2010년 5월 건국대학교가 2차 선행연구를 맡았다. 이후 2011년 8월 30일 열린 제5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전체 물량 중 8대는 해외 직도입으로 확정하고 20여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나머지 물량은 수리온 운용시험평가 종료 후 기술 성숙도와 경제성 등을 종합 판단해 사업추진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8대를 해외 직도입으로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력화 시기다. 국내 개발은 초도 양산까지 48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업에 착수하더라도 해군이 원하는 전력화 시기인 2015년을 넘길 수밖에 없다. 방위사업청의 주장에 따르면 해외 직도입 헬기는 도입 결정 후 전력화까지 2.5~3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올해 말 기종결정을 하더라도 2015년이면 해군에 헬기를 인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의 AW-159 '링스 와일드캣'과 시콜스키의 MH-60R '씨호크'가 지난 5월 10일 제안서를 제출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4월 한국국방연구원이 수행한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는 해외 직도입이라도 해군의 작전요구성능에 맞춰 국내 개발 장비를 헬기에 통합할 경우 최소 5년이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MH-60R을 제작한 시콜스키사가 한국국방연구원에 답변한 내용에 따르면 이미 미군이 운용 중인 헬기라도 기체에 대함미사일 하푼을 새로 통합하려면 3~4년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해군이 요구하는 경어뢰 청상어, 저가형 유도 로켓 로거(LOGIR), 한국형 데이터링크체계 링크-K까지 통합하면 계약 시점으로부터 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종 체계 통합이 헬기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꼽히는 건 물론 미 해군 기준에 맞게 제작된 헬기에 한국에서 개발한 장비를 통합하다보니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시콜스키라도 단기간에 작업을 끝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경쟁 업체 아구스타 웨스트랜드도 마찬가지다. 결국 해외 직도입 헬기의 장점인 전력화 시기는 현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전력화 시기 문제는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내 놓은 ‘방위사업청 소관 2012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도 지적한 사항으로 보고서는 “사업추진 기본전략에서 정하고 있는 전력화시기에 해상작전헬기를 전력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 개발은 기간 부풀려 제시하기도…

<디펜스21+>가 9월호에서 이러한 해외 직도입 헬기의 전력화 시기 문제점을 지적하자 방위사업청은 “전력화 시기는 제안요청서의 필수 사항으로 이를 충족하지 못 하는 장비는 선정될 수 없다”며 “제안서를 제출한 해외 업체 두 기종 모두 군이 요구한 작전요구성능을 충족하는 장비로 전력화 시기 충족이 가능하다고 제안서를 제출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경쟁 중인 두 기종 모두 2015년까지 전력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방위사업청의 주장대로라면 시콜스키사는 한국국방연구원에 답변한 개발기간보다 최소 2년 이상 전력화 가능 시기를 줄여 제안서를 써낸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입찰 경쟁에 돌입하자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해군이 장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국내 장비들의 개발 실태를 봐도 해외 직도입은 향후 3년 내 전력화가 불가능한 것을 알 수 있다. 공동개발국 미국이 손을 떼는 바람에 한국 단독으로 체계개발을 수행해야 할 유도로켓 로거는 아직 개발완료 시기가 불투명하다. 한국형 데이터링크 체계 링크-K는 2014년부터 양산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으나 해상작전용 링크-K는 아직 양산 계획조차 잡혀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해외 업체의 전력화 시기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방사청은 업체의 제안서에 제시된 수치만 믿고 시험평가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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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리온을 기반으로 해상작전헬기 국내 개발을 맡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방사청에 제시한 개발기간은 48개월이다. 올해 사업에 착수할 경우 2016년경부터 해군에 인도가 시작된다.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 유로콥터사도 비슷한 기간을 제시하고 있으며 체계통합을 맡은 엘빗 시스템즈사는 40개월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빨라도 해외 직도입보다 1년은 늦을 수밖에 없는 것. 한 헬기부품 제작업체 관계자는 “산업 파급효과, 수출 가능성, 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국내 개발의 장점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1년 정도 시간차는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업체가 제시한 적도 없는 개발기간을 들며 해외 직도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다. 

검증만 하다 끝날 국내 개발

<디펜스21+>가 국내 개발과 해외 직도입의 전력화 시기가 거의 같다고 지적하자 방사청은 “전문기관의 분석 결과에 의하면 해상작전헬기 연구개발에는 6~8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방사청은 판단의 근거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2010년 4월 제출한 해상작전헬기 개략 개발 계획서를 제시했는데, 이 문건에는 해외업체의 기술지원을 받더라도 국내 개발에 6년이 소요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한다. 연구개발에만 4년 반이 걸리고 양산에 1년 반이 걸린다는 것. 그러나 해당 업체에 사실여부를 확인한 결과 6년이란 기간을 써낸 적은 없다고 한다. 시험평가를 포함해도 48개월 이상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입장이다. 방사청이 양산 기간을 개발 기간에 포함시킨 점도 국내 개발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요인이다.

한국국방연구원과 건국대학교가 두 차례에 걸친 선행연구를 수행하며 해외업체 협력을 통한 국내 개발이 가능한 것으로 결론났지만 방사청은 얼마 전 다시 업체에 개발 가능성 검증을 위한 세부 개발 계획서 제출을 요구했다. 10월 기종결정을 목표로 일사천리로 진행 중인 해외 직도입 헬기와 달리 국내 개발은 검증만 하다 올해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수행하는 해상작전헬기 국내 개발인 탓에 철저한 검증은 당연한 순서지만 제안서만 믿고 협상까지 진행 중인 해외업체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방사청의 이러한 태도를 해외 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한 역차별로 인식하고 있다. 업체가 제시한 적도 없는 개발기간을 언론에 부풀려 제시하는 행태만 봐도 방사청의 해외 업체 감싸기는 갖은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한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국내 개발을 미루다보면 결국 해외 직도입분 8대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도 전력화 시기나 개발 검증을 이유로 수입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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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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