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지정학적 현실과 미․중의 패권 기고

 2011 한겨레-인천 국제심포지엄 발표문(2011. 6. 8.)

서해의 지정학적 현실과 미․중의 패권



김종대(金鍾大 외교안보전문지 D&D Focus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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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면서 - 서해의 복합적 환경


서해가 분쟁의 바다가 될 것인가, 평화의 바다가 될 것인가, 는 향후 장기간의 동북아정세를 전망하는 핵심 열쇠다.

지금껏 서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발전을 성취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연안도시들이 인접한 ‘번영의 바다’였다. 서울, 인천, 평택, 군산과 같은 한국의 연안도시들은 90년대부터 한국이 표방한 ‘서해안 시대’를 모토로 하여 발전하여 왔다. 이는 한중관계와 남북관계의 발전을 전제로 한 한국의 성장 및 발전전략이었고, 또한 성공했다.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와 같은 중국의 서해 연안도시들 풍요의 결실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상징들이 바로 서해에 밀집되어 있다. 북한의 개혁․개방 역시 남포, 해주와 같은 서해의 관문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평양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게 된다. 남쪽으로는 대만의 타이페이, 일본의 오키나와와 연결되는 서해는 세계의 황금이 몰려드는 가장 역동적인 바다가 아닐 수 없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번영된 미래를 약속하는 서해는 새로운 문명권을 창출하게 될 세계의 중심이다. 서해에서 군사적 위기가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자유로운 통항질서가 보장되며, 국가 간 교류와 협력이 강화될 경우 동북아시아의 성장잠재력은 구체적인 번영으로 제2의 도약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서해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다. 2010년에 서해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이제는 전 세계의 가장 치명적인 군사력이 집중되고 있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있다.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두 사건을 겪고 나서 남북한은 서해 도서와 연안지역에 대규모 군사력 증강을 하면서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남북한 간의 분쟁요인은 미․중 간 국제적 긴장과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도화선을 형성하면서 동북아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북한의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은 작년에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을 감수하면서 신냉전의 대결의 양상을 드러냈다. 양안관계와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 역시 미국과 중국이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들이다. 미․중은 공히 2010년에 서해 일원에서 자신의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을 수호하기 위해 상대방을 ‘견제(hedging)’하는 행동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동북아 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된 가운데서도 서해 일원의 안보 정세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12년까지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등, 서해 인접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치․군사적 국가이익의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협력보다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금과 무기가 동시에 몰려오는 세계에서 매우 특이한 바다다. 만일 이러한 갈등이 잘못 관리될 경우 앞으로 새로운 냉전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심각한 대비가 요구된다. 여기에서 인접 국가들이 추구하는 국가이익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이에 기반 한 협력의 방식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제적 갈등관리의 전형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여부가 ‘평화의 바다’냐, ‘죽음의 바다’냐를 가늠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작년에 벌어진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통해 남과 북의 대립구조,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조가 어떻게 드러났는지 조망하고자 한다. 남북한과 미․중은 서해에서의 안보위기가 전개되면서 수시로 자신의 전략을 수정하면서 장기화된 군사적 긴장과 대치, 그리고 지정학적 게임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남과 북의 분쟁으로 시작된 안보위기가 미․중의 군사적 대치까지 연결된 일련의 위기구조가 드러난다. 위기의 정도에 따라 남과 북은 강대국에 '편승(band wagon)'하면서 동시에 강대국은 각기 역내 국가들을 줄 세우려는 패권적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면 다시 남과 북은 이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입장의 변경이 나타나는 등 복잡한 개임의 무대가 바로 서해다.  


   

Ⅱ. 서해에서의 남․북의 분쟁구조


남북한은 90년대 후반부터 서해에서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상황을 지속시켜 왔다.

서해에서 5번의 국지적인 교전을 통해 도발과 응징,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 ‘원한의 사슬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남북한은 각기 서해 일원에 군사력을 전진배치하고 공격적인 전술을 채택하였는바, 이는 상대방에 대한 군사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안보 우선주의’로 나아갔다.



