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너지 체제 지역에너지(Local Energy)

대안은 ‘지역에너지 체제’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통해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섣부른 확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는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 현대사회는 원자력, 기술, 금융, 기후변화 등 수많은 위험을 안은 채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위험이 발생하면 정작 믿어왔던 과학지식과 공적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생태경제학자 홀링은 예상치 못한 엄청난 외부 충격이 닥쳤을 때 생태계나 사회가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력’으로 정의했다. 회복력을 갖추기 위한 요건은 다양성, 모듈화, 철저한 피드백이었다. 회복력 개념을 전력시스템에 반영해 보자. 먼저 전력을 생산할 때 한 가지 에너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에너지 믹스로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2030년 전력 중 원자력발전 비중을 59%로 설정한 것은 근본적으로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다음으로 모듈화를 통해 일부가 손상되어도 피해가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분산해야 하고, 전력생산과 운영, 위험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원자력은 회복력 있는 전력시스템 요건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보다 지속가능하고 회복력을 갖춘 전력시스템은 재생가능 에너지와 열병합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분산형 지역에너지 체제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독일은 ‘원자력합의’를 통해 원자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하고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에 나섰다. 더불어 환경부는 2007년부터 ‘100% 재생가능 에너지 지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부가 지자체로 하여금 분산형 전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110개 지자체가 에너지 전환실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중 34곳은 이미 태양, 바람, 바이오매스 에너지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지역에너지계획과 지역에너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에너지공급의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는 절약, 홍보, 안전관리,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보급이라는 한정된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전력시스템의 전환을 위해서는 ‘전환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위해 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23개의 전환경로와 80개의 전환실험을 계획했다. 계획을 실행할 새로운 거버넌스로 정부와 산학연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에너지 전환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부처 간 정책조정을 위해 ‘부처간사무국’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사례를 거울 삼아 우리도 구체적인 비전과 경로, 실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유가 상승, 에너지 빈곤층 증가, 원자력발전소와 초고압송전망 건설에 따른 지역 갈등 등은 지자체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적극 개입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발 빠른 곳의 지역 주민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부안의 등룡마을, 화정마을은 핵폐기장 반대 운동을 계기로 원자력에너지부터로의 독립을 선언했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원한다면 에너지 정책의 무게 중심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공급에서 수요관리로, 원자력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와 분산형 가스발전으로 전환해가자. 에너지에 관한 책임의식에 기반을 둔 지역에너지 체제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이유진 녹색연합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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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고, 녹색당 당원 이유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