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같은 인수위 기고

<한겨레신문 시론> 2013. 2. 1.  

[한겨레] 1989년에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계엄령 선포 문제를 두고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이 회의를 했다. 찬반 여론이 갈려 결정이 나지 않자 최근 낙마한 보시라이의 아버지인 보이보가 덩샤오핑의 판공실로 가져가서 결정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천안문 광장에서 무력진압이 시작되었다.

한달이 다 된 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보면 도대체 저 조직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무엇이 다른지, 도무지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게 철통 보안에 묶여 있고 밀실에서 인사가 결정되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의문의 숙청까지 영락없는 ‘중국 공산당 스타일’이다. 인수위를 만들어 놓고 출근도 하지 않는 박 당선인이 자택에서 결정하는 모양이 바로 덩샤오핑의 옛 모습이다.

1월에 최대석 인수위원이 사퇴하고 연락이 두절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인수위 핵심 인사가 하루아침에 정치 망명객처럼 사라진 배경을 두고 갖은 억측과 소문이 나돌아다닌다. 최 위원 파동이 인수위 설명대로 일신상의 사유였다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메시지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만큼 향후 외교안보에 끼칠 영향이 지대한데도 “15년 뒤에나 그 진상이 공개될 것”이라는 말 한마디로 인수위는 세간의 관심을 억눌렀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가 낙마했다. 인선과 검증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리무중이다. “국정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작금의 혼란은 당선인과 인수위의 비밀주의가 더 큰 원인이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앞으로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비공개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통치가 부활하고 있다는 징후다. 소통하는 정치인보다 다스리는 통치자는 ‘질서’를 중시한다. 그들은 항상 조직되지 않은 대중의 우매함을 가장 두려워한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번거롭고 소모적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아직 그런 혼란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게 반듯하고 안정되고 기계처럼 척척 움직이는 중국식 통치체제는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에 ‘선한 독재’를 지향한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과거 독재정권은 그리 선하지 못했지만 그 효율성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체제에서는 정치의 주체인 시민은 없고 통치의 대상인 신민만 있다. 그것이 1970년대의 자화상이다. 최근 정부의 한 부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하자”고 보고하여 칭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잘살아 보세”를 외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 역시 “1970년대 정신을 배우자”고 외치고 있다. 김정일의 리더십이 구축되고 150일 전투 신화를 만든 과거 평양의 기적을 재현하자는 복고풍 운동이다. 어쩐 일인지 남과 북이 하는 말들에서 70년대의 유사성이 보인다.

통치를 지향한다면 가장 고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교안보는 어떠한가? 북한의 핵실험이 예정된 위기의 조짐에도 박 당선인이 향후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어떻게 주도하고 관리할 것인지, 말 한마디 없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면 항상 주변국에 주도당했다. 집권 초에 곧바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준비하지 못하면 주변국은 그 빈틈으로 들어와 한반도 정세를 규정할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는 격랑으로 치달을 한반도 정세도 마치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다. 비밀, 침묵,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당선인과 인수위의 기이한 행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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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