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의 유모차, 엄마의 패션 생생육아

디럭스와 절충형, 어느 쪽이 실용적일까? 이미 절충형이 있는데도 휴대용을 하나 더 구입하는 게 좋을까? 양대면 기능이 없으면 많이 불편할까?
 이 질문에 자기만의 답을 갖고 있다면 그대는 (아마도) 틀림없이! 엄마군요. (업계관계자가 아니라면.)

 

 출산 전후로 구매한 아기용품 중 가장 목돈이 든 품목이 유모차였다.
 유모차의 세계가 그처럼 방대하다는 것을 엄마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으니. 디럭스, 절충형, 양대면 같은 낯선 단어야  검색으로 곧 알았지만 지나치게 다양한 선택지를 탐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인 눈에는 군인만 보이고 임산부 눈에는 임산부만 보인다더니, 엄마가 되고야 세상 유모차가 눈에 들어왔다.

 

 맥클라렌, 퀴니, 부가부, 콤비, 리안...
 개중 유모차계 벤츠라는 스토케와 영국 로열 베이비의 실버 크로스가 부러움과 지탄의 대상인 듯 했다. 뭐랄까, 유모차가 스토케임을 안 순간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궁금해진달까. 그리하여 그들이 과연 스토케를 들일만한 경제력이 있다고 판명되면 부러운 거고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 조용히 혀를 차고.
 실은 나도 오랫동안 그랬다. (설마 나만 그런가?) 스토케만 등장하면 관음증 환자마냥 훔쳐보게 된다. 동네에서 스토케를 보면 엄마의 입성을 한번 더 살피고, 블로그에서 스토케를 보면 그녀의 세간살이도 찬찬히 둘러보고.
 딱히 스토케를 갖고 싶지도 않은데 왜 이러는 걸까요? (마음 깊숙한 곳 무의식에서 진정 스토케를 원하고 있노라며 프로이트적 해석을 꺼내셔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소만.)
 그러던 것이 유모차도 엄마의 패션 아이템이라는 철학을 받아들이며 무심해져 간다. 엄마도 하나쯤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은 게 있을 수 있지.
 
 사람이 열이면 입맛도 열, 유모차에 대한 취향도 저마다 달라 선배들의 의견을 참고하려하면 할수록 결정은 더 어려워졌으니. 누군가는 두 엄지 손가락을 척척 치켜든 상품인데 다른 누군가는 혹평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한 걸 보면 결국 백 퍼센트 완벽한 유모차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가격 대비 성능 최고라고 소문난 제품이 영순위.
 친구가 잉글레시나 트립을 추천했다. 유모차 사용이 잦지 않을테니 저렴하면서도 견고하다면 충분하단다. 비쌀수록 여러 편리한 기능이 추가되고 미적으로도 윗길이겠지만 그 정도로 투자할 가치는 없다는 덧붙임. 다른 지인 역시 유모차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단다.

 

 옳다구나, 잉글레시나 트립 2011년형을 구입했다. 2012년형이 막 출시되긴 했지만 안전바 유무 외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 해 더 저렴한 11년형으로 구매했다. 인터파크에서 23만원. (싸다!) 안전바 없이 안전벨트로도 충분했다.
 2년 이상 사용해 본 결과 잔 고장 없고 큰 불편 없어 흡족, 몇 차례 발표한 소비자 시민 모임 평가표에서도 늘 상위권에 '구매가치 있음'으로 나오니 만족스럽다.

 
 다만 사용해 보고서야 얻게 된 깨달음이 있으니!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지인의 추천을 받을 때에도 주의할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과 내가 처한 상황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충분히 비교,대조해야 한다는 것.
 가까운 지인 두 명은 모두 유모차 쓰임새가 많지 않다 했으나 나의 경우 아기가 외부에 호기심을 갖게 되며 거의 매일 출격했다. 그러니 장시간 아기와 산책하는 내 경우에는 트립보다는 양대면이 되는 유모차가 더 좋았을 듯.
 그러고 보니 둘은 모두 일하는 엄마인데다 자가 운전자였기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갈 일이 많지 않은 반면 나는 차도 없는데다 온종일 집에 있으니 유모차가 필수였다. 그 후 사귀게 된 동네 이웃 엄마의 경우, 아기가 유모차 타기를 너무도 싫어해 사용 빈도가 0에 가까웠다. 그러니 엄마가 처한 상황과 아기 특성에 따라 유모차의 필요도나 평가도 달라지나 보다.

