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추락 자연 속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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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 불립니다. 창공에 높이 올라 3미터에 이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갯짓도 없이 기류를 따라 선회하며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먹잇감을 찾는 매서운 눈매를 보면, 독수리를 하늘의 제왕이라 부르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수리의 속내는 겉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독수리는 전 세계에 20,000여 개체만이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 조류로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 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위태로운 종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 243-1호와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주로 러시아, 몽골, 중국에서 번식을 하며, 겨울이 오면 번식지를 떠나 파키스탄, 미얀마, 북한, 그리고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겨울을 납니다. 겨울철에 우리나라를 찾아와 월동하는 독수리 무리는 몽골 지역에서 번식한 개체들입니다. 독수리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며, 산란은 2월부터 시작하여 늦어도 4월이면 끝나며 알은 딱 한 개만 낳습니다. 대부분의 새들은 2주 정도에 걸쳐 알을 품고 길어도 한 달 정도인 것과 달리 독수리는 55일 가량 알을 품어야 부화가 일어납니다. 게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무려 4달 가까이 둥지에 머물며 먹이를 받아먹고 큰 다음에야 둥지를 떠납니다. 결국 어린 새 하나를 키우는데 반 년 정도가 걸리는 셈입니다. 또한 그 일정의 매 순간을 무사히 넘겨야 번식에 성공하는 것이므로, 번식 일정 자체가 개체군의 크기를 증가시키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구조입니다. 실제로 독수리의 번식 성공률은 한 쌍 당 0.57 마리라는 사실이 이러한 형편을 잘 설명해줍니다.

번식을 위해 흩어졌던 독수리들은 번식 일정이 끝나면 다시 무리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몽골의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어린 독수리들은 겨울나기를 위해 먼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몽골의 겨울은 영하 30 ~ 40℃의 혹한이 이어집니다. 어린 독수리가 견뎌낼 수 있는 기온이 아닙니다. 또한 먹이에 대한 서열은 엄격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혹한에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먹이 경쟁에 밀려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의 90 ~ 95%가 어린 독수리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몽골의 번식지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월동지인 경기도 북부 지역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2,000km이며, 소요시간은 10일 정도입니다. 먼 거리의 이동 또한 때로 그들의 생명마저 대가로 치러야 할 만큼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동에 따른 모든 위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동하지 않는 것일 정도로 번식지인 몽골지역에서 어린 독수리가 겪는 추위와 굶주림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1월 중순부터 도래하기 시작하며, 이듬해 3월에서 4월에 걸쳐 다시 몽골로 북상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번식지에서는 개체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독수리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먹이입니다. 독수리는 먹이 습성이 일반적인 맹금류와 다릅니다. 사냥을 하지 않고 동물의 사체를 먹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동물의 사체를 만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입니다. 따라서 독수리가 우리나라에 올 이유가 없는데도 점점 더 많이 오는 이유는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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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독수리가 최초로 확인된 공식 기록은 1981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두 마리였습니다. 이후로 독수리는 기억에서 잊힌 채 12년이 조용히 지난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강원도의 민통선 지역에서 검은 색의 무척 큰 새 하나가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군인들이 다가가도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맥없이 포로가 된 새는 바로 하늘의 제왕 독수리였습니다. 독극물에 의한 중독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독수리는 간단한 치료과정을 통해 바로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치료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병명은 어이없게도 영양실조였으니 말입니다. 그 다음해부터 민통선 지역으로 모여드는 독수리는 점점 늘어났으며, 그만큼 힘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독수리의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휴전선 지역의 여러 곳에서 똑같이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선의를 베풀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먹이를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양실조로 추락한 독수리가 날개에 힘을 얻어 비상하는 모습을 보며, 먹이를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해결책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먹이 제공과 추락의 반복이었으며, 그러는 사이 악순환의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2008년, 전국의 독수리 주요 도래지 및 독수리 관찰 기록이 있는 17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합동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독수리 월동 개체는 1,912개체로 나타나 있으며, 확인된 개체 중 성조는 단지 10% 정도에 불과하여 대부분 어린 독수리였습니다. 770개체의 가장 많은 독수리가 확인된 장단반도 일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먹이주기 행사를 해온 곳입니다. 나머지 지역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독수리가 발견되는 모든 지역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소, 돼지, 닭을 비롯한 가축과 가금류의 집단 사육시설이 있는 곳입니다. 독수리는 축사, 돈사, 양계장, 그리고 방목장에서 자연 폐사로 인한 사체 또는 그 부산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먹이의 양에 비하여 독수리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먹이가 발생되기를 기다리다 지친 독수리는 다른 지역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지만 다른 지역이라 하여 형편이 나을 리 없습니다. 또한, 최근 축사나 양계장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다니는 몇 곳에서도 찾아오는 독수리는 조금씩 늘고 있는데, 축사와 계사는 줄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1,912개체라는 숫자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전 세계 독수리의 생존 집단을 20,000여 개체라고 가정할 때,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생존집단의 1/10에 가까운 숫자가 5개월이나 머물다 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독수리의 존폐 여부가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독수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겨울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일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입니다. 시작할 때 무엇이 진정 새를 위하는 길인지 더 냉정하게 고민을 해야 했고,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접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정이 앞서 이랬다저랬다 했었으며, 먹이로 철새들을 불러 모아 지역의 상품화에 이용하느라 필요 이상의 먹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이 왔습니다. 독수리를 포함하여 수많은 철새들이 가만히 앉아서 먹이를 기다리며 서서히 본래의 야성을 잃어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먹이를 딱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줄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어떻게 줄 것이냐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를 놓친다면 먹이 주기와 독수리의 추락은 마지막 독수리가 추락하는 날까지 반복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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