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샴 쌍둥이? 생생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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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정말 힘들었다.

더위도 더위였지만 여덟살, 네살 두 아이 돌보며, 품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 지내는 일이란

정말이지 고행처럼 힘겨웠다. 간신히 지난주부터 개학을 해서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아이는 하루 반나절을

떨어져 지내지만, 네 살 딸아이와 7개월 셋째는 여전히 내가 돌본다. 그런데 막내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순간 내가 저를 안나주거나, 곁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깨어 있을 때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아이를 울리지 않고 어떻게 키우냐고, 너무 안아주지 말라고, 버릇된다고, 손탄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말들이 참 싫었다.

아이가 엄마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고, 엄마가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가지고 버릇이 된다느니, 처음부터 길을 들여야 한다느니 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안아주지 말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아기는 버릇을 들여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없는 애정과 관심을 받고 엄마의 손길을 느껴야 하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아이부터 열심히 안아서 키웠다.

아이가 울면 무조건 안았고, 팔 벌려 저를 안으라고 할 때면 외면하지 않았다. 다른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우선적으로 아이부터 안았다. 안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나 안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살림은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안고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 때도 많았고, 안고 음식을 만들거나 상을 차려야 하는

경우도 흔했다.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제 때 마무리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평범한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게 더 힘든 것은 이런 것보다도 우는 아이를 안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한살 어리지만 먼저 시집와서 두 아이를 낳은 동서는 어린 조카가 발 밑으로 기어와서

안아달라고 대성통곡을 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도 ‘그래, 그래’ 하면서

주방에서 하던 일을 다 마칠 때까지 눈 하나 깜짝 안했다. 지켜보는 내가 안스러워서

‘애 먼저 안아주고 하지 그래’ 하면 ‘형님, 그래가지고는 아무일도 못해요. 애는 좀 울어도 돼요’ 했다.

확실히 동서는 친정이나 시댁과 멀리 살아서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도 혼자서 척척

살림하고 김치도 담그고 할 일을 다 했다. 애가 운다고 바로 달려가서 안고보는 나는

밥도 제때 먹지 못하는 걸 보면 동서가 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우는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며 하던 일을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강심장의 소유자가 못된다. 그러니 늘 아이를 안고 살림은 엉망진창인 채로 힘드네 힘드네 하며 산다.



첫 아이 때는 나이도 젊었고 체력도 좋았던 시절이라 주구장창 안아서 키우면서도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는지 몰랐고, 둘째 아이는 너무나 순해서 이 무렵엔 젖 먹여 보행기에 앉혀 놓으면

방글방글 웃으며 저 혼자서도 잘 놀았다. 그래서 셋째도 딸이니까 언니와 같으려니 했다.

그런데 마흔 넘어 낳은 셋째는 그야말로 나를 꼼짝 못하게 한다.

성격이 예민하지도, 몸이 약한 것도 아니지만 단 하나 늘 엄마 품이나 엄마 곁에만 있으려고 한다.

아기 의자에 앉혀 놓아도 곧바로 버둥거리며 내려달라고 아우성이고, 보행기에 태워놓으려고 하면

벌써 눈치채고 울음부터 터뜨리니 바로 안아 올리게 된다. 바닥에 엎드려 놓으면 그 자세로

울어버리고, 앉힐 때에는 아직 저 혼자 완전히 앉지 못하니 내가 꼭 붙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막내가 깨어 있을 때는 모든 살림도 올 스톱이다.



간신히 세탁기로 산더미 같은 빨래 돌려 놓고도 매달리는 아이 안고 다니느라 널지도 못한 채

한나절이 지나기도 하고, 마른 빨래를 걷어 놓고도 남편이 올 때까지 개키지 못할 때도 있다.

요행히 밥 먹을 때 잠이 들면 엉덩이 붙이고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대개는 깨어 있기 마련이어서

밥상으로 달려들려고 버둥거리는 아이를 한 팔로 안고 동동거려가며 입으로 음식을 쓸어담듯

먹어야 한다. 그나마도 지루하다고 아우성이면 밥 먹다가 안고 돌아다녀야 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이라도 볼라치면 싫어하는 아이를 보행기에 태워서 욕실 문 앞에 데려다 놓고

변기에 앉은 자세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가며 아이를 달래야 하니 이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맘대로 충족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음식하는 일이다. 배고픈 것을 제일 못참아 하는 먹성 좋은

두 아이와 함께 있다보니 왼 팔로 막내를 감싸안고 싱크대 손잡이에 걸쳐 놓은 다리 위에 앉힌 자세로

한 팔로 계란도 부치고, 야채고 볶는 경지에 이르렀다. 당연히 반찬은 최소한의 손길이 닿는 것들로

한정이 되고 그나마도 여유가 없으면 김가루 뿌려놓고 오며 가며 한 술씩 떠 넣어가며 여름을 지냈다.

그래도 엄마만 안으면 좋아라 웃어대니 힘들어도 안고, 어려워도 안아가며 지내고 있다.

몇 번은 도저히 팔이 아파서 포대기를 썼는데, 아이도 나도 너무 더워서 땀을 주체할 수 없어

포기했다. 찬바람이나 나야 가능할 것 같다. 가끔 유모차에 태워서 동네라도 돌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나가면, 이룸이는 금새 유모차 안에서 발버둥치며 울었다. 8킬로 넘는 아이를 한 팔로 안고

다른 팔로 유모차를 밀다보면 산책이고 뭐고 너무 힘들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힘들겠다고 위로하는 동네 엄마들에게

‘우리, 샴쌍둥이잖아. 이룸이는 엄마 떨어지면 죽나봐’ 우스개 소리를 한다.

정말 썀쌍둥이처럼 붙어 지낸다. 눈 뜨면 안고 하루를 시작하고, 재울때도 품에 안고 젖 물려 재우고

잠 자면서도 수시로 내 품을 찾아 젖을 빨아댄다. 젖을 찾지 않을 때에는 발이라도 내게 턱 올려 놓고

자는 막내다보니 정말로 샴쌍둥이가 맞다. 언제나 몸의 일부분이 엄마에게 닿아 있어야

안심하고 좋아하는 딸이다.



이런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룸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엄마를 원하는 아이일 뿐이다.

왜 그럴까, 무엇이 부족한걸까 하는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원하는대로 최선을 다해

안아주려고 애쓸 뿐이다. 지금 이룸이에게 가장 필요한게 엄마 품이라면 달리 어쩌겠는가.

힘들어도 또 안고, 어려워서 동동거려도 다시 팔을 내미는 수밖에...

충분히 충분히 채워지면 스르르 떨어져나가는 날도 오겠지.

두 아이도 그랬다. 나 아니면 안될 것 같더니만 그 시절도 지나가더라. 늘 내 곁에서 꼭 붙어 자던

둘째도 올 여름부터는  아빠 곁에서 자는 날이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4년이 걸렸지만

둘째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나는 지금 이룸이에게 생애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너무 소중해서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사랑, 옆에 두고, 만지고, 느껴야만

채워지는 그런 사랑...

내 삶에서 이렇게 절절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들이 또 다시 올까.

그러니까 힘들지만 고맙게, 기쁘게, 지내자.

더 뜨겁게 서로를 품고, 안고, 매만지고, 기대고, 품어가면서 고맙게, 그저 고맙게

이 날들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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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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