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tv] 3분평화칼럼 - 아우슈비츠의 기억 편집장의 노트

 

    

프리모 레비라는 이탈리아 작가를 아십니까? 이탈리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26살이던 1945년에 해방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에서의 목격한 죽음의 기록입니다. 수용소에서 그가 해방될 무렵엔 이미 굶주리고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자유란 찬란하고 감미로운 빛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더없이 공허하고 고통스러운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는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슬프고도 기괴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이 과정을 그린 작품이 <휴전(La tregua)>입니다. 이 중 인상적인 두 구절을 소개합니다.

 

"우리 가운데 극소수의 현자들만이 예견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유,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자유, 아우슈비츠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어서 꿈속에서만 감히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자유가 찾아왔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무자비하고 황량한 벌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57P)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전쟁은 늘 있는 것이다. 내 청중들은 하나둘 가버렸다. 그들도 이 슬픈 사실을 이해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무언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밤들 동안, 우리 모두가 꾸었다. 말을 하지만 들어주지 않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외톨이로 남는 꿈들을."(83P)

 

어떻습니까? 이 감정이 느껴집니까? 폭압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으나, 이 자유를 보다 찬란한 세계로 전진하는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 폭압을 자행하던 범죄자는 사라졌으나 자신은 낯선 땅에 이방인으로 내팽겨쳐진 절대적 고독의 순간들. 프리모 레비는 과연 어떻게 이 모든 걸 극복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생존하려는 강력한 의지. 두 번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였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유머와 익살이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1987년 시민항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자유, 꿈속에서만 감히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자유가 찾아왔지만 또 다른 무자비함과 싸우는 현실은 계속되어야만 했습니다. 2014년의 첫날인 오늘은 민주화 이후 27년째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민적 자유가 감미롭지 않은 이유는 27년 전 이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들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 더 황량한 벌판 속으로 이방인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약속의 땅에 귀환한 프리모 레비를 기억한다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한 줌의 자유와 희망의 작은 불씨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장차 우리가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생산적 활력이 넘치는 사회,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존경이 있는 사회, 공존과 평화, 협력의 세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유를 향한 이 긴 여정에서 오늘 우리의 좌절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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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