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뜨는 산’ 오르니 온세상이 달님 품이네 걷고 싶은 숲길

대표적인 ‘달맞이산’ 영암 월출산
장군바위·남근바위 등 기암괴석 우뚝
산자락 마을들은 달님 전설에 흠뻑

00501379_20170928.JPG 월출산 바람재 위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황봉.

‘달맞이 산’을 찾아가는 여행지로 영암만 한 곳이 있을까. 전남 영암은 대표적인 ‘달 뜨는 산’, 월출산(月出山)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산치고 달이 뜨지 않는 산이 있을까마는, 선인들은 월출산의 ‘달 뜨는 경치’를 으뜸으로 쳐왔다. 영암(靈巖)이란 지명도 월출산의 영험한 바위에서 유래한다. 지난 주말 달을 품은 산, 달을 띄우는 산의 기운을 만나기 위해 월출산에 올랐다. 달이 기운 때여서 보름달은 못 봤어도,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며 자연이 주는 기운을 듬뿍 받고 돌아왔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 경계의 월출산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국립공원(1988년 지정)이다. 면적 56.2㎢에 불과하지만, 최고봉 천황봉(809m) 주변 능선의 기암괴석은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바위 봉우리들로 경관이 빼어나다. 설악산·주왕산과 함께 국내 ‘3대 바위산’으로 꼽힌다. 동식물 생태도 다양하고 문화유적도 즐비하다. 탐방객들이 사철 들뜬 마음으로 ‘달 뜨는 산’을 찾는 이유다.

이 아름다운 바위산은 예나 지금이나 온통 달 이야기로 넘쳐난다. 월출산은 천년 전에도 ‘달맞이 산’이었다. 통일신라 때 월내악(月奈岳)으로 불렀다. 고려 땐 월생산(月生山)으로 부르다 조선 들어서 월출산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다 달맞이와 연관된 이름이다. 영암 지명은 월출산 구정봉(711m) 밑의 신기한 동석(動石·움직이는 돌)에서 유래했다. 옛날 월출산에 세 개의 흔들바위(동석)가 있었고, 세 바위의 기운으로 이 지역에 큰 인물이 나온다는 얘기가 전해왔다.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세 바위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렸는데, 그중 구정봉에서 떨어졌던 바위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다시 제자리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다(<동국여지승람>).

월출산 정상. 삼국시대부터 제(소사)를 올려온 곳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 ‘월출산소사지’ 표석이 있다.
월출산 정상. 삼국시대부터 제(소사)를 올려온 곳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 ‘월출산소사지’ 표석이 있다.

‘달맞이 산’답게 월출산 자락엔 월곡리·송월리·월남리·월롱리·야월리 등 ‘달 월’ 자가 들어간 마을이 많다. 이 가운데 월롱리는 ‘시종 달 보는 마을’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2002년 정보화마을로 선정되면서 행정지명(영암군 시종면 월롱리)을 활용해 지은 이름이다. 이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이곳에 비친 달이 물결과 서로 희롱하는 듯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월롱리로 지었다고 한다. 달과 관련된 설화도 있다. 어수룩한 노총각과 월출산에 달이 뜰 때만 내려오는 ‘달각시’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전설이다. ‘달각시 노래’가 전해온다. ‘달각 달각 달각시님/ 달각 달각 뭇(무엇) 하시오/ 달각 달각 물 질러서(길어서)/ 달각 달각 밥 짓지요’

이제 월출산으로 올라 보자. 산행 들머리는 천황사 터, 도갑사, 경포대, 산성대 입구 네 곳에 있다. 이 가운데 경포대 기점은 강진군 쪽에 있고, 나머지는 영암군 쪽에 있다. 천황사 터 쪽의 월출산국립공원 사무소와 천황탐방지원센터, 도갑사 쪽의 도갑 분소, 그리고 경포대탐방지원센터 등에서 월출산 지도와 산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등산로를 택하든 정상에 올랐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데 4시간쯤 걸린다. 종주 구간인 천황사 터~천황봉~도갑사 노선(9.8㎞)은 6시간 남짓 걸린다. 천황사 터에서 정상에 오르지 않고 구름다리를 거쳐 바람폭포 쪽으로 내려오는 1시간40분짜리 짧은 산길도 있다.

