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를 보내며 들녘에서

우리나라를 계절에 따라 오가는 철새는 여름철새와 겨울철새로 구분합니다. 여름철새는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번식을 하고 새끼를 키워 가을에 떠나는 새며, 겨울철새는 가을에 와서 겨울을 나고 봄에 떠나는 새를 말합니다.

겨울철새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북쪽 지역에 사는 새로서 그 지역의 혹한을 견디기 힘들어 조금 또는 훨씬 덜 추운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지내는 새입니다. 오리, 기러기, 두루미, 고니 종류들이 대표적인 겨울철새라고 할 수 있지만 맹금류와 산새 무리 중에도 겨울철새가 많습니다.

겨울철새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를 비롯한 두루미과의 새들입니다. 두루미는 철원과 연천의 민간인통제선 안쪽(북쪽)이 월동지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두루미를 만날 수 없습니다. 재두루미는 철원과 연천이 주요 월동지이지만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에서도 200여 개체가 매년 겨울을 납니다. 흑두루미는 순천만이 현재의 유일한 월동지입니다. 재두루미와 흑두루미의 경우 일본에서 겨울을 지낸 개체들이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시기에는 서해안과 남해안 여러 곳에서 잠시 머무는 무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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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미, 천연기념물 제202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Ⅰ급, 몸길이 140 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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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두루미, 천연기념물 제203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 몸길이 120 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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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두루미의 착지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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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두루미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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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두루미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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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두루미, 천연기념물 제228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 몸길이 100 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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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두루미 무리의 비행

두루미과의 새 중에서도 으뜸은 두루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조들은 고고한 자태의 으뜸으로 두루미를 꼽았으며, ‘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라 하여 선학(仙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학은 고고한 기품 덕에 문관의 상징으로 여겨져 종4품 이상의 당상관은 쌍학(雙鶴), 당하관은 단학(單鶴)을 수놓은 흉배를 관복에 달았으며, 이는 문관을 학반(鶴班)이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합니다. 지리산 자락의 청학동(靑鶴洞)은 푸른 학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청학은 천 년을 사는 학을 말합니다. 또한 학의 우아한 몸 사위 하나 하나는 학춤으로 거듭나 궁중행사나 제례의식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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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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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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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미와 재두루미영상이나 사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야생의 두루미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면 왜 옛사람들이 학을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표현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은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두루미를 직접 볼 수 있기를 진정 바랍니다. 하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두루미를 만나는 길은 무척 험난합니다. 두루미가 지내는 지역이 철원과 연천의 민간인통제선 안쪽이기 때문입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통선 밖에서 기다리다 가물에 콩 나듯 민통선을 벗어나주는 두루미를 먼발치서 만나는 길은 있으니 말입니다. 두루미에게는 민통선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경계인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연천의 경우 민통선 밖으로 나와 제 몸을 보여주는 두루미는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철원과 연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역입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벌판에서 동상을 각오하고 하루 종일 기약도 없는 기다림을 감수해야 합니다. 너무 가혹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민통선 안쪽에 거주하는 주민의 친척이어서 방문형태로 입장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그 지역 주민과 다행스럽게 친척일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달 초순, 물바람숲에서 <‘1박2일’이 몰랐던 것, 탐조의 미학은 ‘추적’ 아닌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1박2일’의 미션은 두루미 한 가족(보통 4 마리)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 ‘추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1박2일’의 시청률은 대개 25% 수준입니다. 4명 중 1명이 보았다는 뜻이고, 그 1명이 시청하지 않은 3명에게 내용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루미가 우리나라에 실제로 살고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무척 고마운 일입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걱정은 현실이 되어 철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루미 사진을 찍으려 몰려들었고, 두루미들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추적’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탐조의 미학은 ‘추적’이 아닌 ‘기다림’이라는 말은 새를 관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더 이상의 적절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두루미의 땅 철원은 기다림만 강요할뿐 마땅히 기다릴 곳이 없습니다. 철원에 가면 쉽게 두루미를 만날 것으로 알고 왔을 것이나 두루미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보니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는데, 말 그대로 민간인 통제 지역입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검문소 안쪽으로는 한 발짝조차 들일 수 없습니다. 중간 중간 검문소가 없는 샛길이 보이지만 어김없이 바리케이드가 막고 서있으며, 바리케이드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30초 이내에 어디 선가 군인 아저씨가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국방이 그리 허술하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다시 검문소로 가서 7시간을 운전해왔다고 통사정을 할 경우 마을에 사는 친척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다는 귀띔을 해줄 것입니다. 친척이 있을 리 없으니 울화통만 터지는 일입니다.

할 수 없이 민통선 밖에서 서성이게 됩니다. 어지간히 옷을 갖춰 입었더라도 철원의 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온 사람이라면 온 몸을 핫팩으로 둘러싸는 준비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손발에 감각이 없어지고 볼은 이미 남의 살 같을지라도 견디고 견디다 보면 두루미 한 가족이 민통선 밖으로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좋은 거리로 내려앉아줄 가능성은 없습니다. 두루미는 최소 경계 거리가 약 150미터이기 때문입니다.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멀 것입니다. 누구라도 ‘추적’을 감행하기 쉽습니다. 날고, 추적하고, 또 날고, 다시 추적하고… 사람도 두루미도 서로 힘만 빼다 끝납니다.

다른 새들처럼 두루미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려면 자연에 가깝게 움막을 짓고 한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입니다. 그러니 철원군과 관계 기관 및 단체에서는 두루 두루 지혜를 모아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관찰장소 이외의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두루미 탐조 행위는 철저히 감독해주었으면 합니다. 더군다나 올 봄에는 양지리 검문소의 위치가 더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이제 두루미의 들녘, 그리고 그들의 최대 잠자리인 토교저수지를 품고 있는 양지리 마을은 누구라도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이대로라면 두루미는 더욱 더 ‘추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루미가 모두 떠나고 난 뒤, 저들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동상은 걸리지 않을 정도의 탐조시설을 마련하여 인터넷 예약을 받아 관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두루미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관찰할 권리 또한 있습니다. 접근조차 차단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분명 철원에도 있는 두루미를 보기 위해 일본 북해도까지 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입니다. 두루미와 잠시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 가까이 있다는 뜻입니다. 두루미 무리가 평소보다 아주 높이 떠서 기류를 탐색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피할 수 없이 맞아야 하는 이별인데다 다시 만난다는 또렷한 기약이 있기에 예전에는 “잘 가고 또 만나자”는 인사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두루미를 보내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올 가을 두루미가 다시 철원평야를 찾아주었을 때, 그 때도 여전히 끝없는 ‘추적’만이 있어야 하나요? 제대로 고민하면 두루미 보호와 두루미 관찰이 공존할 길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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