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뭇생명의 삶터, 국립공원

설악산국립공원을 상처투성이로 만든 국지성 집중호우

 

2006년 7월 중순, 설악산국립공원 일대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렸다.

한계령을 넘어가는 44번 국도가 유실되었다고 했고

곳곳에 산사태가 났으며

설악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길인지, 계곡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그림 선생님의 다급하고 절망적인 목소리에 상상만 하던 나는

8월 1일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내어준 헬기를 타고 현장을 돌아본 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채 마르기 전에 손톱으로 긁어버린 상처투성이 그림 같았다.

도로인지, 마을인지, 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화면엔 회색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놀라움과 두려움, 현장답사에 참가한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 산 정상에서 시작하여 자락까지 이어진 산사태

 

↑ 한계령을 넘어가는 국도 44호선 곳곳이 유실

 

↑ 마을까지 쓸어간 국지성 집중호우

 

당시, 초토화된 설악산국립공원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다.

완전 복구를 이야기하는 기관도 있었고

국립공원이니 빠른 시일 내 공사해 사람들의 산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번듯하고 편한 길을 원하는 부류도 있었던 것 같다.

 

산 정상에서 자락까지 쓸어버린 산사태를 완전 복구한다는 게 가능한지

대자연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보다 이용이 먼저인 것이 국립공원다운 생각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잇속이 먼저인 인간의 머리 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혼란스러워하며 그해 여름을 보냈다.

 

그렇게 5년을 보낸 설악산국립공원은 2006년 여름의 충격은 잊혀지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설악산국립공원은 말없이 숙명처럼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해마다 맞이하는 섬진강 범람 위기

 

3년 전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와 섬진강가에 사는 나는 여름이 되면 서울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한다.

마을 이장의 다급한 대피 예보 방송이다.

지난 해 여름엔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동시 방류하면서 섬진강이 범람 위기입니다. 급한 상황이 되면 다시 알리겠습니다.'이었고

올 여름엔 '섬진강댐 만수위가 1m 남았다고 합니다. 급한 상황이 되면 다시 알리겠습니다.'였다.

 

어디로 피하라란 것도 아닌 급한 상황이 되면 다시 알리겠다는 방송에 섬진강가에 사는 주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비가 그만 내려주길, 이제 그만 내려주길, 제발 그만 내려주길 빌 뿐이다.

혹시라도 범람하면 가장 소중한 무엇을 가지고 집을 나설지 순위를 매겨보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큰 비는 삶터를 잃을 수 있는 두려움이지만 동시에 적절한 시점에 비를 그치게 하는 하늘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011년 여름, 지리산국립공원 곳곳이 초토화되다

 

2011년 여름, 지리산자락엔 두 차례 큰 비가 내렸다.

7월 중순에 내린 큰 비와 8월 초 태풍 '무이파'로 인하여 지리산국립공원 탐방로와 계곡, 마을은 큰 피해를 입었다.

 

1999년부터 시행한 자연휴식년제를 끝내고 사전예약, 탐방가이드제를 원칙으로 2008년 개방한 칠선계곡은

태풍 무이파가 동반한 큰 비로 두지터 입구에서 비선담까지 설치했던 모든 시설이 떠내려가고, 뒤틀려버렸다.

 

↑ 칠선계곡은 태풍 무이파로 2011년 9월부터 통제되고 있다   

 

↑ 두지터에서 칠선계곡으로 가는 초입 다리도 큰 비로 뒤틀려버렸다

 

자연휴식년제가 끝나던 2007년 당시 추성리 주민들은 칠선계곡 완전 개방을 요구하였고,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완전 개방 시 남한에 남은 몇 안 되는 원시림 훼손, 탐방객 안전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완전 개방에 반대했었다.

칠선계곡을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칠선계곡을 조건 없이 완전개방하려면 적어도 1개의 대피소와 수많은 계단이 설치되어야 한다.

