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골로 향하는 마음_ 2013년 신년산행 후기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어느 곳에 앞서 피아골에 가야할 것 같았다. 국토해양부가 피아골에 댐을 만들겠다는, 귀를 의심케 한 이야기를 들은 후 피아골로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지도를 펼치고, 피아골과 피아골 옆 화개천, 피아골 물이 시작되는 지리산, 피아골 물을 담아내는 섬진강을 이리저리 헤맸다.

 

신년산행을 하자하며, 산행지를 노고단, 천왕봉, 반야봉이 아니라 피아골로 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피아골에 가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엉켜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궁금하고 조바심이 났다. 시도 때도 없이 ‘피아골’이 떠올랐다. 외곡삼거리에서 마을과 마을을 지나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그길, 직전마을에서 시작하여 표고막터, 삼홍소, 구계포교를 지나 피아골대피소까지 가는 산길을 걷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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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끝에 있는 직전마을

 

2013년 처음으로 피아골에 가던 날, 하늘은 냉정하게 파랗고 바람은 견딜만하게 차가웠다. 겨울치고는 춥지 않아 산행하기 참 좋은 날이라고들 하였으나 스치는 바람결의 차가움은 여전했다. 그래도 유난히 춥다는 겨울날치고는 따스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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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로 들어가는 길, 국립공원경계를 지나 표고막터까지는 평평한 산길이다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와 맞이한 다섯 번째 겨울, 삼일을 멀다하고 눈이 내렸다. 구례읍내에 눈이 쌓이고, 열흘이 지나도 쌓인 눈은 녹지 않았다. 녹지 않은 눈 위로 또 눈이 내렸다. 예상대로 지리산도 눈으로 덮여 있었다. 길도 물도 눈의 빛깔이 되어 초록과 붉음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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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피아골대피소로 갔다. 걷는 동안 지리산을 생각했다. 지리산에 들어와서도 지리산을 생각하다니 대단한 홀림이다. 30대 초반 이 길을 처음 걷던 날, 물에 비친 붉은 색에 마음을 빼앗겼다. 붉은 물빛은 강렬히 나를 지배하여 피아골은 누가 뭐하래도 핏빛 골자기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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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대피소에 오면 함태식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가 대피소를 떠나던 날, 그는 대피소 문에 기대어 우리를 바라봤다. 회한 가득한 그의 눈엔 우리도 지리산으로 보였을 것이다. 40년을 지리산과 함께 한 사람이 마지막 살던 곳, 그 없는 피아골대피소는 허전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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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대피소

 

피아골대피소 한쪽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지리산에 주고 싶은 선물로 준비한 제상에는 시와 사진, 감, 장갑 등이 올라왔다. 지리산과의 인연, 지리산에 하고 싶었던 말, 지리산에 대한 감사의 말이 오가고, 시를 읽고, 비나리를 하고, 잘살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덕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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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서시

 

박두규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오랜 마음 속 벗처럼

부르지 않아도 항상

푸른 대답을 보내오고

그리움이 깊을 대로 깊어

산빛 너울이 아프다.

 

미친 눈보라, 갈 곳 없는 어둠

사십 년 징역을 곱게도 사는구나

물빛 하늘 얼굴들

살아서는 부둥킬 수 없었던

그리움 곁으로 가고

홀로 남아

상처 깊은 짐승처럼

우우우 웅크린

산.

 

그대

눈부신 억새꽃 바람결로 스미고

깊은 숲그늘 돌틈

철쭉으로 피어나

우리들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다하도록

스스로가 다하도록 내려올 수 없어

산이 되었던 그대.

 

우리 곁을 떠나간 벗들은

저 산 되었지

헐벗어 눈 덮인 저 산.

그래, 바라던 조국 만나

풀씨는 맺었나

슬픔은 없더나.

 

저 산처럼 서야지

산이 거느리는 핏빛 그리움으로

살아 남아야지

밤마다 이빨 빠지는 꿈을 꾸며

가버린 벗 생각는 일은

그만 두어야지

깊은 숲그늘 바람, 숨 죽여 울면

아직도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분이었을까, 피아골대피소를 떠나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지리산이 든든하게 우리 곁에 있으니 우리는 그냥 살면 될 것 같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 쓰는 자는 시로, 노래하는 자는 노래로, 사진 찍는 자는 사진으로 그렇게 지리산과 함께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지리산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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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혀명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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