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한국 방위산업, 어디로 가나? 방위산업

<주간동아> 201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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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위산업의 전대미문의 태풍을 맞아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정부가 일부 지분을 소유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민영화가 석연치 않은 절차와 방법으로 강행되고 있는 것이 그 첫 번째 태풍이다. 지난 10여 년간 국가가 9조원이나 쏟아 부어 T-50, KT-1, 수리온 헬기를 개발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항공 기업을 섣불리 부실한 기업에 넘길 경우 그동안 국가가 구축한 항공기 개발의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방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도 정권 말기에 정권의 핵심 인사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란이 예상된다.

KAI 매각 입찰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 11월 16일에 감사원은 한국형 K2 흑표전차의 핵심 구성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선정이 잘못되었다며 부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한 방위사업청 간부를 징계하도록 통보한 것이 그 두 번째 태풍이었다. 국방부와 방사청이 감사원의 조치에 반발하면서 정부 기관끼리 갈등이 조성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감사원 조치를 그대로 따르자면 2014년이 되어도 전차 생산이 어려워진다. 2008년에 이미 흑표전차 체계개발을 완료하고도 전차 생산이 장기간 지체됨에 따라 4만 여명의 전차 생산 협력업체 직원들의 생존권 위기까지 초래되는 최악의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차 생산의 총체적 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방산업계는 이미 가동률 저하, 경영환경 악화로 거의 빈사상태다. 지난 20년 간 우리나라는 국방 연구개발비를 꾸준히 증액시키면서 무기 국산화의 기반을 확충해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 정부에서 방위산업체의 연구개발 인력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고 생산기반도 부실화되면서 한국 무기시장은 외국기업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규모로 국부가 해외에 유출될 뿐만 아니라 해외의존이 심화되어 자주국방 역량이 심각하게 침해된다.

방위산업 판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KAI 민영화 추진은 정권의 정치논리가 국가 항공 산업과 안보를 어떻게 왜곡하는 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1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항공이 KAI를 인수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데 검토해보라”고 지식경제부에 지시한 데 대해 지경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한 바 있다. 부채비율이 금년 상반기 기준 829%에 달하는 대한항공이 107%의 KAI를 인수할 경우 항공기 개발을 위한 투자가 부진해지며 동반부실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조양호 대항항공 회장의 KAI 인수 시도는 집요하게 계속되었고 청와대와 대통령 측근들도 대한항공에 KAI를 넘겨주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재무구조가 부실한 대한항공에 KAI를 매각하기 어렵다는 정책당국의 입장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특히 올해 8월 30일에 KAI 지분을 소유한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에 공문을 발송하여 “대한항공이 외부자금 조달로 KAI를 인수할 경우 (대한항공이 약속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의 제반사항 준수가 곤란할 것으로 예상되어 부정적”이라고 통보하였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이 수의계약으로 KAI를 인수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인식되던 터에 9월 7일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9월 7일에 김대기 청와대 정책실장 주관하에 경제수석실, 지경부 기획조정실장 등이 참석한 청와대의 회동이 있었고 여기서 KAI 매각 대책이 논의되었다”고 전하며, “이후 KAI 매각 입찰 절차가 빨라졌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이 회의가 있는지 열흘 후인 17일에 매각을 주관하는 정책금융공사는 “수의계약도 가능하다”며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이미 유찰된 매각을 재공고를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단독으로 입찰에 응하는 수의계약에 대해 강한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던 중, 입찰 마감시한인 27일에 현대중공업이 전격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여 경쟁이 성립되었다. 이로 인해 수의계약에 대한 반대여론이 희석되자 입찰 절차가 강행되게 되면 12월 초에는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예정이다. 청와대의 ‘대한항공 밀어주기’가 노골적이라는 야당과 노동계의 비판이 고조되던 9월 27일에 현대중공업의 입찰참여는 세간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정몽준 선거대책본부장이 선거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그것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박근혜 후보를 돕는 상황에서 정작 자신은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정몽준 본부장이 자신이 소유한 기업으로 하여금 KAI 인수를 시도했을까?

