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사진전] 65살 아빠와 35살 딸이 함께 쓴 관람기 아이가자란다어른도자란다

저는 8월 말에 태어났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표현대로 “복중보다 오히려 집요하고 짜증스러운 늦더위”가 최고조에 달할 때지요.

하지만 저에겐 시큼하고 진한 보랏빛 포도냄새가 나는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오직 제철에 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던 시절, 장에 가서야 겨우 들여올 수 있었던 귀한 포도가 제 생일상에는 꼬박꼬박 올라왔거든요.


삼십 오년 전, 이맘 때의 더위도 대단했을 겁니다.

그나마 차가운 냇물에 손발을 담그고 있을 때는 좀 시원했을까요.

빨래터에서 돌아오던 엄마가 돌부리에 넘어져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저는 태어났습니다만,

유난히 더위에 약한 편인 엄마는 그보다 더 지독한 공포에 휩싸였을 겁니다.

흩어진 빨래를 주워 담으며 ‘내 새끼가 어디 다친 건 아닌가’ 눈물을 뚝뚝 흘렸겠지요.


서른 살의 아빠, 스물일곱 살의 엄마와 젖먹이 나.
그렇게 셋, 오직 초보들뿐이던 시절을 회상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 생일 즈음이고, 무엇보다 퇴직 이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아빠에게 좋은 기회겠다 싶었어요.


고속버스는 매진이었고, 그래서 지하철을 타야했고, 가기로 마음먹은 음식점을 못찾아 헤매고,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고, 이것저것 자주 무리해서 먹은 탓에 결국 엄마는 배탈까지 났지만...
설렜고, 즐거웠고, 뭉클했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 나누었던 하루였습니다.


글은 예순다섯 살의 아버지가 본인 블로그에 올린 관람기를 거의 수정 없이 옮겼습니다.
아빠의 글은 잘 쓰려고 노력하는 저의 것보다 어쩐지 담백하고 수수한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아빠와의 합작품이 욕심나서, 사진만은 제가 고르고 설명을 달았습니다.

지금 보니 관람기라기보다 사진전의 작품들이 무수히 담고 있던 사랑, 연민의 기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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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나들이> 예순다섯 살 아빠, 안재올 씀


카메라, 책, 칫솔, 안경 등을 챙겨 간단하게 짐을 꾸린다.

아내와 정숙이랑 셋이서 시내버스, 고속버스, 지하철을 이용해 지난 주말 서울을 다녀왔다.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아 기뻤다.

차에서 2시간 이상 책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맛집 위치를 찾느라 땀을 흘리며 걸었다.

휴대폰에 설치된 만보기 숫자가 늘어가니 이 역시 즐겁다.

 
다음 주가 정숙이 생일이다.

사무실 근무, 육아, 출판사 등 하루 25시간도 모자랄 형편인데…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어젯밤 늦게 전주에 왔다.

로이터 사진전에 베이비트리 가족 초대에 응모해서 사진전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같이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이다.

부모님한테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커줘서 고맙다.”


달리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도 꾸미기라도 하는 것처럼 침을 삼켜가며 대꾸한다.

3남매 모두 바르게 자라 잘 살고 있으니 무얼 더 바랄 수가 있겠는가?


사진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인근 거리에 있는 음식점과 터미널을 이용했다.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넓기도 하다.

핸드폰에 나오는 지도를 바로 읽기가 쉽지 않아 음식점을 찾아  반대 방향으로 헤맸다.

그만큼 밥맛이 더 날 수밖에 없었다.

세트로 주문한 음식은 여섯 가지나 나온다.

후식까지 맛있게 먹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예술의 전당까지 걸어서 갔다.

아름다운 거리에서 두 여인의 포즈는 쉴 새 없다. 
    
로이터 사진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한 사진이 6월 25일부터 3개월간 열린다.

주말이라 관람하는 사람이 많아 줄을 지어 입장한다.

보도 사진의 역사를 함께한 450여 점의 기록이 6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되었다.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어느 곳은 긴 줄을 뒤따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포토존에서는 기념사진 찍느라 우리뿐 아니라 관람객 모두들 신이 났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순간들은 100년 전인데도 남아있다.

 ‘그 때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역사의 순간을 생생하고 바르게 전달해준 로이터 사진기자님들께 고마움을 느낀다.

출구를 지나 기념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들고 예술의 전당을 빠져나왔다.
  
더 머물고 싶어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커피숍에서 음료와 팥빙수, 빵을 먹으며 아직도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도 못 짓고 그저 고맙고 고맙다만 반복할 뿐이다.

차창 유리로 손을 흔들며 정숙인 KTX를 타고 광주로,  우린 버스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항상 아쉽고 허전한 것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겠지. 
  
책과 사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정숙이의 영향이 컸다.

나이 들어 무언가에 취미를 가질 수 있음에 고맙다.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 정숙이가 만들어준 블로그에 이야기를 올리며 또 고맙다.