 

↑ 자연휴식년제가 끝나던 시기, 칠선계곡 초입에 걸려있던 현수막

 

칠선계곡 자연휴식년제 개방 여부를 놓고 2년 넘게 갑론을박한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추성리 주민, 지리산권 환경단체, 국립공원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사전예약과 탐방가이드제'를 핵심으로 한 제한적 이용이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칠선계곡 제한적 이용을 국립공원 사전예약제의 모범이라며

칠선계곡도 지키고, 주민들의 요구도 수용하며, 산에 드는 사람들의 안전도 고려한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말한다.

두지터부터 비선담까지는 완전 개방, 비선담부터 천왕봉까지는 제한적 이용을 원칙으로 설정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7년부터 두지터에서 비선담까지 집중적으로 시설을 설치했다.

시설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사람이 가려면 이 정도 시설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 제한적 이용을 위해 칠선계곡에 설치되었던 다리. 당시 설치되었던 대부분의 다리와 계단은 태풍 무이파로 떠내려갔다

 

칠선계곡 사전예약, 탐방가이드제가 정착되던 2011년 여름,

지리산국립공원에 상륙한 태풍 무이파는 칠선계곡에 설치된 시설과 이러저러한 의견을 모두 휩쓸어 버렸다.

태풍 무이파가 왔다간 후에도 추성리 주민 일부는 칠선계곡 완전 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시설 복구 후 제한적 이용을 이야기한다.

 

국민들은 칠선계곡을 가고 싶어 하고, 사람들이 와야 돈을 벌고, 그러니 복구 후 개방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기가 빨라지는 자연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고

더 튼튼하게 복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국립공원마저도 이용 우선, 기술제일주의에 빠져들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10월 하순, 이용행태 모니터링을 위해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와 함께 치밭목~조개골 지역을 다녀왔다.

조개골은 지리산 태극종주 코스라 하여 불법 산행이 잦은 곳이란다.

동행한 직원은 조개골을 내려가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풍 무이파로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지형이 바뀌어 길을 찾을 수 없다고, 개울이 계곡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큰 돌들로 지형이 바꿔버린 조개골

 

↑ 대원사계곡에 있는 유평마을회관엔 물과 함께 돌들이 밀려들어왔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지난 여름날의 흔적은 산 속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방도 861번을 타고 성삼재를 넘어 뱀사골로 가다보면 산에서 흘러내린 돌무더기와 도로 곳곳에 파인 흔적을 볼 수 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도 사태가 나고, 파헤쳐지긴 마찬가지다.

 

↑ 성삼재도로에는 물과 함께 밀려온 돌무더기가 곳곳에 있다

 

↑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에 난 소규모 사태

 

강풍, 폭설, 이상 고온, 폭우, 지진, 쓰나미...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큰 산과 큰 강, 바다에 인접한 곳은 해마다, 더 자주 집중호우와 강풍으로 피해를 입으며,

사계절, 24절기, 삼한사온 등 날씨에 관한 상식적인 단어들을 들이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올해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큰 비와 태풍 후 피해 현황을 조사하였고

지리산국립공원을 포함하여 북한산, 내장산, 변산반도국립공원 등에서 104억 정도의 피해가 났다고 발표하였다.

 

피해 현황은 탐방로와 시설을 중심으로 집계한 것이니 출입금지지역의 상황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아니, 큰 비와 태풍 후 국립공원의 변화를 '피해'라 표현하는 게 맞는 지도 의문스럽다.

폭우든, 태풍이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국립공원에서만은 '자연현상'이라 해야 하고

이 '자연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의 이용을 위해 복구할 것인지, 그대로 놔둬야 하는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국립공원은 현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공유하는 곳이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국립공원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화하여 예측하고, 준비하기 위한 곳이어야 한다.

당연히,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자연현상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다른 지역과 달라야 한다.

그래야만 국립공원이다.  

 

글_ 윤주옥 사무처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진_ 민종덕 님, 허명구 님, 윤주옥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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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안녕하세요.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윤주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