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뽀뇨육아일기

친가가 창원, 외가가 전주, 태어난 곳이 제주인 뽀뇨. 

돌은 다가오는데 '돌잔치,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결혼하고 효도하는 셈치고 거금을 들여 환갑을 맞이하신 어머니와 장모님을 함께 동반 여행을 보내드렸는데 여행지에서 엄청 싸우고 돌아오신 것이다. 여행 이후 사돈에게 섭섭한 감정을 격앙된 말로 표현하시는 두 어머니를 보며 절대로 두분을 한 자리에 모시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니 뽀뇨 돌잔치는 창원과 전주에서 (보기 싫은 사돈 얼굴 없는데서) 각각 하기로 낙점. 


그런데 왜 제주에서 돌잔치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아니 돌잔치에 딱히 부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같다. 창원에서 가족들과 식사, 전주에서 가족친지들과 식사 한번씩으로 모든 것은 끝나는 수순이었다.


토, 일을 이용한 주말 1000Km짜리 여행. '제주-창원-전주 찍고 제주'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하고 돌아왔는데 제주에서 새로이 알게 된 두 분이 "뽀뇨, 제주 돌잔치는 안해?"라고 물어보신다. '안하려고 했는데' 라고 대답하려니 아닌 듯 싶고 하려고 하니 '어디'에서 해야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돌잔치 안하냐고 물어보신 분 중 한 분이 "간드락 소극장에서 한번 해보는 건 어때?"라고 다시 물으신다.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간드락 소극장 오순희 대표님이었다 .


달리도서관처럼 지역의 문화 아지터 같은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대표님이 먼저 제안하시니 당연히 오케이할 수 밖에... 결혼식도 '신랑신부가 하객을 함께 맞이하고, 주례가 없으며, 모든 역할을 지인과 친구가 도맡아 진행(관련 내용 보기)'하여 한겨레신문에 소개된 바가 있어서 아빠표 돌잔치가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좋은 장소가 생겼으니 이제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까를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는 처음부터 제주 돌잔치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사람 많은데 가기 싫어하고 낮가리는 아내는 이것 저것 준비할 것 많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인사해야 하는 돌잔치가 부담스러운지 "하고 싶은 사람이 다 준비해라, 난 당일 참석만 하겠다"고 선포하였다. 그것도 엄청 당당하게. 


아내의 말을 듣긴 했지만 설마 진짜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짤때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을 제외하고 하객들 초청하기. 음식 준비하기까지....아내는 자신의 지인들 조차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막판에 돌잔치 영상은 본인이 하겠다고 했다. 엄마의 마지막 모성애라 해야할까?


그러면서 

"아참, 자기 요즘 대금 배우니까, 돌잔치때 대금 불면 되겠다"

"그럼 당신은?"

"나는 정 할 것 없으면 뽀로로 노래 부르지뭐"

 

이렇게 아빠의 대금공연과 엄마의 뽀로로 독창이 단 1분만에 프로그램으로 확정되었다. 영상도 보고, 여러 공연도 하면 좋기는 한데 "돌잔치에 온 손님들을 각자 소개해보는 건 어떨까?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와서 밥만 먹고 가는게 보통인데.. 그리고 우리 돌잡이는 하지 맙시다." 역시 날카로운 아내의 기획이 이어졌다. 


'그래, 돌잡이는 판사되고, 의사되고, 돈많이 벌고 부모 좋으라는 프로그램이니 부모도 즐겁고 손님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만의 돌잔치를 만들어 보자' 결심이 섰다. 


 마지막은 잔치의 꽃인 음식인데 어떻게 준비할까? 뷔페음식을 부르는 것보다 참석자들이 음식을 싸와서 나눠먹다 보면 서로에 대해 알게되고 손님들 소개하는 것도 자연스럽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이제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만 남았네. 


제주에 이주해서 가장 먼저 만난 대학 선배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배님, 뽀뇨 돌잔치를 할건데요. 시간 괜찮으시면 축하하러 와주세요."

"어, 당연하지"

"이번 돌잔치를 색다르게 해볼려고 하는데요. 오실때 손님들이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져오세요"

"그래? 뭐를 사가야 하나?" 


대학교수이자 기러기 아빠로 계신 선배님에겐 굉장히 어려운 요청이었을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우선 끊고 '알아서 가져오세요'가 아니라 '어떤 것을 준비해주세요'로 참석자들 전화멘트를 바꿔보았다. 1만원에서 2만원 사이의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정리한 후 개개인에게 한가지를 콕 집어주고 그게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꼭 와야한다고 알려줬다.