 

 덩치 큰 본체 쇼핑을 끝내고 이제는 각종 부대용품에 눈을 돌려.
 1.잉글레시나 쿨시트 (20,720원.) 적당히 쿠션감도 있고 여름철 땀흡수에도 도움이 되고 좋다. 여름용으로 나왔지만 내 경우 4계절 사용.
 2.선샤인키즈 겨울용 이너시트 (20,620원.) 그다지 필요없었다. 겨울에는 아기옷을 두껍게 입히는데다 바람막이까지 씌워 겨울용 시트가 오히려 답답할 듯 했다.
 3.선샤인 키즈 싯세이드 (16,860원.) 유모차 차양막에 덧씌워 햇빛을 더 차단할 수 있으나 매번 장착하기가 번거로워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됐다.
 4.선샤인 키즈 유모차 선풍기 (19,960원.) 여름철 시원하게 한다기보다 환기용으로 적당. 아기는 장난감처럼 생각했다.
 5.마니또 방한커버 (35,990원.) 굉장히 유용. 그러나 이또한 유모차를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를 듯. 가을, 겨울, 늦은봄까지 외출에 필수.
 6.엘리펀트 이어스 목보호 쿠션 (29,180원.) 초기에는 꽤 사용했으나 아기가 목을 가누면서부터는 그다지. 지금이라면 더 싼 쿠션을 살 듯. 당시에는 엘리펀트 이어스 제품밖에 몰랐다.

 이로써 메인 유모차 쇼핑은 끝.

 

 얼마 후 더 편리한 외출을 위해 휴대용이 필요하지 않은가며 가격도 착한 29,760원짜리 COSCO 유모차를 들였다. 휴대용이란 모름지기 가벼운 무게에 메리트가 있다며 차양막 없는 초경량을 선택한 주제에 곧장 산코의 유모차 양산(9,800원)을 사 달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차양막 정도는 있는 유모차를 선택하는 게 좋았잖소!
 볕 좋은 날이면 차양막 없는 유모차에 누운 아기가 안쓰러워 에미는 그늘을 향해 전력질주해야만 하니, 휴대용이라도 차양막 있는 쪽을 슬쩍 추천해 봅니다.

 

 유모차는 이쯤해서 끝이지만, 고기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아기는 업고 이고 안고 지고.

 아기란 존재는 어찌하여 바닥에 등이 닿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게요, 안아달랄 때마다 안아주고 싶다만 노모는 기력이 쇠하여 포그내 힙시트를 구매했으니. 래퍼띠와 허리 주머니까지 포함해 64,320원. 힙시트는 매우 유용했다. 다만 래퍼띠는 그다지, 허리 주머니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아기 있는 집엔 포대기가 필수지! 친정 어머니의 강력 추천으로 맘 앤 베이비 5부 망사 포대기(16,830원)도 구매했으나 매번 사용에 실패. 끈은 묶기가 무섭게 질질 내려온다. 대체 포대기는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노하우는 끝끝내 익히지 못한 채 포대기는 잠이 들고.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압소바 아기띠와 아이편해 겨울워머를 12,500원에 구입. 압소바 아기띠는 견고해 보이지 못해 사용을 접었으나 겨울워머는 무척 유용하게 한 철 잘 사용했다. 트립을 추천했던 친구에게 얻은 에르고 아기띠와 함께.

 이리하여 발바닥과 등에 센서가 부착돼 땅이나 방바닥에 닿는 걸 감지하자마자 울어대는 아기의 공중부양을 위한 상품 구매에 506,540원.

 

 안고 업고 태우고, 어떻게 하면 보다 편하게 아기를 어르고 달랠까 하던 고민에서 조금은 멀어져왔다.
 지금 우리는 이토록 많은 제품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육아가 힘이 들어 헉헉대는데 예전 어머니들은 포대기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아기를 키우셨을까. 생각할수록 나로 인해 저물어간 어머니 젊음이 안쓰럽고 노고가 가엾다.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지금의 나는 그렇다, 내 새끼 입히고 먹이는데는 선뜻 지갑을 열면서도 명절이고 생일이고 부모님께 나갈 돈은 자꾸만 셈을 해 본다. 그러니까 이번 달 지출이 얼마인데 이것까지 나가면 또... 새끼한테는 마음이 먼저 나서고 부모님께는 머리가 먼저 나서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리하셨을테고 어머니 또한 여즉 그리하고 계시고 또한, 분명 내 자식도 오래지 않아 그러겠지.

 
 저 녀석 그럴 걸 알면서도 어머니, 제가, 내 새끼라 이렇게 물고 빨며 키워요.

 그러니 어머니, 혹여 억울하시더라도 우리 이걸로 똑같은 셈 퉁칩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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