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약한 고리’ 탈북자 아침햇발

2010년 6월11일자 아침햇발

 

도올에게는 차라리 ‘명예’이지 싶다. 지난달 23일 서울 봉은사 초청 강연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된 사건 말이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를 0.001%도 믿지 못하겠다고 해 보수단체들로부터 고발당했다. 하지만 정부 발표 이후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고,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를 종합할 때 정부 발표가 맞을 가능성은 0.001%가 아니라 0.00001%보다 낮다고 최근 평가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도올에게 들씌워진 고발은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에 대한 ‘부당한 입막음’으로 읽힐 만하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누구에게나 명예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독재를 연상시키는 공포’다. 특히 힘없고, 빽없는 이들에게 그렇다. 이들 중 가장 ‘약한 고리’를 꼽는다면 지금은 아마 탈북자들일 것이다. 특히 이번 6·2 지방선거 전후로 공안당국이 발표한 3건의 ‘간첩사건’ 중 ‘인터넷 채팅 간첩’ ‘황장엽 살해지령 간첩’ 등 2건이 탈북자 관련 사건이라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 정국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탈북자 간첩’을 더욱 빈번하게 접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의를 확인했음에도, 4대강 사업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고, 이런 불만을 ‘남북 갈등’을 높여 돌파하려는 ‘북풍의 유혹’도 세질 것이다. 이미 휴전선 일대에는 북한이 조준타격을 공언한 확성기가 10대 이상 설치됐다. 이렇게 긴장이 고조되면 왠지 ‘간첩’도 많아진다.

1970~1980년대 간첩으로 조작됐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잇따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는 납북 어부들을 보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은 유신정권 중 76년 이후와 전두환 군사정권 때인 80년대 초반에 집중돼 있다. 정권의 비정통성을 남북 긴장을 높이고 ‘간첩’을 만들어 호도하려 했던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납북 어부들은 이때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들은 힘없고 빽없는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납북이었지만, 북한도 다녀왔다. 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야당이나 민주인사들의 도움도 거의 받지 못했다. 법정에는, 이들의 ‘간첩행위’를 기정사실화한 국선변호사의 “선처를 바란다”는 공허한 변론만이 맴돌았다. 그 허술한 재판들은 납북 어부들의 개인적 삶을 처참히 짓밟았을 뿐 아니라, 독재가 광포해지는 데 일조했다.

 

현재 2만명에 육박하는 탈북자들도 북에서 넘어온 탓에 힘도 없고 빽도 없다. 그러면서도 이들 중 상당수는 2008년 개봉한 영화 <크로싱>의 탈북자 아버지(차인표)처럼 중국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북쪽 가족과 전화도 하고 송금도 한다. 잘사는 남한에 와서 못사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돕겠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심성일 것이다. 하지만 공안당국의 눈으로 보면 모두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 위반이다. ‘조작 간첩’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은 상태인 것이다.

 

최근 간첩 혐의로 붙잡힌 탈북자들의 재판이 머지않아 시작될 것이다. 공안당국의 발표가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는 재판 결과 드러날 것이다. 다만, 그것이 ‘납북어부 간첩사건’ 때처럼 허술한 재판이 되지 않으려면 변호사 등의 정당한 도움은 필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진보단체들이 아직은 이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아마도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제는 진보진영에서도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탈북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공안당국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보안법 마녀사냥’에 성공하면, 그다음 희생자는 바로 내 이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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