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추석빔을 사줄까? 말까? - 생생육아



2e3c83290ef432de0e447490892c3844. » 지난 설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는 수아와 아란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명절 때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집안일을 해야 할 걱정보다 아이처럼 들뜬 마음이 더 크다. 며느리로서, 차례를 지내고 명절 음식을 해야 하긴 하나 연휴가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거다. 또한 저렴하지만, 실속 있는 명절 선물과 추석빔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제는 퇴근 뒤 집 근처 백화점에 갔다. 그래도 추석인데, 아이들한테 모처럼 추석빔을 사줘야 할 것 같아서다. 양가 어른들을 찾아뵙는데, 평소처럼 후줄근한 옷을 입힐 수는 없지 않은가. 백화점 아동코너에는 역시나 나처럼 아이들 옷을 구입하려는 엄마들로 붐볐다. 아동코너 역시 모처럼 대목을 맞은 탓인지, 점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백화점 옷이 다른 대형마트나 시장보다 비싼 건 알지만, 내가 굳이 이곳으로 온 건 백화점 매대에서 하는 ‘기획할인’ 제품 가운데 괜찮은 것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가끔 명절을 앞두고 엄마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제품들이 기획할인이라는 명목으로 시중가의 절반 가격에 매대 상품으로 나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우리 동네 있는 이 백화점에는(지역적 특성상) 저렴하면서도 품질도 좋은 중저가 브랜드가 입점해 있기도 하다. 티셔츠는 1~2만원선, 바지와 치마는 2만원선, 자켓과 가디건류는 3만원 선이면 살 수 있는 브랜드여서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이곳에서 주로 구입해서 입혔다. 난 자칭 이 집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이런? ‘기획할인’ 매대로 나온 브랜드들은 모두 이름도 듣도보도 못한 것들인데다, 몇년은 재고품으로 쌓였던 제품인 듯하다. 색도 칙칙하고, 여기저기 구겨져 있고... 더구나 내가 주로 구입했던 중저가 브랜드 매장이 아예 없어졌다. 그 대신 값비싼 R브랜드 제품이 입점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백화점 아동의류 브랜드가 점점 고급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실제 이 백화점뿐 아니라 다른 백화점들도 중저가 브랜드의 제품은 대거 대형마트 등으로 밀려나고, 값비싼 블**, 폴*, 닥*, 버** 등의 브랜드가 속속 입점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엄마들이 그만큼 이런 값비싼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일 거다. 이날도 보니, 이런 값비싼 브랜드에 유독 손님이 많았다. 이런 브랜드의 옷은 대개 5~10만원 정도의 가격을 줘야만 바지나 티셔츠를 살 수 있다. 자켓류는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물론 보기부터가 고급스럽고, 뽀대 나는 옷들이다. 아이들한테 이런 옷을 입히면, 얼마나 예쁠까? 뭐 1년에 한두번 큰맘 먹고 사주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나에게 이 브랜드의 옷을 사주는 건 너무 큰 부담이다. “어른 옷도 아니고, 천조각도 조금밖에 안들어 갈텐데 뭐가 이리 비싸~.”



 결국 푸념만 하고, 아이들 옷은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예전에 입혔던 집에 있는 옷들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혀야겠다. 지난 설에 사두었던 한복을 아이들한테 입히는 것으로 만족하자. 



나도 한때는 아이들한테 비싼 옷을 사준 적이 있었다. 특히 큰애한테는 백화점 브랜드 옷들이 더러 있다. 기왕이면 예쁘고, 고급스럽고, 입혔을 때 내 스스로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옷들을 비싼 옷을 입혀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아이니까. 그런데, 둘째를 낳고나서부터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옷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했다. 아이는 비싼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도 못할 뿐더러, 오히려 아이한테 옷을 더럽게 입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니 아이는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불편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문득 엄마인 나의 자기 과시 혹은 만족을 위해 ‘고가’의 옷을 자녀한테 입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치나 허영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싼 옷을 아이한테 사주면 어떤가. 아이한테 깨끗하게 옷 입어라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옷이 상할까봐 아까워서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갈 때 함부로 막 입히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면 외출할 때만, 그것도 특별한 날에만 입힐 수밖에 없어 몇번 입지도 못하고 옷이 작아져서 입히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결국 아이와 엄마한테 모두 불편함을 줄 뿐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못했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난 2년 여 전부터는 아이들한테 아예 백화점 브랜드 옷은 사주지 않고 있다. 대신 인터넷쇼핑몰(지**, 옥션*)에서 저렴한 옷을 사서 입히거나, 요즘에는 중고카페를 이용해서 아이들한테 옷을 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1만원이면 여러벌도 살 수 있다. 가끔 브랜드 옷이 필요할 때는, 백화점의 인터넷쇼핑몰이나 할인마트를 이용하는데 거기에는 이월상품을 시중가의 70~80%까지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아이들한테 저렴한 옷을 사주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한테 옷 깨끗하게 입어라 잔소리 안하게 되고, 잘 지워지지 않는 음식물 얼룩이나 매직 같은 것이 묻어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 옷을 아무때나 막 입히니, 아이들도 편한 마음으로 옷을 입고 신나게 야외에서 뛰어놀 수 있게 됐다. 외출할 때는 비싼 옷은 아니지만, 깨끗하게 빤 옷을 입히니 못봐줄 정도는 아니다. 



나를 비롯한 요즘 엄마들이 자녀들에 돈을 너무 허투루 쓰는 것 같다. 옷이며, 신발이며, 유아용품이며, 심지어 책이나 교구 비용까지. 그런데 이렇게 값비싼 물건을 들이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엄마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 같다.  남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는 예쁘고 잘난 우리 아들과 딸을 과시하고 싶어서. 



차라리 그런 돈으로 아이한테 더 좋은 음식을 해주거나,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아이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얼마 전부터 두 아이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 틈틈이 저축을 하고 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두 딸이 우리 집에서 가장 부자다. 통장 잔고도 어느새 백만원대 이상으로 불렀다. 스무살쯤 되었을 때 아이한테 주면, 얼추 대학 등록금 정도는 될 것 같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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