1. ‘원한의 사슬’ 형성


남북한은 서해에서 5번의 충돌을 겪었는데, 그 주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제1차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벌어진 제1차 연평해전은 북 어선 20여척이 꽃게잡이를 위해 북방한계선(NLL)을 월남하면서 이들의 조업을 보장하기 위해 따라온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온 지 9일째 되는 날 일어났다. 이 날 연평도 인근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간 함포사격을 동원한 교전을 벌여 6척의 북한 함정들이 침몰하거나 큰 타격을 입고 2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2함대사령부 관계자는 필자에게 “언론에 알려진 바와 달리 실제 북의 사상자는 180명에 달하는 수준으로 북은 이 해전에서 패배하여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고 다른 증언을 했다.



▲ 제2차 연평해전

뼈아픈 패배를 당한 북한 해군은 이제껏 남측의 해군력을 압도할 수 있다는 그간의 맹신이 붕괴되면서 전술적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우리 교전수칙의 허점을 정확히 공략하는 것이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남서쪽으로 북 측 해상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경비정 2척이 남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계속 남하하면서 아무런 경고 없이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참수리 357호에 명중되었다. 이 교전으로 한국 해군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하고 참수리가 침몰하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북한 측 경비정 1척도 수백발의 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것으로 관측된 것으로 미루어 상당한 인명 및 함정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대청해전

2009년 11월 10일, NLL을 비스듬히 2.2km 남하 한 북한 함정에 대해 우리 측이 경고사격을 가하자 이에 북 함정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함정에 총탄에 15발을 피격 받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 함정이 대응사격을 하여 약 3분 간 4960발을 발사하여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파된 북 함정은 교전능력을 상실하여 북으로 퇴각하였다.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북 함정에서 1명 사망, 3명 부상의 피해를 당했다고 하지만 8명이 사상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해전은 남측의 교전수칙 상 빈 공간을 완전히 메우기 위해 경고사격 후 즉시 격파사격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단축으로 일방적인 남측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 천안함 사건

대청해전 직후인 2010년 1월에 북한은 3월까지 한시적으로 NLL 일원 5곳에 ‘통항금지구역’을 선포하고 1월 27일에 해안포 사격훈련을 감행한다. 해안포는 정확히 NLL 이북 지역에 떨어졌다. 군사적으로 매우 엄중해져가는 분위기에서 3월 26일 밤, 천안함은 평소의 작전기동과 달리 북한의 장사정포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백령도를 엄폐물로 하여 백령도 서남단을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대청해전 이후로 북의 해안포 위협이 실질적 위협으로 부각되었고 백령도 인근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충족되기 시작했다. 9시 22분경 천안함은 강력한 수중 폭발로 두 동강 나면서 46명이 전사하였다. 서해에 북의 잠수정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배치되어 작전 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민군합동조사단에 의해 북한 소행으로 발표되었으나 자세한 작전의 양상과 경위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다만 이제껏 서해상에서 남과 북의 수상함끼리의 교전의 양상은 사라지고 어떠한 치명적인 공격무기건 다 동원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구조가 출현하는 계기가 된 천안함 사건은 하나의 특이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과 북 사이에는 이제 규전규칙이나 교전수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보다 혁신적이고 대담성 있는 과감한 작전을 얼마나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느냐가 서해의 군사적 주도권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은 수상 및 수중에서의 위협 세력을 서해에 구축한데 이어 서해에 장사정포를 비롯한 해안포를 1백문 이상 증강하고 전투기 출격회수를 늘리는 등, 다각도로 서해에서 결전의 준비를 진행하였다. 2010년 8월 9일에 북한의 해안포 총 110발이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 해상에 발사되어 이 중 10여발이 NLL을 넘어 백령도 앞 우리 해상에 떨어졌다. 1월에 북의 해안포가 NLL 이북에 정확히 떨어진 것과 비교할 때 향후 우리 군의 서해 합동 기동 훈련 등 서해에서의 군사행동이 있을 시에는 해안포로 대응하겠다는 경고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어 8월 25일부터 3일 간 북한은 서해 일원에 위성항법장치(GPS) 방해전파를 발사하여 우리 함정과 공항에 혼란을 도모하였다. 향후 서북 도서지역에서 북이 절대적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해안포를 동원한 정밀교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났다.

