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잠자리, 예술가의 아지트 길따라 삶따라

잊혀져가는 숙박업소 여인숙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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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숙박업종 ‘여인숙(旅人宿)’이다. 나직이 불러보면, 좁고 어두운 골목을 따라 아련하고 스산한 추억이, 따스한 온기와 축축한 냉기, 숨막히는 두근거림과 쓸쓸함을 버무려 이끌고 스멀스멀 기어나올 듯한 이름이다. 적어도 40대 이상, 특히 남성, 그러니까 ‘인숙이네’가 저렴한 서민들 숙소로 나름대로 ‘인기’를 누리던 시기를 거친 이들에게 여인숙은 저마다 사연 한 자락쯤은 간직된 기억의 창고다.

여인숙 취재에 나서면서 주변 40대 이상 남성들에게 ‘여인숙의 기억’을 물었다. ‘값싸고 정감 있는 숙소’, ‘따뜻하고 조용한 온돌방’ 등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었고, ‘비좁고 지저분한 곳’, ‘위험·살벌한 곳’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애틋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는가 하면, ‘젊은 날의 흥분과 허탈감이 공존하는 곳’(총각딱지를 뗀 곳!)으로도 기억했다.

이렇듯 적잖은 이들에게 추억의 한 갈피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숙은, ‘오늘 밤’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있을까? 여인숙의 대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춘천 근화동 삼화여인숙 객실.
춘천 근화동 삼화여인숙 객실.
빼곡한 간판들로만 보자면, 여전히 여인숙은 건재하다. 전국 주요 도시 역 주변과 옛도심(원도심) 골목마다 단순·소박하고 낡고 삐딱한 간판을 내건 여인숙들이 무수히 영업 중이다. “정확한 수는 몰라요. 숙박업이 신고제 업종에서 자유업종으로 바뀌면서죠.” 대한숙박업중앙회 윤태형 사무총장 대행은 “여인숙을 포함한 일반숙박업소는 대략 3만2천여 곳으로 추산된다”면서도 “여인숙의 경우 통계 자료가 없다”고 했다. 무허가가 많고 업종 변경이 심한데다 수시로 철거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요 도시마다 몇십 곳씩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전국의 여인숙은 몇천 곳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인숙 대부분은 낡고 좁은 골목의 단층 건물에 음습한 분위기의 쪽방촌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가난한 홀몸노인의 마지막 안식처, 날삯노동자의 장기 투숙지, 성매매 업소…. 가장 저렴하지만 가장 선호하지 않는 여행자용 숙소가 여인숙의 현주소다. 윤씨가 여인숙의 현재 상황을 요약해서 말했다. “사양화의 끝자락에 접어든 숙박업종이지요. 추억을 먹고 사는 분들이나, 작가·사진가·화가 등 예술가들에게나 간혹 관심거리가 되는….”

추억 먹고 사는 이들이나 예술가들의 관심은 여인숙의 변신을 이끌기도 한다. 낡은 여인숙 건물을 임대해, 예술인들의 작업장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여인숙의 진화다. 일부 여인숙은 새단장을 통해 젊은 예술가와 여행자들의 인기 방문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시인·작가가 아니더라도, 추억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여인숙의 문을 두드려봐도 좋겠다. 좁고 낡은 골목길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손바닥만한 여인숙 간판들도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한낮에 잠겨 있는 여인숙 객실은 ‘달방’(월단위 장기계약)을 쓰는 장기투숙자의 방이다.
한낮에 잠겨 있는 여인숙 객실은 ‘달방’(월단위 장기계약)을 쓰는 장기투숙자의 방이다.

군산시 동국사 들머리의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군산시 동국사 들머리의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해남군 금강여인숙의 객실.
해남군 금강여인숙의 객실.

수원 행궁동 금보여인숙. 담장에 커다란 ‘황금 물고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 작품이다.
수원 행궁동 금보여인숙. 담장에 커다란 ‘황금 물고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 작품이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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