그 내막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몇몇 업계 관계자는 “9월 7일 청와대 회의 이후 지식경제부 주요 관계자들이 현대중공업이 입찰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며 ‘청와대 관련설’을 제기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KAI를 인수하려는 진정성에 의문이 간다”는 것이다.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대한항공은 30여 명의 대규모 실사 인원을 투입하여 인수 준비를 하는데 반해 현대중공업은 2~3명에게만 실사 책임을 맡긴 채 남의 일처럼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입찰이 임박한 11월 말 현재 “현대중공업은 대한항공을 밀어주려는 청와대 의도를 뒷받침하는 조연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만일 입찰 결과 청와대가 대한항공에 특혜를 주기 위해 들러리를 세운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KAI 노조를 비롯한 야권과 노동계 전체는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4월부터 KAI 매각의 주역인 강만수 산업은행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고, 정책금융공사의 매각자문사인 크레디트스위스는 UAE 원전, BBK 다스 송금, 케메룬 다이아 C&K 대출에 관여한 현 정권의 분신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노동계로부터 나오던 터였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주거래 금융사에는 이상득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 씨가 참여하고 있다. 정권 실세에 의해 KAI가 대한항공에 매각이 성사되고 나면 우선 예상되는 것이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KAI가 일부 경영에서 방만한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조조정은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미 가동되고 있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와의 기능이 합쳐지면 인원은 두 배로 늘어나는데 매출은 40%만 늘어나기 때문에 대규모 감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그동안 항공기 개발 경험이 없는 대한항공의 기존인력은 유지되면서 KAI 측의 연구개발 인력이 감원될 개연성이 크다. 운수산업으로 성장해 온 대한항공은 항공기 개발투자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모두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칫 이번 민영화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역량은 퇴보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항공 산업의 기반이 뿌리 채 흔들린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11월 16일에 발표된 감사원의 K2전차 감사결과는 전차의 생산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이미 작년에는 야전에 배치되었어야 K2 흑표 전차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차의 핵심 구성품인 국산 변속기와 엔진, 즉 파워팩의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올해 4월에 방위사업청은 2013년도 양산분 100대에 한해 파워팩을 독일로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결정 직후에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방사청 관계자가 독일 파워팩의 결함은 무시하고 국산 파워팩의 결함은 부풀려 해외 파워팩을 도입하도록 부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며 방사청에 징계를 요구하였다. 감사원의 움직임을 지켜 본 기획재정부는 올해 전차 생산에 배정된 2,000억원의 집행을 보류하여 1100여개 전차 협력업체와 4만 명의 직원들이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더 이상 사업이 지연되면 업체 도산이 줄을 이를 것이고, 이를 복구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는 올해 예산뿐만 아니라 내년도 예산에 대해서도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또한 방사청이 감사원 주문대로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할 경우 2014년에도 전차 생산이 가능할 런지 의문이다. 국내업체와 수출계약을 맺은 독일 회사는 우리 측이 벌써 지급했어야 할 선급금을 미룰 경우 약속 미 이행에 따른 법적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그동안 정부와 업체가 막대한 혈세와 노력을 쏟아 부어 구축한 한국형 전차의 생산기반이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자동차 수출보다 전차를 먼저 생산한 나라이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계와 설비 기술을 일구어왔다. 그런데 파워팩 국산화 문제로 3년을 논쟁하다가 이제는 결정된 정책마저 흔들리는 작금의 사태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원시적이다. 애초 무리한 국산화 계획을 세운 것도 잘못이지만 개발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없었고 위험관리도 수반되지 않은 것은 사업의 초보적 관리도 부실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유달리 이명박 정부에서는 방위산업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 제재가 남발되었으나, 그 결과 정책적 개선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동안 감사원과 방위사업청이 예정가의 60%를 밑도는 낙찰가 후려치기로 입찰로 방위사업을 주도한 결과 일부 개발 사업에서는 참여 업체가 없어 유찰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대규모 업체 제재라는 강경한 조치도 남발하였으나 법원에서 대부분 패소하고 있다. 멀쩡한 항공 기업을 민영화한다든가 국내 방산업계 ‘두들겨 패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에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국방예산 20%는 깍아도 된다”며 방위산업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면서 본격화 된 흐름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후 국내 방위산업계는 업계의 탕자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같은 임기 기간 중 청와대는 차기전투기, 대형공격헬기, 해상작전헬기, 무인정찰기 등 약 20조원에 이르는 해외무기 직구매를 소나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외국 업체의 경우에는 국내기업에 가혹하게 부과하는 지체상금도 면제될 뿐만 아니라 정부 간 거래(FMS)로 추진되는 무기도입의 경우 공급자가 계약을 위반해도 국내 법원에 제소할 수도 없고 확정가 계약도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특혜 덩어리다. 현 정부에게는 국내 기업은 콩쥐이고 외국기업은 팥쥐인 셈이다. 이런 시어머니 밑에서 우리 방위산업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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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