드그리고 당일날. 아침부터 비가 와서 앞마당에서 프로그램 진행하는 건 철수하고 극장안에서 밥도 먹고 프로그램도 진행하기로 결정. 오후에 일찍 들렀더니 극장 식구들이 아이 돌잔치라고 풍선을 붙이고 난리가 났다. 엄마 아빠는 장소를 어떻게 꾸밀건가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타고난 기획자(^^;)인 대표님이 특별히 신경을 쓰셨다.


돌잔치를 한시간 앞두고 멀리 올레 1코스 시흥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시는 도로시 김혜정 사장님이 선물을 주기 위해 제주시까지 급하게 택시를 타고 오셨다. 밥도 못먹고 이쁜 뽀뇨 옷 선물만 주고 가신다. 대학 선배님은 돌잔치 케이크를 가져오셨다. 올레 17코스 개장식에서 만났고 제주로 이주하신 한 아주머니는 떡볶이 만원 어치만 사서오라 했는데 본인이 직접 만들어 오셨다. 

뽀뇨 제주 돌잔치 개최 여부를 물어본 '피자굽는 돌하루방 장창언 형님'은 즉석 스파게티 요리를 해주셨다. 


한 명이 하나의 음식을 싸오다 보니 음료수, 와인, 막걸리, 맥주에서 부터 김밥(시장, 직접), 빙떡, 피자, 치킨(살롱드 뽈레, 수일통닭, 시장통닭), 떡볶이, 쿠키, 떡(시장, 직접), 족발 등 음식, 망고, 수박, 딸기, 한라봉, 참외, 감귤, 방울토마토 등 과일... 너무 많아 헤아리지 못하고 나중엔 놓을 곳조차 없었다. 장모님이 돌잔치를 도와주시려고 제주에 오셨는데 모든 음식을 참석자가 가져오다보니 본인이 하실게 없다며 잔치 당일 전라도 김치로 솜씨를 뽐내셨다. 


오는 분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뽀뇨와 사진도 찍고 하다보니 맛있는 음식에 손도 못대고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본 프로그램이 시간이 되었다. 작년부터 같이 행사도 준비했던 김샘이 플릇을 연주해주기로 되어 있어서 별 걱정이 없는데 문제는 프로젝트에서 발생. 아무리 해도 프로젝트가 안되다 보니 땀이 뻘뻘나고 속이 탄다. 손님들도 많이 기다리고 하다보니 김샘의 플릇공연과 나의 기타공연(정말 대금은 안 꺼내려고 했다), 아내의 뽀로로 독창이 끝났음에도 시간이 남았다. 


결국 대금을 꺼내든 것이 아.뿔.싸!  두 달이 넘게 매주 대금수업을 들었고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아리랑 연주는 기본이었는데 무대 앞에 서니 소리가 나질 않는다. 처음엔 튜닝이라고 생각하던 손님들이 10분이 넘어가니 웅성웅성대기 시작했고 나는 팥죽 같은 땀을 뻘뻘 흘렸다.ㅠㅠ 더이상 기억하기 싫은 악몽의 5분이 흐르고 아리랑 한곡을 개미 소리만큼 내고 끝냈다.


아빠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프로젝트가 뒷심을 발휘하여 5분도 안되는 축하영상을 마지막으로 쏴주었다.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손님 소개시간. 객석에 앉아있는 거의 모든 사람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소개하고 보니 나중에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참 수월했다


오후 3시, 아니 몇 일전부터 준비한 돌잔치가 뽀뇨 돌잔치 축하 떡케익에 모여든 아이들의 노래소리로 끝이났다. 손님들이 돌아가며 "굉장히 재밌고 독특한 돌잔치였다. 근데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건넨다. 


그냥 웃고 말았는데 사실 힘든건 하나도 없었다. 어떤 것을 할 것인가, 어떤 음식을 누가 가져오게 할 것인가, 그리고 당일 준비하는게 전부 였다. 사람들은 본인의 역할이 돌잔치의 거의 전부였다는 점을 몰랐나보다. 


나중에 잔치 끝나고 장모님께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대금 불지 말라"고 충고를 듣긴는 했지만 창피스러움까지도 모두 즐거웠다. '색다름을 지향하는 아빠표 돌잔치'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창원에 계신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돈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돌잔치라며 아들이 남들처럼 호텔 뷔페에서 돌잔치를 하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쉽게 생각하셨다. 그러나 아빠의 정성과 인맥 그리고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온리 아빠표 돌잔치'는 뽀뇨와 우리 가족의 제주 정착에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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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즈만큼 이라도 소리가 나왔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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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뇨가 생일인지 아는지 환한 미소를 날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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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뷔페보다 많은 음식이 차려진 소극장 로비. 이날 백명이 넘는 손님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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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전업주부가 꿈이었다 현실이 된 행운남,엄마들의 육아에 도전장을 낸 차제남,제주 이주 3년차…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프렌디. pponyopa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