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사춘기 엄마는 폐경기 생생육아 칼럼

10대 초입에 들어선 다엘이 어느 날 한껏 반항심을 담아 말했다.
"난 사춘기라고!"
이에 질세라 나도 답했다.
"난 폐경기라고!"
그러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다엘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날려 주었다.

 

(참고: ‘폐경’ 말고 ‘완경’이라는 좋은 표현도 있음)

 

사춘기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인의 아들이 무난히 중학 시절을 보낸다 싶었는데
중 3이 되는 이번 겨울방학 때 사춘기의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부모들 사이에는 이런 격동기를 일컬어 ‘그분이 오셨다’는 표현으로 공감대를 이룬다.

 

사춘기의 양상이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걸 보면
본질적인 패턴이 있는 게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판이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엘의 순탄한 사춘기를 위해 나 나름대로 사전작업을 해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일상의 원칙들이다.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는 바로 정리한다.
등교는 버스나 도보 중 골라서 해결한다.
양말은 뒤집지 않고 잘 벗어서 빨래통에 넣는다.
스마트폰은 성년이 되어 스스로 돈 벌어서 산다.

 

작년부터 나는 다엘의 등교 도우미 활동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피곤한 날이면 다엘은 최대한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호소한다.
‘오늘만 엄마가 차로 태워다 주면 안 될까?”
늘 똑같은 나의 답이 이어진다.
“내가 오늘 태워주면 앞으로도 수시로 타고 다니게 되겠지?
그럼 넌 마마보이가 될 거고 엄마는 헬리콥터맘이 되는 거야.
설마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다엘이 쓸쓸히 돌아서며 말한다.
“네네, 잘 알겠습니다, 마님.
휴, 말한 내가 잘못이지…”

 

내 두려움은 아이가 마마보이가 되는 것일까?
두려움이란, 욕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내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곤 한다.

 

결정적으로 나의 본 모습을 보게 된 계기는 이렇다.
다엘이 다니는 절에서 어린이 법회 때 미술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동물 모양 중 가족 구성원들을 상징하는 것을 골라서 종이에 붙이고
이에 덧붙여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것인데
다엘의 그림 속 엄마 모습은 바로 ‘캥거루’였다!

 

다엘그림.png

 

캥거루라니, 그럴 리 없다고,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림은 한치의 오차 없이 냉정하게 현실을 보여주었다.
다엘을 상징하는 호랑이의 시선은 집 밖 동물을 향해 있으나
엄마 캥거루의 존재가 앞에 바짝 다가서서 압박한다.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한 채 억압된 다엘의 에너지는
다섯 개나(!) 되는 굴뚝 연기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난 날을 돌아 보니 나의 세상은 다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엘이 유치원에 다니게 됐을 무렵 장난처럼 내가 끄적인 낙서가 있다.


 

제목: 난 진정 몰랐었네

 

내가 이 나이에
뽀로로 캐릭터들 이름을
열심히 암기하고 있을 줄 몰랐네
루피 에디 포비 패티...

 

예전에 길에서 아~무 의미없이
왔다 갔다 하던 노란 버스들이
유치원 하원 시간 가까워질 때
내 심장 박동 빨라지게 할 줄 몰랐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놀이터
수많은 아이들이 다만
내 아이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일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정말정말 몰랐었네


 

아이를 키우며 별도 달도 따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 심리학자 이병준 씨의 말은 이런 마음에 쐐기를 박는다.
‘천재지변으로 부모를 잃어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는 열세 살’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는 다엘에게 내가 할 일은
별도 달도 안 따주는 건 물론,
당연시했던 대부분의 것들을 거둬 들이는 일이다.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 했다.
지금껏 나는 다엘이 좌절을 겪지 못하도록, 품 속의 아기처럼 싸고 돌았다.
아이가 불안해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정작 내 불안은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면,
인생의 화면 속에서 갑자기 부모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친구, 동료 등 다른 세상으로 가득 채워진 시기가 있었다.
다엘도 점차 그런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새롭게 발을 들여놓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폐경기는 하나의 문이 닫히면서 다른 문이 열리는 시기이고,
갱년기는 새롭게 사는 삶을 가리킨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조만간 내 몸은 하나씩 신호를 보내 올 것이다.
내 어머니의 육신이 나이 듦과 더불어 찾아오는 고통 앞에 무력하듯이.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을 담는 것이 쇠잔한 몸뿐일까?
노년을 맞이했을 때 내가 갈아입을 육신이라는 옷은
허름하고 누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욕의 정갈한 옷이라 믿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좋은 노년이 결코 나이와 더불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관성에 맞서서 거세게 저항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등교하러 나간 다엘이 정류장에 서있는 모습을 창 밖으로 내다본다.
오늘따라 마을버스가 10분 넘게 기다려도 안 온다.
‘차로 데려다 주면 금방인데,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다엘의 그림을 돌이켜본다.
세차게 나를 들이받는 ‘캥거루’ 덕에 정신을 차린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대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하지만 인생의 화면에서 엄마를 지워야 다엘이 제대로 성장할 테니
매일 캥거루 그림 앞에서 엄숙하게 묵념이라도 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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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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