딸아, 사랑한다.

위화의 <형제3>후기에 '글쓰기건 인생이건 정확한 출발은 작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하는구나.

커다란 문의 길은 길지 않으니까.

우리 커다란 문보다 작은 문을 찾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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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배낭속에 들어갈 것들

- 책, 돋보기 안경, 두 종류의 과자 각각 세개 씩, 물병,

카메라와 지갑.


이것저것 사 먹느라 아빠가 챙기신 과자들을 못 먹은게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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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안.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아빠는 조용한데,

간만에 버스를 탄 엄마와 저는 처음 버스를 탄 사람들처럼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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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가방을 든 아빠를 찍으려는데 브이는 엄마가 그립니다.

엄마는 특별한 이 날을 위해, 근처 사는 동생에게 가방까지 빌렸답니다.

겨우 휴대폰, 지갑, 물병 하나 들어 있는 가방이 어찌나 무겁던지.

하루종일 퉁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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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짜기를 좋아하던 저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서울가는 차는 많으니까, 하고 터덜터덜 도착한 터미널.

예약을 안 했더니 예술의 전당 바로 앞으로 가는 남부터미널 행 버스표가 한참 동안 매진입니다.

결국 터미널을 옮겨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 표를 끊고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습니다.


저는 점심 먹고 습관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는 카페라떼인데.

두분은 너무 비싸고 맛있다며 조금씩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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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버스를 탔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제가 쏘는 거에요!

뭔가 우쭐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 사진 이후 엄마는 쿨쿨 잠이 들었고,

아빠는 독서에 빠져들었고,

저는 차에서 틀어준 리우올림픽 정규방송을 보며 훌쩍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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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만 65세, 엄마는 장애인 카드 소지자라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돈을 넣고 교통카드를 구입한 다음 도착지에서 환불 받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환불받는 기계까지 찾아가는 것도 어렵고, 거기서 돈을 다시 받는 과정도 어려웠습니다.

어디 물어볼 데도, 사람도 없고 오직 기계만 덩그러니.

젊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갑갑한데 어르신들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복지 혜택, 받는사람이 눈치보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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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가려고 생각해둔 음식점은 있는데 도대체 지도를 볼 줄을 몰라 이길로 갔다 다시 왔다 되돌아 갔다...

(지도 하나는 끝내주게 잘 보는 남편이 그리웠던 순간 ㅎㅎ)


그 덕분에 점심이 더 맛있었다는 부모님,

진짜 중국에 온 것 같다는 부모님은 식당 앞에서 진짜 여행객처럼 사진을 여러장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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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예술의 전당으로 걸어갑니다.

엄마는 포즈를 취하고 아빠는 찍고.

수동카메라를 배우는 중인 아빠는 작동법이 서툴러 느리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대충대충 빨리 찍으라고 성화고.

저는 그런 두 분을 멀찍이서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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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빠입니다^^

아빠는 제 덕분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한 20여년쯤 전인가.

어느 날 서울을 다녀오던 아빠가 사진기를 한 대 들고왔습니다.

아낄줄 만 알지 자신을 위해 무언가 사는 일을 본 적이 없던 아빠가 세상에, 사진기를 샀다고?!

사진기가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보다 그 자체가 화제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사기를 당한 거였습니다.

사기꾼이 참 대단했습니다.

아빠의 안주머니에 모임 회비(현금)가 두둑했다는 것,

아빠가 좋은 사진기를 한 대 갖고 싶어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하여튼 그때부터 제 마음엔 한 문장이 새겨졌습니다.

'아빠는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결혼하고 호주로 가면서 제가 쓰던 카메라를 아빠에게 드렸어요.

저는 새걸로 장만하고요.

그 뒤로 아빠는  책을 보며, 무료 강연을 찾아가며,

가끔 바디니, 렌즈니 장비를 업그레이드 해가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아빠가 칠순이 되는 해, 아빠의 사진들을 모아 사진전을 열자.

우리 삼남매의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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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빠의 앵글에 잡힌 저를 보면 뭉클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보고 계셨구나. 내가 보기를 기다렸구나.

그냥, 어쩐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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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입니다.

무척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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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진사는 아빠.

우리는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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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잘 찍어줄라나.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부탁했는데,

열정적으로 여러 장을 찍길래 기대했는데...

제 발목이 잘려버렸습니다 ㅎㅎ

그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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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온 아빠가 또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엄마와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저렇게 크게 웃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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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살면서, 직업도, 취미도, 그 무엇도

자신을 위해 할 줄 몰랐던 남자가 예순이 넘어서 가진 자유, 사진과 독서.


이번 사진전이 작은 보상이 되기를 바라는 건

자식의 터무니 없는 욕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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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헤어지는 순간에는 늘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생각하니 또 가슴이 뭉클해져서 이만 마무리 야겠습니다.


* 부모님과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신 베이비트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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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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