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청산선사 4/도인열전 도인열전

국선도 청산선사 4/사흘간의 죽음

청산선사는 어린 시절 사흘간 죽음을 체험한 적이 있다. 할아버지 댁을 떠나기 전의 이야기다.  
 하루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친척집을 다녀오는데 도중에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어스름 해 지는 저녁 길을 혼자 걷게 되었다. 비마저 부슬부슬 내리니 별도 달도 없는 밤이 금세 들이닥쳤다. 사방은 이내 깜깜해져서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서둘러 걸어가고 있는 판이었다. 
 그때에 청산은 피막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피막이라고 하면 매장하기 전에 잠시 시신을 보관하는 곳으로 지금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이었으니 나이 어린 청산이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게다가 비까지 와서 없는 귀신도 보일 판인데, 정말 피막 쪽에서 하얀 소복 입은 여자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바람에 날리듯이 달려드는 게 아닌가.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청산은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발이 떨어지지 않으니 달아날 수도 없고 꼭 주저앉을 것만 같은데, 귀신은 더욱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귀신한테 붙잡히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청산은 말뜻 그대로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지 못하여 귀신한테 붙잡히고 말았다. 
 “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청산은 닥치는 대로 팔을 휘두르고 머리로 들이받고 발길질을 하며 저항하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잘 지어진 조선시대 양반집과 같은 큰 기와집이 보였고, 잠시 뒤 색동저고리를 깔끔하게 차려 입은 어린 청산이 안방 방문을 열고 마루로 걸어 나왔다.
 신을 신고 돌계단을 내려가 넓은 마당에 서 있으니 하늘에서 커다란 백학이 날아와 청산 앞에 사뿐히 앉았다. 청산이 아무 말 없이 익숙한 몸짓으로 학의 목덜미 부위로 올라타자 학은 크게 울부짖으며 큰 날개를 몇 번 펄럭여 금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한없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때에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문득 꿈같이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졌다. 온 천지가 꽃밭이었다. 동산과 풀밭에서는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사이좋게 무리지어 뛰어놀고, 강에서는 갖가지 물고기들이 마치 제 모습을 뽐내기라도 하려는 듯 물 위로 뛰어 올랐다가는 물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며 평화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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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을 태운 학은 한참 동안 더 날다가 차츰 아래로 내려가더니 아주 규모가 크고 잘 지어진 대궐 같은 집의 큰 솟을대문 앞에 내려앉았다. 청산이 학에서 내려 몇 발짝 걸으니 대문이 열리면서 청산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꼬마 하나가 걸어 나오는데 그 얼굴이며 피부와 눈빛, 입술 등 이목구비가 여느 아이들과 너무나 다르게 맑고 환하며 아름다웠다. 
 어린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청산에게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청산이 고개를 끄덕여 답례하자 아이가 다시 말했다. 
 “제가 들어가 어른들께 여쭙고 오겠습니다.” 
 아이는 곧 대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잠시 뒤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이곳에 오실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청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서 있자 아이는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받으세요.” 
 받고 보니 쟁반처럼 생긴 작은 항아리였다. 그 가운데 이상한 화초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것이 한 그루 서 있고, 가장자리에는 물이 있었으며, 그 물 안에 금붕어같이 생긴 희한한 고기가 노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도 잠깐, 눈 깜짝할 사이에 항아리 안에 있던 나무가 점점 자라는데, 금세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천지를 덮을 듯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놀란 청산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에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이 환해지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정신이 돌아와서 살펴보니 동네 어른들도 빙 둘러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청산이 심부름 갔다가 밤늦게 피막 있는 길을 지난 것은 사실이었고, 그 피막 앞에서 소복 입고 산발한 여자 귀신을 만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 여자귀신은 사실,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여인이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밤이고 낮이고 피막에 있다가 사람만 지나가면 달려들어 붙잡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그 산발한 여인에게 놀란 청산이 한참을 싸우다 기운이 진해 쓰러졌던 것인데, 손자가 귀가하지 않자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걱정하던 할아버지는 날이 새자마자 동네 사람들과 함께 손자를 찾으러 나섰다. 그렇게 산을 뒤지다가 길도 아닌 곳에 쓰러져 있는 청산을 발견하였는데 이미 숨도 안 쉬고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어린아이라 딱히 장례를 치를 것도 아니어서 시신을 윗방에 두었다가 관습에 따라 사흘째 되는 날 옮겨다 묻으려고 마을 젊은이들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불쌍한 손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봐야겠다 싶어 하얀 천을 들추는 순간 청산이 꿈에서 깨어 눈을 떴던 것이다.
 친척 어른들 중에는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는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청산은 평생에 세 번 기이한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이때 꾼 꿈이 그중 하나이다. 
 
 글 진목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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