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외면한 군, 보수정권의 소프트파워를 잠식하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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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전이 된 사무엘 헌팅턴의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는 “후진국의 군대는 군인을 ‘지배’하고, 선진국의 군대는 ‘조작’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배는 권력에 대한 맹종을 요구하고, 조작은 권위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유도한다. 이게 바로 독재와 민주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우리 군대는 어느 쪽에 해당될까?

2008년에 국회 국방위에 제출된 육군의 업무보고 8페이지에 나오는 말이다.

‘입대 장병의 오도된 가치관 교정’

교도소장 훈시문에 나올 법한 용어다. 그 밑에는 또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왜 여기서 싸워 이겨야하는가?」를 명확히 주입’

그러니까 이 말은 군 장병을 교정시킨 다음에 어떤 사상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사회라는 오염원으로부터 군인을 더 차단하고 격리시키고 검열함으로써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입대 장병은 언제나 통제되어야 하고 교정되어야 하며 개선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 국가는 마땅히 그럴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다.

2009년 육군의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도 이런 인식은 계속 연장되고 확산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신병 정신교육 강화 : 입대 전 ‘오도된 가치관 전환’ 집중 교육’

‘주입’이라는 말이 ‘전환’으로 완화된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맨 밑에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맺는다.

‘군 복무 시 「군인다운 군인」, 전역 후 「민주시민」 육성’

전역 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가치관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는 발상이다. 우리 청년들이 입대 전에 무엇이 그리 오염되었다는 것일까? 이 업무보고서들이 발간되던 2008~2009년의 상황을 보자. 국방부는 좌익 장병을 색출한다며 각종 사찰을 강화하였다. 금지되었던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도 재개되었다. 그러다가 간첩 같지도 않은 북한 출신 여성을 검거하면서 대군 공작을 했다는 황당한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온문서라고 지정된 도서의 병영 내 반입을 금지하였다. 이 조치를 헌법소원한 군 법무관들은 파면되었다. 국정교과서가 편향되었다며 교과서 개정에 개입하였다. 병영에 설치된 PC방 사용도 금지되거나 축소 운용했다.   

당연히 장병의 기본권과 인권에 대한 시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정부에서 추진하던 ‘군 인권강령’ 제정을 무효화하였고, 국방부 인권기능과 조직을 해체하거나 축소시켰다. 군 인권 정책은 군 장성들의 반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권이라는 말은 아예 금기시 되었다.

장병의 고충을 상담하는 전문상담관의 경우 민간 상담전문가들을 다 내쫓고, 그 자리를 예비역 간부들로 채웠다. 전문상담관이 장병의 기본권을 증진하는 정책이 아니라 제대군인 일자리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2년은 보수주의적 집단인 군이 자유주의적 공동체인 사회에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한 기간이다. 우려했던 대로 인권의 후퇴는 군 내 사망자 숫자의 증가로 연결되었고, 각종 공안사건으로 검거되거나 조사받는 장병의 숫자도 증가시켰다. 더 치명적인 결과는 군이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군이 불온문서를 지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대형서점은 즉각 이를 활용한 마케팅을 전개했다.

‘입대 전에 읽어보자. 국방부 불온문서’

이 마케팅은 대성공을 거뒀다. 활력이 넘치는 자유주의에 있어 군의 보수주의야 말로 조롱하기 딱 좋은 먹이거리였다. 군이 자체 규율을 강화하면서 본연의 임무만 잘 수행하겠다면 이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군은 이와 무관하게 사회의 일반적 기준과 배치되는 일을 계속 벌였다. 최근 나꼼수 앱을 금지한 것도 그렇다.

물론 이런 행위가 하루아침에 군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아직도 병영은  상식이 있고 합리성이 유지되는 기본 수준은 갖추고 있다. 대다수 청년들이 군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며 잘 견디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군의 편향된 사고와 행태는 다른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은 보수정권의 영향력, 즉 소프트파워를 심각하게 잠식했다는데 있다. 군대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정권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강화하게 되자 보수정권의 매력이 뚝 떨어졌다. 무언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특정한 사상을 강요하는 이미지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청년 세대로부터 외면당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여기에 군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게다가 군 자체의 소프트파워 역시 심각하게 잠식당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군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낮은 계층은 바로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되는 청년층이다. 현재 병영문화는 바로 그런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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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 한겨레 군사사이트 <디펜스21> 전문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