11월 23일에 연평도에서 우리 해병대가 포 사격훈련을 실시한 지 약 4시간 만인 2시 34분에 북한은 76.2mm 평사포, 122mm 대구경 포, 130mm 대구경 포 등을 이용해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개머리 해안부근 해안포기지로부터 포격을 시작하였다. 이에 우리 해병대와 민간인 4명이 사망하였고 이에 우리가 응사하자 뒤이어 3시 11분에 또 다시 개머리와 우도에서 포탄이 날아와 군 시설과 민가를 덮쳤다. 이에 우리가 재차 대응하면서 3시 41분까지 교전이 계속되었다.


이상의 5번의 교전 중 앞서 제2 연평해전 후 서해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까지 7년 남짓 충돌이 없는 평화가 유지되기도 하였다. 이 기간 중에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표방한 2007년의 10․4 남북공동선언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러한 노력은 부정되었고 교전의 양상은 더욱더 치명적이고 전방위적인 양상으로 악화되었다. 남과 북은 각기 응징과 보복을 준비하며 서해의 군사화에 몰입하는 양상이다.


 

2. 위기관리 기축의 붕괴


연이은 교전을 통해 한국정부는 안보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서북 5도서에 해병대 병력증강, 다련장포, K9 자주포, 신형 레이더 배치를 통해 군사요새화를 촉진하며, 향후 또다시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F-15K 전투기, 함포를 동원한 단호한 대응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의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는 적극적 억제전략을 구사한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의 이상우 위원장은 “북한이 비대칭전과 정규전을 배합하는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선 북한이 이런 무기를 발사하기 이전에 무력화할 수 있는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의 위협에 대한 반응시간을 대폭 단축하며, 선제적 조치까지 고려한 시간 개념의 변화다.

둘째, 교전의 범위도 크게 확대된다. 작년 6월 12일 대북 확성기에 대한 북한의 ‘전면적 군사타격’을 천명함에 따라 한국군은 이에 대해 “비례성․충분성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1발을 쏘면 우리는 3~4발을 쏘아 대응하되 필요시 북한군 초소까지 타격하겠다는 개념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올해 4월 31일에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도발의 원점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원하는 세력까지 (대응 타격에) 포함할 수 있다”며 “북한이 도발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이러한 지침을 현장 지휘관에게 하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셋째, 이러한 남북 쌍방의 군사전략의 변화조짐은 필연적으로 향후 남북 군사정세가 비대칭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고조시킨다. 이럴 경우 예상되는 한국군의 전략변화의 핵심은 재래식 전면전 대비에서 더 나아가 3대 핵심 비대칭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증강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핵, 화학무기, 미사일)에 대비하여 선제 정밀억제타격력을 증강함과 아울러 미사일방어(MD)를 추진한다. 북한의 수중위협에 대비하여 대잠능력을 확충하고 기습공격에도 대비한다. 북한의 특수부대(현재 18만명으로 추산)의 후방침투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육군의 지휘 및 부대구조를 개선하여 신속대응이 가능하고 기습을 차단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한 군으로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비대칭이냐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북의 위협을 대폭 확장하는 국방부의 판단은 여러모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한 북한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첫째, 북은 서해에서 남측에 밀리지 않기 위해 대폭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백령도 북단으로 불과 50~60km 떨어진 북한 고암포 공기부양정 기지가 완공되어 6월부터 기동이 가동할 것으로 판단되며, 신형 장사정포를 비롯한 각종 화력을 증강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서해에 총 4곳의 해군기지에 잠수함․정 운용이 가능하여 유사시 서북5도서에 대한 기습이 가능하도록 전력을 재편하고 있다. 한편 작년의 3차 당대표자회의 직후 평양 열병식에 새로 등장한 신형 장사정포와 대공 미사일 등 기존 화력을 증강하는데도 일정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둘째, 남측이 의도하는 '결정적 작전(decisive operation)'을 회피하여 남측이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위협을 기획함으로써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사례로는 해커부대를 동원한 사이버 공격, 위성항법(GPS) 교란, 전자파 펄스 폭탄(EMP탄) 개발 등 새로운 군사적 방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 위협은 인명살상을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사회 핵심기반을 혼란시키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셋째, 기존의 재래식 군 구조를 경량화 된 경보병부대로 재편하는 등 전술의 지속적인 혁신을 통하여 남측의 대응에 새로운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러한 남과 북의 결전준비는 향후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개연성을 고조시키면서 동시에 확전을 차단할 수 있는 위기관리의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 위기관리와 군에 대한 문민통제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앞으로 서해에서의 무력충돌은 사전 경고 없이 빠른 시간에 발생하며, 매우 빠른 템포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이를 통제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남북한 간의 막후교섭을 위한 대화통로도 모호한 가운데 확전을 방지할 수 있는 차단 장치가 부실해 진다.

