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생생육아 칼럼

내 사랑 다엘

아빠를 부탁해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는 나라

제1178호
 
성가족상. 요셉은 미혼모가 될 처지의 마리아를 아내로 삼았다. 정은주
 

다엘에게 멘토 같은 ‘아빠’가 생겼다. 이혼 후 간간이 안부를 전하던 전남편이 최근 다엘의 아빠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이다. 아빠의 빈자리가 채워진 것으로 다엘의 소원이 이뤄졌다.

 

다엘을 입양할 때 생모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들었지만 생부 정보는 듣지 못했다. 우리 사회 전체를 봐도 미혼부 얘기는 거의 없다. 임신과 출산이 여자 몸에서 일어난다는 이유로 남자의 존재는 증발해버린 것이다. 미혼모에게 가혹할 정도로 책임을 물으면서도 마치 단성생식이라도 한 듯 미혼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성교육 강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한 여고생이 선배와 사귀는데 선배가 계속 성관계를 요구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상담을 청했다. “나를 못 믿느냐.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너는 아닌 것 같다.” 남자친구의 거듭된 말이다. 상담가는 이렇게 조언했다. 남자친구에게 콘돔은 준비했는지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물어보라고. 그 말대로 했던 여학생은, 화를 내며 돌아서는 남자친구와 결국 헤어졌다.

 

우리 사회엔 성관계에 앞서 피임을 말하는 여자는 헤프고 불순하다는 생각, 금욕과 절제만 강조하는 성교육, 혈연을 강조하면서도 미혼부에는 무관심한 세태 등 부조리가 넘친다. 얼마 전 산부인과에서 낳은 아이를 두고 도망친 미혼모가 처벌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법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면 미혼부를 찾아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번거롭다며 묵살해왔다. 선진국에서는 미혼부를 끝까지 추적해 양육비를 부담하게 한다. 돈을 낼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지급한 뒤 갚게 하거나 여권 발급을 거부하고, 운전면허 정지도 불사한다. 이런 일련의 조치는 대단한 윤리적 실천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자와 여자가 함께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상식일 뿐이다.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미혼부모들이 아이 양육 대신 아닌 입양을 택하더라도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면 영아 유기 범죄도 줄어든다.

 

다엘의 아빠 사랑이 커갈수록 전남편의 책임도 커졌다. 매일 아빠와 통화하는 것이 다엘의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아빠의 전화기가 꺼졌고 연락이 안 되자 다엘은 안절부절못했다. 나중에 몸살이 난 아빠의 사정을 듣고 안심했지만 그날 밤 다엘은 말했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너무 무서웠어….”

함께 살지 못하지만 다엘에게 아빠가 생겼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한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들과, 아이의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 모두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를 도와주고 때로는 강제하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78호(2017. 9. 1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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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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