월출산 바람재 위 전망대에서 장군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등산객.
월출산 바람재 위 전망대에서 장군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등산객.

이번 산행은 월출산 남동쪽 자락 경포대 계곡을 출발점으로 택했다. 바람재 쪽에서 바라보는 구정봉 ‘장군바위’(일명 큰바위얼굴)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경포대~바람재~천황봉~통천문~약수터~경포대’의 경포대지구 순환 코스(6.7㎞)다.

이곳 경포대(鏡布臺)는 강릉의 경포대(鏡浦臺)와 달리 ‘베 포(布)’ 자를 쓴다.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2㎞ 길이의 계곡이 마치 삼베를 길게 늘어놓은 듯 아름답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계곡을 흔히 ‘금릉 경포대’라 부르는데,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경포대 삼거리에서 왼쪽 산길로 든다. 바람재까지 완만하고 울창한 숲길과 가파른 바윗길이 차례로 이어진다. 바람재 능선(삼거리)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월출산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재 전망대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구정봉과 향로봉(744m) 쪽 바위능선이, 동북쪽으론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뾰족한 바위들이 첩첩이 늘어서서 산행객을 맞아준다.

월출산 구정봉 장군바위(일병 큰바위얼굴).
월출산 구정봉 장군바위(일병 큰바위얼굴).

장군바위(큰바위얼굴)는, 구정봉 바위절벽 전체에 드러난 거대한 얼굴 윤곽을 가리킨다. 이마부터 턱까지 100m가 넘는, 천황봉 쪽을 응시하는 근엄한 장군의 얼굴 모습이다. 사진을 찍어서 보면 더 잘 드러난다. 오전 11시께부터 정오 무렵까지, 그림자가 짙어져 얼굴 윤곽이 뚜렷해진다. 왼쪽엔 여성 얼굴을 닮은 바위도 보인다. ‘구정봉’은 꼭대기 바위에, 움푹 파인 아홉 개의 구덩이가 있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바람재에서 천황봉 정상까지는 40여분쯤 가파른 절벽과 바위 봉우리들을 싸고돌며 오르내려야 닿는다. 곳곳에 계단과 밧줄이 설치돼 있어 위험한 구간은 적다. 중간에 남근바위와 돼지바위 등 이채로운 바위들과, 산 밑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가을빛 들판이 발길을 자주 멈추게 만든다. 남근바위를 바라보던 60대 부부는 “아이고 잘생겼네. 엄청나네, 엄청나!”를 연발하며 웃음을 그칠 줄 모른다.

월출산 남근바위.
월출산 남근바위.
천황봉 꼭대기에 서면 사통팔달이다. 영암·강진 주변의 산줄기들과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론 활성산 능선의 풍력발전기 무리가, 서쪽으로는 굽이치는 영암호 물길 일부가 아득하게 눈에 잡힌다. 멀리 보이는 경관도 아름답지만, 눈 아래로 펼쳐지는 가파른 산자락과 바위 봉우리들 모습이 돋보인다. 사자봉 밑에 놓인 구름다리 모습도 보인다. ‘정상 표석’과 함께 ‘월출산소사지’ 표석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통일신라·고려 때는 나라 주관의 제사(소사)를 하늘에 올렸고, 조선시대엔 영암군수 주관으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월출산 천황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영암읍내.
월출산 천황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영암읍내.
통천문(천황봉으로 통하는 바위문)을 통과해 경포대 능선 삼거리와 산 중턱의 약수터를 거쳐 다시 경포대 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데는 1시간30분쯤 걸린다. 하산 길 생수통이 빌 무렵 만나게 되는 이 약수터의 물맛이 꿀맛이다. 전부터 있던 샘터를 보수했다고 한다. 약수터 위쪽 시누대밭은 오래된 폐사지(삼존암골 폐사지)다.

월출산 경포대능선삼거리 밑의 약수터. 위쪽엔 오래된 절터가 있다.
월출산 경포대능선삼거리 밑의 약수터. 위쪽엔 오래된 절터가 있다.

하산 길에 잠시 경포대 계곡으로 내려서서, 물가에 앉아 탁족을 할 만하다. 지금 수량이 적어 아쉽지만, 물은 차갑고 깨끗하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곳곳에 포진한 모습이 제법 장관을 이룬다. 경치 좋은 골짜기답게 선인들이 새긴 글씨도 여기저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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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