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까지 1주일 1만원 생생육아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긴 할 모양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큰 조카의 손을 꼭 붙들고서. 헌데 그 좋은 날 다 놔두고 하필 한파가 몰아치는 이 겨울이냐!

 실은 오빠가 영 못 갈 줄을 알았다. 햇볕 따뜻한 늦봄부터 유럽 한번 가겠다.’ 소리더니 여름, 가을에 들자 돈이 없어서.’‘시간이 안 돼서.’‘언어가 곤란해서.’ 흔한 불가의 사유들이 속속 등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빠의 해외여행 3불가론은 이성계의 요동정벌 4불가론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긴 했다. 그것은 너의 문제요, 나의 문제요, 숨 쉬는 우리 모두의 문제였으니.

 

 여행은 언니의 바람이었다. 언니는 바야흐로 어린이의 선을 막 넘어서려는 큰 아들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여 오빠에게 큰 조카와 둘이 갈 만한 곳을 물색해보라 명한다.

 오빠는 언니의 바람에 자기의 꿈까지 살포시 얹었다. 일찍이 보이즈, 비 앰비셔스.’라지 않았던가. 목적지는 멀수록 비행시간은 길수록 좋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할수록 두 글자가 돌처럼 심장을 지그시 누른다.

 ..

 “너무 비싸. 안 되겠어.”

 오빠의 목적지는 서유럽이었다.

 “동유럽을 가, 이 사람아.”

 “서유럽 쪽이 중학교 책에 많이 나온다네.”

 그래, 바야흐로 열 세 살이면 세상을 제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나이긴 하다. 제 발로 타박타박 밟은 거리며 나라라면 훨씬 기억에도 남겠지. 그렇다 쳐도 서유럽이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면 얼마나 나오기에 동유럽 차별을 펼치시는가.

 결국 오빠는 체념했다.

 계절이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오빠는 다시 유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서 말이 안 통하면 어쩌지?”

 “패키지로 가, 이 사람아.”

 “항공부터 숙박예약까지 스스로 다 해보고 싶어.”

 곧 죽어도 패키지는 여행 취급 않는 사람도 있으니 이해한다. 어쩌겠나, 말이 안 통해 곤란하면 못 가오.

 슬슬 찬바람이 분다만 오빠는 줄곧 유럽을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국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영국을 빼.”

 “한 번 가면 언제 또 가겠냐, 가는 김에 다 돌아야지.”

 “그러지 말고 가까운 동남아로 가, 이 사람아.”

 “교과서에 서유럽이.”

 나는 그의 말을 단호히 끊고 싶소. 내 중학교 교과서를 못 본 지 너무 오래 돼 기억도 안 나오만 동남아는 교과서에 안 나오는 게요?

 그렇게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신 오빠의 꿈은 사그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던 것이!

 예약을 하였단다. 1229, 오빠는 마침내 마카다미아는 제공되지 않는 이코노미석에 몸을 싣는다.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픈 아빠의 마음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본인의 마음까지 함께 꾸려서.

 보름의 휴가를 허하는 오빠네 회사가 경이롭다가, 그 긴 시간 없어도 무리 없을 만큼 내 오빠가 회사에 그다지 필요치 않은 인물이었나 한숨이 나다가, 찬바람 쌩쌩 부는 이 계절에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거리에서 헤맬 모습에 웃기다가, 어쨌든 떠난다니 이 동생 속이 다 후련하다.

 

 나 역시 아들의 손을 잡고 낯선 거리를 밟을 날을 기다린다. 미래의 내게도 몇 가지 불가한 이유가 응당 따라 붙을 터, 그 중 한 가지 문제만은 잽싸게 대비책을 마련했다.

 아들이 태어나고 삼칠일이 지난 후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은행이었다. 꿈을 담아 뽀로로 통장에 만 원을 넣었다. 언젠가 성장한 아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 제목을 함께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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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만 원, 때때로 한 주에 2번도 넣고 3번도 넣는다. 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가 아주 좋음에서 좋음’‘괜찮음’‘봐도 나쁘지는 않음정도로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이 문제긴 하다. 내 긴 세월 영화를 보긴 했소만 매주 한두 편씩 추천할 영화가 더는 떠오르지 않는다오.

 

 “, 그거 모아 언제 유럽 여행 가냐?”

 처음 만 원짜리 통장을 만들었을 때 오빠님은 비웃었던가!

 ‘비수기라 싸다.’며 정신승리 중인 오빠님아, 이 동생의 통장에는 3년이 채 안 돼 삼 백을 훌쩍 넘긴 숫자가 찍혔소. , 그 중 90만원은 정부에서 지원해준 15만원의 6개월 분이다만.

 

 나이 먹어 떠남이 전혀 설레지 않는다는 진심인지 폼 잡는 소린지 모를 말을 주억거린 오빠님아, 내 꽤 비아냥거렸다만 날씨 추운 게 대수겠소? 아들래미 손 꼭 잡고 즐겁고, 재밌게 교과서에 나오는 서유럽 탐방 모쪼록 잘 마치고 돌아오시오. 

 덧붙여, 내 꼭 갖고픈 선물은 없사오만, 주겠단 걸 굳이 마다할 만큼 무욕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만은 염두 해 주면 고맙겠소.

 글이니 할 수 있는 멋쩍은 마음도 전해보오. 먼저 태어나 주어, 나를 외동으로 남겨두지 않아 주어 고맙소.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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