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고객, 스튜디오 촬영기 생생육아

일찍이 수지 사진을 들고선 똑같이 해주세요.”하며 대단한 성과물을 기대했다가 크게 낙담하는 이들을 어여삐 여겼다. 미장원에서는 심심찮게 그런 광경도 만나게 되는데. 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은 일음을 퍽도 잘 알 수가 있다만 당사자 생각은 또 다른 모양이다.

 나는 제 3자에게 비웃음을 사는 일만은 면하고자 미장원에 타인의 사진을 들고 가는 일을 삼간다. 물론 원하는 머리 모양을 말로 설명하기 여의치 않아 사진이 있었더라면 싶은 적도 있지만 괜히 주제도 모르는 아줌마 취급을 받느니 불만족스런 결과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싶었다.

 

 헌데!

 내 주제는 내가 파악하겠소, 하던 내가 주제도 파악 못하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우사당해 마땅한 일을 벌이고 말았으니.

 때는 20135. 아기의 돌이 지난 지도 4개월이 다 돼 가는 시점이었다. 웨딩 촬영, 만삭 화보, 50, 100일 기념사진 등, 모든 것을 건너뛰며 기념사진의 유익함이란 당최 무엇인가! 퍽도 실용주의 노선을 타던 차, 문득 돌 사진만큼은 찍는 게 좋지 않은가 하는 비실용주의적 생각이 틈틈이 마음에 차올랐다.

 

 그래, 돌잔치도 안 했는데 돌 사진쯤은 찍는 게 좋겠군.

 마침 동네에 아기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스튜디오가 두 군데나 있어 차례로 방문을 했다. 가격은 꽤나 차이가 났다. 처음 들른 곳은 기본 선택 사양만으로도 오십 만원을 훌쩍 넘겼다. 일단 몇 십장짜리 앨범이 필수인 모양이었다.

 단출한 사진 몇 장을 찍고 싶었던 것뿐이다. 아기의 대형 사진을 뽑아본들 장차 집 안 인테리어를 망치는 주범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거늘.

 다른 곳을 찾았더니 25만원 선이었다. 넷북 액정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사진 하나와 절반만한 크기의 사진 두 장이 액자로 나오고 원본 사진은 모두 CD에 담아주겠단다.

 단 조건이 있다. 육아 카페 여섯 곳 이상에 사진을 올리고 후기를 남길 것. 그때껏 밑도 끝도 없이 제 새끼 돌 사진을 육아 카페에 올리는 사람을 의아히 여겼더니 이런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st3.jpg  

 

 기꺼이 조건을 수락해 촬영에 돌입했다. 아기는 포즈고 뭐고 제 내키는대로고 에미 애비는 웃으라기에 기계적으로 웃으며 어색한 촬영을 마쳤다.

 촬영 후 사진 원본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주며 현상할 세 장을 고르라고 했다. 두 장은 아기의 단독 컷, 한 장은 가족 단체 컷.

 나와 남편은 아기의 사랑스럽고 멋진 모습에 환호작약했다. , 이것도 예쁘고 이것도 예쁘구만, 요것도 잘 나왔고 요것도 잘 나왔구만. 고슴도치 부모는 끊임없이 제 새끼 함함하다며 선택을 힘겨워했다. 마침내 두 장을 선택.

 문제는 가족 단체 컷이었다. 봐도 봐도, 또 봐도 또 봐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일단 선택을 미루고 집으로 돌아와 그 밤 곧장 후기부터 쓰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후기라는 것이 칭찬 위주가 돼야 하는 법. 실제로 스튜디오는 깔끔하고 예뻤고 사진사 분이나 보조요원들도 나무랄 데 없이 친절하고 상냥해 만족스러웠다. 허나 100퍼센트 좋은 점만 나열하다 보면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지고 미심쩍지 않겠는가!

 딴에는 생각을 하여 20퍼센트의 단점으로 운을 뗀 후 80퍼센트의 칭찬을 퍼부었다. 단점에 가족사진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여 아주 살짝 아쉽다는 내용이 있었다내 후기를 보던 남편이 쯧쯧 혀를 찬다.

 “좋은 점만 써야지, 그런 걸 왜 쓰나?”

 “뭘 모르시는구만. 요렇게 적절히 섞어 써야 사람들이 더 믿는다고.”

 허나 내가 틀렸고 남편이 옳았다.

사진을 찍었던 사랑을 그리다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왔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는지 몰랐다. 정 아쉬우시면 가족사진을 다시 찍어 드리겠다.

 -아니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진심을 읊었지만 예약이 안 된 시간이 있다며 그때 오면 다시 찍어드리겠단다.

 아, 그렇게까지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어느새 스튜디오로 향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세 가족은 다시 스튜디오에서 재촬영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자, 드디어 2번째 촬영의 결과물이 나왔다. 슬라이드 쇼를 보던 내 인상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유레카!

 그랬다! 가족사진이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오직 내가! 부자연스러웠다. 남편과 아들래미는 몹시도 평온하게 자연스런 표정을 짓고 있거늘 오직 나만이 입 꼬리 한 쪽을 파르르 떨며 기계적 미소를 짓고 있었던 거다. 어떻게 하면 좀더 낫게, 좀더 자연스럽게 찍힐까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최종 선택한 가족사진 1장은 재 촬영날 찍은 것이 아니라 첫날 찍은 것이었다.

 스튜디오 관계자 분들, 부끄럽소, 진심 죄송했다오.

 

 참말 이것이야말로 수지 사진 들고선 수지 머리 해 달라 주문을 넣었다가 머리는 수지거늘 얼굴이 수지 아닌 관계로 전혀 닮아 보이지 않는단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낙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그렇소. 모든 것은 본인 탓. 머리가 안 예쁘게 나오는 것도 사진이 이상하게 찍힌 것도 다 본인 탓이었다오.

 혹여라도 저를 기억하시거들랑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재 촬영까지 하게 만들었던 이 진상 고객을 부디 어여삐 여겨 잊어주시오. 

 

아기의 사진은 지금도 책상 위에 책장 위에 예쁘게 놓여있습니다요 :D

TA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