둘째, 북한의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올바른 군사적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작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기 정확히 사흘 전에 청와대는 정보기관으로부터 ‘김정일 유고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받아 북에 대해 매우 불안한 정서였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정보기관의 보고서로 인해 북의 의도 및 상황을 파악하는데 지극히 신중했다”고 말한다.

셋째, 위기관리에 있어 더욱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북의 비대칭 위협이 강조되면서 북의 위협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논리구조를 가진 현 국방정책은 결국 우리 힘으로 안보가 불가능하다는 자가당착에 직면한다. 작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한미동맹에 의존하여 위기를 관리하려 했던 정부는 앞으로 북의 위협이 강조될수록 미국에 더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서해가 국제분쟁의 바다로 일거에 돌변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진다.

     



Ⅲ. 서해에서의 미․중의 갈등과 협력



1. 천안함 사건 초기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민군합동조사단이 작년 5월 20일에 사건을 발표하였으며, 정부는 5월 24일에는 대북 7대 조치를 발표했다. 남북한이 극한의 긴장으로 치달은 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 간의 국지적인 충돌에 다소 관망하던 태도를 보여주었다. 미․중은 공히 섣불리 남북한 간의 재래식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6월에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문제가 상정될 때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원치 않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보면 정부의 5․24조치에 대한 소극적 지지의 분위기였다. 그 주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대북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반대

한겨레신문 보도와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작년 6월 말에 김태영 국방장관과 회동하여 우리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심리전의 목적을 알 수 없고, 북한이 대응할 때 우리 대비책이 무엇인지도 명확치 않다”며 이를 반대했다. 이에 김태영 장관은 “심리전을 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이미 심리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실상 확성기 방송을 철회하였다.


▲ 조지워싱턴 항공모함 서해 전개 거절

5․24 조치에 따라 우리 국방부가 서해에 미 항모를 전개해 달라는 요구를 전달하였으나 미국이 난색을 표명하자 김태영 장관이 게이츠 장관에게 직접 요청(작년 6월 샹그릴라 안보대화)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미국은 난색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작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부탁하여 항모 전개가 성사되었으나 7월에 서해가 아닌 동해에 파견하는 것으로 절충되었다.


▲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중 압박에 소극적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작년 6월초에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무렵 미국은 안보리에서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도록 중국을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않았다. 이무렵 미국은 중국의 협조를 받아 핵개발을 강행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중국의 협조로 통과시킨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북한 문제를 강하게 압박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여 진다. 경국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에서의 대북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한다.


이러한 미국의 소극적 태도는 남북한의 재래식 국지전에 미국이 연루되어 중국과 마찰을 빗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미국은 남북한 간에 NLL 문제로 법적인 논쟁이 벌어질 때 한 번도 개입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NLL이 우리가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냐의 여부나, NLL에서의 남북 평화협력지대 등 협력에 관한 일체의 사안에 대해 이제껏 미국의 공개된 입장은 “남북한 간의 문제”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또한 천안함 문제로 중국과 긴장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당시의 분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서해 위기관리의 전면에 나서는데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미국의 항모를 서해에 전개하는 방향으로 한국정부가 계속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추진할 의사를 비추자 중국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7월 28~31일에 동해에서 실시된 한미연합훈련 기간을 전후아여 중국도 동중국해에서의 실탄 사격 훈련(6.30-7.30), 산동성 엔타이 부근 서해상에서의 전시해상수송 훈련(7.17-18), 서해에서의 미국의 공격을 가상한 야간 훈련(8.4) 등을 실시하는 등 강력히 반발한다.

