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이웃나라 겁주기 정책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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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3. 4. 26. 

2013년 한반도의 봄은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쌍끌이 위기다. 남쪽에서는 일본의 환율 공세로 세계 15위의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자신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웃나라에 피해를 주는 이런 행태를 ‘이웃나라 가난하게 만들기’, 좀더 어려운 경제학 용어로 ‘인근 궁핍화’ 정책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 자본재 시장과 수출전선에서 일본의 대공세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이참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과거사 부정까지 서슴지 않는 노골적인 공세외교도 펼친다. 한반도에 경제·역사·문화적 침략을 감행하는 일본의 행태는 우리에겐 21세기판 임진왜란이다.

북쪽에서는 지난해 12월의 로켓 발사에 이어 올해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3일 전쟁”, “통일대전”으로 전면전쟁 협박도 불사했다. 이런 협박을 곧이곧대로 믿고 핵무장까지 하자는 우리 사회의 단순무식론자들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협박은 그런대로 통하는 편이다. 전쟁을 우려한 외국 골퍼들의 불참으로 국제 골프대회가 반쪽으로 치러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전쟁 위협으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는 북한의 행태는 ‘이웃나라 기죽이기’로 유리한 협상의 판을 까는 것, 어려운 위기관리용어로 ‘강압 흥정’ 전략이라고 한다. 최근 일본과 비슷한 이런 북한의 행태는 우리에게 21세기판 병자호란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협박을 동시에 받는 우리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동북아시아가 국가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정글이 돼 가는지, 기가 찰 일이다. 이렇게 되면 미·중·러·대만의 움직임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선을 더 먼 곳으로 돌리면 작금의 진통은 동북아시아 질서 변화의 불안정한 단면이다. 대륙과 해양의 지각판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먼저 분화구가 폭발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일어나는 지각변동, 곧 세력균형이 변화하려는 불확실한 상황에 동북아 국가는 불안하다.

불안의 세계에서 자신의 안보와 생존을 서둘러 도모하겠다는 국가의 자기중심주의가 ‘이웃나라 겁주기’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어떤 나라는 금융과 외교로, 어떤 나라는 핵무기로 주변국에 공포를 전달하는 나라의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막말을 내뱉는다. 주변국에는 전환기적 국제정세에서 자신의 역할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과시하고, 국내정치에서 대중적 인기도 거머쥐려고 하는 계산된 꼼수들이다. 이런 이웃과 함께 산다는 것은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어두운 골목을 걷는 것과 같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껏 우리는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신성한 권위를 가진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보는 것처럼 바로 그런 국가주의·민족주의가 기실 알고 보면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깡패 짓하고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공세적 국가주의를 우리가 답습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협박에 쫄지 않으면서 이웃을 따뜻하게 압도할 수 있는 남다른 힘을 보여주는 길이다. 불신으로 가득 찬 국제정세에서 새로운 소통과 협력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국가의 공격 본능을 용해시켜 버리고 평화와 협력의 본성을 일깨우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원점타격, 지휘부 궤멸, 선제공격, 확장억제를 아무리 말한다 하더라도 현상은 바뀌지 않는다. 사실 이런 말들은 실현 불가능한 용어의 남발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5월 미국 방문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월 이후 동북아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건, 4자회담이건 열리기를 기다린다. 이제 망설이지 말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북아 협력 구상을 즉시 착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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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