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나 딸이나, 흥! 생생육아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나는 하얀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앙앙 울고 있다. 주변에는 모두 하얀 옷을 입은 꼬맹이들이다. 곧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내 울음 소리를 잡아먹는다. 하얀 드레스도 환자복도 아니다. 태권도복이다. 대여섯살밖에 안된 여자아이 손을 잡고 태권도장을 찾은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맏아들이 딸만 셋을 줄줄이 낳자 상심하셨던 할아버지는 그 중 둘째, 나를 아들답게 키워보려 애를 쓰셨다.

 

IMG_1789.JPG » 우리 세자매의 어릴 적 모습. 그렇다. 맨 왼쪽 혼자 바지를 입고 겅중겅중 뛰는 머스마같은 아이가 나다.


 “생긴 것도 행동하는 것도 아들인데 고추만 안달고 태어난” 나는, 그러나 태권도장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려 할아버지를 실망시켰다. 난처해진 관장님은 작은 의자 하나를 꺼내와 나를 앉혔다. 태권도장을 다닌 한달 내내 나는 그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나의 태권도 인생은 그렇게 흰띠에서 끝이났다.


 태권도는 어찌 피해갔지만 딸내미로 살면서 울음으로도 회피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밑으로 줄줄이 시동생, 시누이들을 돌보고 병든 시아버지 수발까지 해야했던 엄마는 그러나 그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댁 식구들 눈치를 봐야했다. 그런 엄마를 보기가 안쓰러워서 우리 세자매는 명절이나 제사때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집안일을 도왔다. 그런 우리를 보며 친척들은 "이 집은 딸이 많이 일손이 넉넉하다"고 좋아하면서도 돌아서며 "그러게 아들 하나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말로 깊은 상처를 주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명절증후군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친숙했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이던가, 난 모든 ’딸래미의 숙명’과 그만 안녕을 고하고 싶어졌다. 엄마에게 미안해도 더이상 제사 따위 돕고싶지 않았다. 밀가루와 기름기가 범벅이 된 후즐근한 옷을 입고 여자들이 부엌에서 죽어라 음식을 만들어내면 텔레비전이나 보던 남자들이 양복을 차려입고 헛기침을 해대며 자기들끼리만 절을 하는, 그런 의식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가부장제 사회가 바라는대로 살아주기가 싫어졌다. 결혼, 출산도 그 중 하나였다.

 

IMG_1784.JPG » 어린 시절 내 독사진에는 유독 나무 위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이 많다. 올라간 걸까 올려놓은 걸까?
 

 

  "아기가 아빠를 닮았네요."

 

 임신 후반기, 산부인과 의사가 넌지시 내게 이 말을 건넨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 아들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우리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아들이다. 그 아들을,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내가 덜컥 가졌다. 옆에서 "나는 딸이 좋다"며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아들이 좋아. 아이를 하나 낳는다면 아들을 한번 낳아보고 싶었어."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아들이래." "그래? 아이고, 잘됐네. 축하한다! 어떻게 아들도 그렇게 덜컥 갖고, 신기하네." 엄마의 축하에 오랫동안 마음 밑바닥에 감춰두었던 슬픔과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엄마가 "사람들이 딸부잣집 딸들은 아들 갖기 힘들다던데 우리 애들은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며 다시 한번 기뻐할 때는 그동안 엄마가 딸들마저 딸만 낳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느껴져 더 슬펐다. 

 시부모님께도 전화를 했다. "제사를 물려받지 않겠다"는 불효자 맏아들과 결혼 5년이 지나도 아이를 갖지 않는 맏며느리를 묵묵히 지켜봐주신 분들이다. 시아버님은 아들이라는 말에 딱 한마디를 하셨다. "고맙다." 시댁의 경우 워낙 아들부잣집이라 오히려 딸이 귀하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맏이인 너희가 낳는 아들은 다르다"고.

 얼마 뒤 할아버지 제삿날에 만난 한 친척은 내가 아들을 가졌다는 말에 또다시 우리 친정 엄마를 향해 망언을 했다. "아이고 외손주긴 해도 아들을 낳아서 소원성취하겠구나. 너는 이 아들을 하나 못낳아서 얼마나 억울하냐." 아아, 나는 나이가 들어도 주책이 사그라들지 않는 그 친척어른을 향해 "그러는 당신은 아들 덕 보고 사느냐"고 따져 물으려고 하다가 그만 참고말았다.

 가부장제 사회가 원하는대로 살아주지 않겠다던 스무살 여자아이는 이제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고 맏며느리가 됐고 아이까지 가졌다. 그것도 아들을 가져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말았다. 이제는 오히려 딸이 대세라는 시대, 나는 아들을 키우며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 아무쪼록 우리의 아들은 ‘달랐으면’ 좋겠다. 집안의 장남이라는 멍에도 벗어던지고 가문을 잇는다는 알쏭달쏭한 책임감도 내려놓은채 자유롭고 평화롭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나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딸래미로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다. 이 아이를 낳아 키우며 마침내는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아들이나 딸이나!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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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노키드 부부’로 살아가려던 가련한 영혼들이 갑자기 아기를 갖게되면서 겪게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나누고자 한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