중국의 항모 전개에 대한 반발은 한중관계를 크게 악화시킨다. 8월에도 아사히 신문은 "김태영 국방장관은 당초 이달(8월) 중국을 방문해 량광례 국방부장과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의 양국간 군사협력 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었으나 방중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면서 "이는 서해 훈련의 미 항모 참가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신문은 “방중 일정을 확정지을 무렵인 8월 5일에 미 국방부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서해에서 추가로 실시하며, 조지워싱턴호를 참가시킬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중국 방문을 전격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은 천안함 사건 초기인 작년 5월 말에 우다웨이 6자회담 대표와 원자바오 총리가 연이어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정부를 위로하고 존중하는 뜻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한국이 주도적으로 위기를 관리하여 정세를 주도하지 않고 미국에 의존하여 천안함 정국을 돌파하려 하자 중국은 한국에 우호적인 시선을 거두었다. 중국이 반발한 기폭제는 단연 8월로 예정된 조지워싱턴 항모의 서해 전개였다.


 

2. 천안함 사건 후기

  

천안함 사건 초기 8월까지 미국은 항모를 서해에 전개하지 않음으로써 중국과 대화와 협력의 기조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8월부터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다. 8월에 미국의 민주당이 중간선거에 패배함에 따라 중국에 대한 강경보수 흐름으로 전환하라는 국내 여론의 압박에 오바마 행정부가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중국과 환율 및 재정적자 문제로 갈등이 깊어지고, 중국이 작년부터 동아시아 해양에서의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을 주장함에 따라 미국 내 반중 정서가 크게 고조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변화는 미 항공모함을 서해에 전격적으로 파견한다는 방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태도변화에 돌연 한국정부가 반대했다. 미 항공모함의 서해에서의 문전박대는 9월에 처음 벌어졌다. 당초 9월 6일부터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미연합 대잠수함 훈련이 태풍 ‘말로’ 북상으로 전격 취소되었다. 이 당시 “미 항공모함은 이 훈련에 한국으로 들어올 계획은 없다”고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돌연 조지워싱턴호가 북상하기 시작했고, 9월 4일에 서해로 들어오던 항공모함은 한미연합훈련 취소 결정과 함께 필리핀으로 항로를 바꿔 6일에 마닐라 항으로 들어간다. 한편 연기된 대잠 훈련이 9월 하순으로 정해진 9월 9일에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돌연 “조지 워싱턴호는 서해에서 다시 훈련에 참가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조지 워싱턴호의 서해훈련은 중국을 모욕하거나 중국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인 9월 10일에 미 7함대사령관 존 버드 중장이 이임사를 하는 도중 “항모 조지워싱턴이 필리핀을 떠났고 구축함 2척과 핵잠수함 1척이 작전을 위해 서해로 향한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항모의 서해 진입으로 미국이 방침을 바꾸고 전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11월 10일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회의의 원만한 성사를 위해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방침으로 전환했다. 당연히 미국의 항모 전개에 난색을 표명했다. 9월 말에 들어오겠다던 조지워싱턴호 서해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외교, 국방 라인이 각기 움직여 이를 무산시켰다. 이와 같은 일은 10월에도 반복되었다. 미 측으로부터 10월 20일에 연기된 연합훈련에 항모를 파견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때는 하루 전인 19일이었다. 이에 9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여 전개 시기는 11월 말로 연기되었다. 한편 미 국방부는 10월 29일 경에 “서해로 항공모함을 파견할 것”이라고 공언하였고, 11월 4일(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과 8일(게이츠 장관)이 재차 이를 확인하는 발언을 하는 등 계속 중국을 압박하였다. 이런 연이은 미국의 항모 파견 방침에 한국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모로 인한 미․중 갈등의 영향으로 김태영 장관의 중국 방문은 또다시 연말로 연기되었다. 

미국은 8월부터 전방위적인 대중 강경 모드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조지워싱턴호 역시 서해로 들어오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8월부터 미․중 간에는 서해 항모의 서해 진입의 정당성을 둘러싼 성명전이 연이어 벌어졌다. 8월 5일에 국방부의 항모 파견방침에 중국의 「인민일보」는 9일에 “조지워싱턴호는 어떤 파워를 과시하려 하나”는 시평에서 “왜 (미국이) 도리에서 어긋나며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냉전적인 사고를 가진 패권주의의 부활인 것이지, 다른 국가를 불안케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초과에 대한 불확신인지” 미국에 묻는 형식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자 곧바로 미국의 반론이 이어졌다. 9일에 미군과의 대화에서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은 “우리는 (중국이) 확장해 놓은 영해에 대한 어떤 견해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공해를 항상 지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지난해 10월에도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작전하였고, 또 다시 거기에서 작전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미․중의 성명전은 연평도 사건이 벌어진 11월까지 계속 이어진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 미국이 남북한의 재래식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천안함 후기에는 한국이 미․중의 갈등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여기에서 서해 문제를 둘러싼 강대국의 갈등에는 한국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패권적 양상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3. 미․중 갈등과 서해문제


천안함 초기 남북한의 갈등이 천안함 후기인 작년 8월부터 본격적인 미․중 갈등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후 중장기적 정세를 좌우할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미국의 경우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한다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이제는 가장 우선적인 국방정책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도 ‘제1 열도선’ 안에 위치한 서해를 포함하여 동해까지 중국 해군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는 ‘제2 열도선’ 전략을 구체화시켜 해양에서 미중의 각축전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중의 움직임은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G2 체제’를 강화하여 향후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해양전략은 유라시아의 안보 지각판을 흔들어 댈 핵심적인 변수가 된다.

우선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작년에 중국과 갈등을 빚은 미 합참은 올해 2월 발간된 ‘국가군사전략서(NMS : National Millitary Security)'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수 십 년 동안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일본이 자기의 방위태세를 조정하는 것에 따라, 일본자위대가 자기의 역외작전능력(out-of-area operational capabilities)을 개선하도록 우리는 그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세계적 안보노력을 지원하는 확고부동한 동맹임을 입증하였다. 대한민국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북한이 지역안정에 도발적 위협을 가하는 한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한미연합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2015년까지 유지할 것이고, 대한민국이 자기의 안보책임을 확대하는 것에 따라 대한민국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본과 대한민국의 안보연계(security ties) 증진을 지원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지역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두 나라와 함께 계속 노력할 것이다.”(34P)  


이 문서가 나오기 약 두 달 전부터 한․미․일 3국간의 군사협력에 대한 논의가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으로부터 나왔다. 작년 12월 8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이 “한미일 3국의 합동 군사훈련을 희망한다”고 돌출발언을 하고 나서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일본 방위상과 이 문제를 협의했다. 여기에서 멀린 의장이 말한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은 바로 3년 여 전에 B. B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말한 ‘미사일 방어(MD)를 위한 새로운 지휘체계’ 발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여기에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비하는 새로운 ‘한미일 집단방위구상’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가능성이 싹을 틔우고 있다고 보여 진다.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무장관은 “미국, 한국과의 공조태세를 강화하고 한미일 공조의 틀 속에서 북한 핵개발 저지 등 후속 사태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 방위상은 올해 1월 10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군사비밀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등을 논의하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진행했다. 한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는 한미일 3국간의 집단방위체제를 사실상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이를 공식정책으로 채택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17일에 안전보장회의와 내각회의에서 ‘2011년 방위대강계획’을 통해 자위대의 편성과 배치 개념을 전면 수정했다. 일본 열도에 자위대 핵심 전력을 균등 배치하는 ‘냉전형’ 개념을 폐지하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의해 기동성을 중시하는 ‘동적 방위력’ 개념으로 2015년까지 전환한다. 육상자위대 병력은 현재 15만 5000명에서 15만 4000명으로 줄이고 탱크와 화포를 각각 200대 폐기키로 했다. 반면 해상자위대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잠수함을 현재 16척에서 22척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편 계획에서는 일본 열도에 실질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에 대비해 일본 영공의 미사일 방어망도 대폭 강화한다는 내용도 강조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미사일 방공망을 확충하기 위해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PAC3) 3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이지스함에 탑재된 스탠더드미사일(SM3)도 현재 4기에서 6기로 늘린다는 게 그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재편의 가장 큰 명분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위협 증가다. 계획은 일본의 중장기 안보 대상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넘어 중국의 영토 야욕도 견제하려는 시도가 포함돼 있다. 이즈미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국제정치학)은 “북한 사태를 계기로 과거 러시아(구소련)에 초점을 맞춰 편재됐던 자위대의 운영과 배치가 새롭게 재편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본의 방위개념 전환에 중국은 우려의 시선 속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민일보」는 신방위대강이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일본 서남도서에 대한 방어 필요성을 명백히 강화했다”면서 그 상대는 바로 중국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미국과 일본의 의도는 작년에 미국이 아세안(ASEAN)을 '동방의 나토(NATO)'와 같은 집단방위, 공동방위 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크게 강화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 나토를 통째로 옮겨놓다시피 하면서 연중 동아시아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강화하였는데,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다국적 해상 군사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아시아 중시’를 표방하며 아시아에서 미군을 증강시키고 역내 국가와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북한을 동맹국으로 더욱 강하게 결박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국가들 영토 내에 자국의 해군 기지를 확충하고, 항공모함 건조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해양에서의 갈등이 페르시아만으로부터 말라카 해협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거대한 해양 수송로(sea lane)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나타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은 각기 동아시아에 해양에서 ‘전략적 관문(choke point)'을 선점하려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였다. 이것이 두 강대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기들 편에 줄 세우고, 해군의 전초기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기존에 표방한 ‘제1 열도선’, ‘제2 열도선’을 고수하면서 최근 북한과 동해에서의 협력을 강화하여 ‘생명선’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서해에 대해 중국은 “서해에 공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1980년대에 연안전략에서 탈피한 근해전략을 채택하고 해양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마치 남과 북이 NLL 문제로 대립하듯이 미국과 중국은 서해에 대한 법적 성격 규정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체로 서해는 이미 국제분쟁의 바다로 신속히 전환되고 있다. 그 기폭제는 단연 작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다.

미국의 구상에 맞선 중국은 상하이협력기구를 강화함과 동시에 북한을 통해 동해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실행 중인 것으로 보여 진다. 5월의 김정일-후진타오 정상회담은 동북 3성과 나진항을 통해 중국의 해양력의 확장을 통해 미․일에 대한 전략적 견제까지 고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기 이전에 미국과 일본은 각기 북한과 대화하면서 중국의 동진을 저지하는 방책을 조용히 모색하고 있다. 이는 강대국 간에 지정학적 게임(geopolitic game)이 시작된 것으로, 향후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반도 정세에 핵심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와 같은 미․중의 전략적 대치는 동북아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멀리 호르무즈해협에서 말라카해협을 거쳐 서해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고(전 세계의 3분의 2),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수송의 생명선인 해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중은 각기 베트남의 남사군도 영유권 분쟁, 일본의 센카쿠 열도 분쟁, 대만해협에서의 양안 간의 대치, 서해의 성격 논쟁에 모두 개입할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개입의 방법도 과거에는 개별국가와 쌍무적인 동맹을 통해 개입하려 했다면 앞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각기 자신들에게 줄 세우면서 세력경쟁의 양상으로 몰고 가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리더십, 중국은 경제력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접근하고 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형국이다. 

 



Ⅳ. 결론 - ‘연루’와 ‘편승’의 딜레마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남과 북의 국지적인 충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나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정세를 주도하고 위기를 관리하는데 자신감을 잃고 미국에 ‘편승(band wagon)’하여 문제를 풀고자 했다. 그러나 위기의 초기에는 미국과 중국이 각기 남북한 간의 재래식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 했고, 위기의 후기에는 남북한이 각기 미․중의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결국 서해에서 위기의 발생에 대비한 장기적인 평화․번영의 청사진을 갖지 못하면 전략을 주도할 수 없고, 한 번의 국지적인 위기가 더 큰 위기에 함몰되는 유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교훈이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우리 정부가 처한 딜레마는 서해에서 도발을 자행한 북한에 대해 원칙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더 큰 강대국의 패권 갈등에 연루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상반된 요구다. 서해가 지금과 같이 분쟁의 무대로 남아있다면 내년 3월에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나 3년 후의 인천의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도모하기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지속적으로 도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와 주변국과의 선린우호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단연 서해에서 평화구조가 정착되는 것이며, 이는 강대국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성취해야 할 사안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만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과 갈등을 겪었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대만은 IMF를 겪은 한국에 2000년대에 경제를 추월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안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가 다시 도약하고 있다. 마잉주 총통은 5% 경제성장을 공약하였는데 지금은 10% 경제성장을 통해 ‘황금의 10년’을 구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그 와중에 한중관계가 타격을 입고 경제도 어렵다. 7% 경제성장을 공약한 이명박 정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아예 성장률에 대한 목표를 포기했다.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고 중국이 동해로 진출하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하나의 섬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가장 큰 위기라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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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